전신 2도 화상 입은 채 발견…입원 치료 받던 중 사망
지난해 4월 동거인 숨진 후부터 경제적 어려움 겪어
8개월간 관리비 체납에도 지자체·관련기간 파악 못해
전문가 “복지 인력 확충 및 이웃 커뮤니티 활성화해야”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생활고에 시달리던 80대 노인이 서울소재 모 오피스텔에서 분신을 시도했다가 전신 2도 화상을 입고 입원 치료 중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에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온몸에 전신 2도 화상을 입고 쓰러진 김모(83·여성)씨를 발견,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김씨는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지난 2일 결국 사망했다.

당시 김씨는 인화물질을 자신의 몸에 뿌린 뒤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로 인해 발생한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신고 20분 만에 자체 진화됐다. 불은 다른 세대로 번지지는 않았으나 주민 15명이 대피했다.

김씨는 약 15년간 함께 살았던 동거인이 지난해 4월 사망한 뒤 주거 불안과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점심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점심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뉴시스]

정부 복지망에 여전히 뚫려있는 ‘구멍’

김씨는 지난해 7월부터 8개월 동안 오피스텔 관리비를 체납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에도,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는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 그는 지난해 9월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한 뒤, 기초생활수급 신청 안내를 받는 등 노력했음에도 마땅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8월 ‘수원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단전·단수 △건강보험료 체납(3개월 이상) △공동주택 관리비 체납 등 위기 정보를 34개에서 39개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김씨의 거주지는 오피스텔로, 현행법상 아파트, 빌라 등과 같은 공동주택에 포함되지 않아 관리비 체납 사실이 관련 기관에 전달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김씨는 고위험 취약계층을 의미하는 ‘중앙위기 발굴대상’과 위기 정보가 하나라도 해당하면 등록될 수 있는 ‘전체 위기정보 입수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유로 아무런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정부가 위기가구를 선제적으로 파악해 일명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공언했지만, 또 한번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김씨는 지난해 9월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한 뒤 기초생활수급 신청 안내까지 받는 등 구제를 위해 스스로 노력했지만 결국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주민센터 측은 당시 김씨가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지 않았고, 보건복지부에서 내려보내는 사각지대 취약계층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아 미리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오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한 노인이 폐지가 실린 수레를 끌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12월 오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한 노인이 폐지가 실린 수레를 끌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뉴시스]

반복되는 아픔을 막으려면

국내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많은 독거노인이 경제 및 심지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달 20일 발표한 ‘2022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독거노인(만 65세이상 노인 인구 중 혼자 거주)비율은 지난해 20.8%로 전년 대비 0.2%p 늘은 것으로 집계됐다.

신체·정신적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인 ‘사회적 고립도’는 지난 2021년 34.1%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9년(27.7%)과 비교해 6.4%p 증가한 수치다.

인구 10만명당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망한 사람의 수를 뜻하는 자살률은 지난 2021년 기준 26.0명으로 전년 대비 0.3명 많아졌다. 70대(41.8명)부터는 인구 10만명당 스스로 숨진 수가 40명을 넘었고, 특히 80세 이상은 61.3명으로 급증했다.

정부의 거듭된 대책에도 재차 드러나는 복지 사각지대에 전문가들은 기초생활보장 제도가 실제적, 포괄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본보와 통화를 통해 “이런 유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계속 위기가구를 발굴하겠다며 기존 위기 정보에 또 다른 정보를 합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며 “이 같은 대응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실제적,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주민등록거주지-실거주지 일치 여부 확인 등 아직 미흡한 기준도 손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실제 가난을 느끼고 있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준선에 미묘하게 어긋나는 사람들에 대해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지자체 및 주민센터는 ‘안내’를 넘어 연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일선에 배치된 행정인력인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의 조력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여대 정재훈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현재 시행 중인 ‘위기 정보 수집에 대한 목록을 늘린 것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면 사회복지 인력 확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또한 차상위계층 등 취약계층만을 다루는 정책이 아닌 중산층까지 아우르는 지원제도가 생겨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외에도 지역 사회 커뮤니티, 이웃 관계 등을 복원하는 문화를 주도해야 하며 주민센터 등에서 경제적인 요소에 대한 상담 및 해결을 넘어 정신·심리 등의 분야도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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