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020년 연평균 20여명, 비속살해 저질러
가중처벌 조항 없어…소관 상임위서 법 계류 중
“소극적 대처보다 사회 전체 문제로 전환 필요”

지난 23일 일가족 5명이 서울과 김포 등 3곳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남편과 시어머니, 시누이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송파구 주거지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된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3일 일가족 5명이 서울과 김포 등 3곳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남편과 시어머니, 시누이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송파구 주거지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된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전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이 같은 사건이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10건 이상 일어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그릇된 인식 개선과 정확한 관련 법 강화를 통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25일 정부, 경찰청 등의 발표를 종합하면 지난 23일 오전 7시 29분쯤 송파구 잠실동 소재 모 아파트에서 40대 여성 A씨가 추락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아파트에는 A씨의 친정이 있었고,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이후 경찰이 A씨의 동선을 조사하던 도중 송파구 송파동의 한 빌라에서는 A씨의 남편, 시어머니, 시누이 3명이, 비슷한 시각 김포의 한 호텔에서는 A씨의 초등학생 딸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이달 17일에는 인천 남동구 소재 주택에서 60대 아버지와 5세 딸이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고, 같은 날 전남 영암군에선 부부와 중증장애를 가진 20대 아들 셋이 숨을 거뒀다. 지난달 2일에는 신변 비관 문자 메시지를 남긴 40대 부부가 자녀와 함께 사망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자녀는 죽었지만 부모는 살아남은 경우도 있다. 자택에서 10대 딸을 살해한 40대 여성과 경남 김해 야산에서 10대 자녀 두 명을 살해한 50대 남성은 범행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살아남았다.

이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부모가 미성년 자녀의 목숨까지 빼앗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사건은 지난해 전남 완도에서 발생한 ‘조유나양 사건’ 이후 비로소 ‘아동학대’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비극은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실이 지난해 보건복지부·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으로부터 제공받은 ‘2013~2020년 자살 전수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자녀를 살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60명으로 한 해 평균 20여명에 달했다.

원인은 경제적 문제가 34.3%로 가장 많았으며, 정신건강 문제가 26.3%로 뒤를 이었다. 자녀 살해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으로 희생되는 자녀의 수도 지난 2018년 7명에서 2021년 14명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자살예방 중앙정책지원기구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심리부검팀 7명이 연평균 142건의 심리부검을 시행하는데, 이는 연간 전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망자의 1.3% 수준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 수에 비해 사례관리 인력도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말 기준 정부에 등록된 자살고위험군은 2만241명으로 확인된 반면 전담인력은 467명에 불과했다. 이는 한 명당 43.3명을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강 의원은 “이런 사건들은 엄연히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사건”이라며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라는 인식 전환과 위기가정 발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가중처벌·인식 개선 목소리

비속살해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비속살해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이 없는 것을 이유로 지목하기도 했다.

현행 형법상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에 대해서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처벌이 되지만,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살해’는 평소 아동 학대 정황이 없다면 일반 살인죄만 적용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속살해는 피해자인 어린 자녀가 범행을 전혀 대비할 수가 없을뿐더러 의사와 상관없이 생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일반 살인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비속살해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을 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 상태다.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이 지난해 7월 미성년자인 직계비속에 대한 살해죄를 신설하고 존속살해와 동일하게 가중처벌한다는 내용의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21대 국회에서는 꾸준히 법안이 발의했지만, 현재까지도 논의되지 못한 채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와 함께 비속살해를 가족 내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로 보고, 복지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한우재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자녀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생명을 앗아가는 건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며 “비속살해 사건에 대해 사회에서 범죄가 아닌 가정 내 어려움에 초첨을 맞춰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데, 이 같은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파산, 회생, 정신건강 등 최전선 기관은 최소한의 업무가 아닌 위험집단에 대한 조기개입,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사업 등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에 발맞춰 정부는 일련의 사건들을 감추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문제의식을 가진 채 법 개정,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의 인식 전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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