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대전서 초등생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져
2017년부터 스쿨존 사고 매년 평균 500건가량 유지
관련 법·처벌 강화 목소리 대두…국민청원 움직임도
정부 “도시 속도 제한 탄력운영”…역행이라는 비판도
전문가 “시설물 확충·‘안전 먼저’라는 인식 개선 필요”

지난달 3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초등학교 앞에서 경찰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교통법규 위반 특별단속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달 3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초등학교 앞에서 경찰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교통법규 위반 특별단속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민식이법’ 시행 3년 차임에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단속·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1일 법원에 따르면 대전지법은 전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혐의를 받고 있는 A(66)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도주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지난 8일 오후 2시 21분경 A씨는 대전 서구 둔산동 탄방중 인근 교차로 스쿨존 내에서 만취 상태로 차를 운전하다 도로 경계석을 넘어 인도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길을 걷던 초등학생 배승아(9)양이 목숨을 잃었고 3명이 크게 다쳤다.

A씨는 현장에서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사고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기준(0.08%)을 넘는 0.108%으로 확인됐다.

A씨에게는 스쿨존에서 어린이 상해 및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이른바 ‘민식이법’(개정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됐다.

하지만 이 같은 법이 시행된지 3년 차임에도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아, 스쿨존 관리 및 단속과 민식이법 관련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오전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한 시민이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한 9살 초등학생을 추모하기 위해 헌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10일 오전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한 시민이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한 9살 초등학생을 추모하기 위해 헌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시행 3년차 맞았음에도 

민식이법은 지난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김민식(당시 9세) 군이 차에 치여 사망한 뒤 도입된 것으로, 지난 2020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해당 법은 스쿨존에서 운전자 부주의로 어린이를 사망하게 할 시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어린이를 다치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3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외에도 횡단보도에 관한 안전표지, 카메라 등 과속 방지시설, 미끄럼방지 시설도 함께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당시 민식이법에 이어 정부는 어린이보호구역 교통 안전 강화 대책으로 스쿨존의 모든 차도의 제한속도를 시속 30km 이하로 명시했으며,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지날 시에는 반드시 일시 정지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이 마련됐음에도 스쿨존 사망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지난 2017년 479건, 2018년 435건, 2019년 567건으로 파악됐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난 2020년 483건으로 감소했다가, 지난 2021년 523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481건으로 집계되며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매년 평균 500건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경기 평택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이 굴착기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운전자는 신호를 위반하고 운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 강남 청담동 소재 모 초등학교 앞에서 한 만취 운전자가 초등학생을 차로 치여 사망까지 이르게 했다.

이어 지난 8일 대전 서구 둔산동에서 면허 취소 수치를 웃도는 만취 상태의 60대 남성이 운전하는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현장에 있던 배승아 양이 숨지고, 9세∼12세 어린이 3명이 크게 다쳤다.

음주운전으로 9세 여학생을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60대 남성이 지난 10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전 둔산경찰서에서 나와 대전지법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음주운전으로 9세 여학생을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60대 남성이 지난 10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전 둔산경찰서에서 나와 대전지법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스쿨존 보호해야”…목소리 커져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스쿨존에서 정작 음주운전 등 사고가 발생하자, 시민들은 민식이법 관리 및 단속과 함께 운전자 살인죄 적용 등 제도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대전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스쿨존이었지만, 안전 펜스 등이 설치돼 있지 않아 어린이들이 차량 충돌 위험에 그대로 노출 돼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스쿨존 안전 펜스 등의 설치는 현행법상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다 보니, 여전히 설치가 미흡한 실정이다.

안전 펜스 등이 설치돼 있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는 주장이 나오자, 시민들은 국민 청원글을 올리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신문고에는 지난 10일 “대전 서구 둔산동 일대 2년 전부터 도보에 있는 철제 펜스가 철거됐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해당 글은 검토 대상 기준인 동의 100명을 넘긴 상태다.

또한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건들 중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69건 중 단 1건에 불과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지난 2021년부터 시행 중인 ‘도시 속도제한’이 보행자 통행량, 도시 내 지역적 특성 등을 반영하지 않고 획일적·경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스쿨존 내 시간대별 탄력적 속도제한 운영을 전국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어린이가 통행하지 않는 시간대에 보다 빠른 속도로 운전을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9살 어린이가 사망한 대전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는 휴일이었던 지난 8일 발생했다.

한남대 경찰학과 이도선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스쿨존은 확보됐지만 정작 아이들이 통학하는 보행로가 없거나 펜스 등 안전 시설물이 부족하는 등 아직 열악한 곳이 많다”며 “또한 스쿨존을 지나갈 경우 속도를 30km로 확 줄여야 하는데, 이를 아직까지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짚었다.

이어 “가해자 처벌 강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선제적으로 교통안전 시설 마련, 내비게이션 안내 범위 확대 등 시각·청각 쪽으로 더 확실하게 인지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근본적으로는 시민의 편의가 아이들의 안전보다 더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며 말했다.

지난 9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도시 속도제한’ 탄력적 운영에 대해서는 “인구 감소로 인해 각종 출산 대책 만들고 있는 시점인 것은 물론 북미 및 북유럽 등 교통 선진국은 스쿨버스가 정차하면 반대, 좌·우측, 뒤 등 모든 차들이 무조건 멈추는 제도가 도입돼 있는데, 현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다소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반적인 속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자’라는 말의 의미가 ‘속도를 상향하자’는 움직임이 돼서는 안 된다”며 “여전히 스쿨존 내 사고 다발 구역, 사각지대에 대한 면밀한 점검 및 보완과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도로보다 높이는 ‘고원식 교차로’ 등 안전시설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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