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소재 한 가전제품 매장에서 에어컨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일 서울 소재 한 가전제품 매장에서 에어컨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작업장에서 에어컨 작동을 통제하는 일명 ‘에어컨 갑질’이 증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21일 야외에서 일하는 건설·물류 노동자뿐만 아니라 실내 노동자들도 에어컨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며 관련 제보 사례를 공개했다.

자신을 학원강사라고 소개한 제보자 A씨는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고장난 상태로 7시간 동안 계속 수업하는 바람에 완전히 탈진했다”며 “원장이 평소에도 돈을 아껴 에어컨을 고쳐줄 것 같지 않은데 제가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고 문의했다.

한 사무직 직장인 B씨는 “실내온도가 30도를 넘어가는데 사업주가 에어컨을 못 켜게 하는 것은 물론 리모컨을 자기만 가지고 있다”고 제보했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119는 “노동자들이 견디다 못해 사업주에게 냉방 등의 조치를 요구해도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하에 무시되기 일쑤”라며 “심지어 냉방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괴롭히거나 해고하는 사업주까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갑질은 폭염기 작업장 적정 실내 온도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와 점검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취약한 현실을 틈타 여름철마다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냉방기기 가동 기준을 터무니없이 높게 잡아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사례도 있었다.

제보자 C씨는 “저희 어머니가 공장에서 일을 하신다. 최근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어가며 날씨가 너무 더웠는데, 공장에서 습도가 80%가 넘는다고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고 한다”며 “어머니가 집에 오실 때마다 땀에 절여져 있다”고 호소했다.

직장갑질119는 “현재 공장은 ‘습도 80% 이상’을 기준으로 잡고, 습도가 그보다 낮을 경우, 온도와 무관하게 냉방기기를 가동하지 않고 있다”며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실내 적정 습도가 40%~6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기준”이라고 밝혔다.

온열질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1조와 제52조에 따르면 심각한 폭염에 따라 열사병 등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배포한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에서도 △작업자가 일하는 장소에 온·습도계 및 확인 △냉방장치 설치 또는 추가적인 환기 조치 △35도 이상일 때 매시간 15분씩 휴식 제공 △무더운 시간대(14~17시) 옥외작업 중지 등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권고들이 강제성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이들 단체의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달 같은 달 코스트코에서는 주차장 쇼핑카트 관리 업무를 하던 노동자가 폭염에 노출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들은 “산업안전보건법(제5조 사업주의 의무)에서는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의 조성 및 근로조건 개선’을 명시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이제라도 ‘에어컨 갑질’ 신고센터를 만들어 제보를 받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온열 기준과 적용범위를 정비하고, 작업장 온도가 노동자 생명 안전에 직결되는 중요한 권리라는 점을 적극 안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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