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유전의 원칙’ 형해화되며 상당수 농민 ‘현대판 소작농’ 전락 위기
전남 서남부 간척농지, 대규모 태양광 개발 소식에 농민은 ‘좌불안석’
일각선 농지법 완화 요구…비농민 투기이익 위해 규제 풀어야 하나
“매년 여의도 69배 농지 소멸돼” 재산권 넘어선 농민권리 논의해야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호포리에 위치한 이 간척농지는 현재 대규모 태양광 발전 개발이 계획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호포리에 위치한 이 간척농지는 현재 대규모 태양광 발전 개발이 계획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구는 만성화되는 기후변화와 식량위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사회분야별 논의는 무르익지 않고 있다. 여러 분야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농업이 그러하다.

유엔은 지난 2018년 12월 17일 총회에서 농민권리선언을 채택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채택한 지 5년여가 지났지만 그 내용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월 19일 이른바 ‘농민기본법’이라 불리는 농민·농업·농촌정책 기본법이 국민동의청원을 거쳐 국회에 회부됐으나 21대 국회 내 통과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도시에서 살다보면 농업에 대해서는 시장 장바구니 물가 걱정할 때나 각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시 우리나라가 양보하는 항목 정도로 이해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대중들의 농민권리와 농민기본법에 대한 관심도 역시 낮은 모습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농민권리선언에 담긴 오늘날 농촌의 현실을 밝히고 농민들 스스로는 자신의 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장취재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한번 훼손된 환경을 다시 되살리기 어렵듯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문제를 직시할 때가 됐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농업은 농지를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 헌법과 농지법은 농민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고 못을 박아 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각종 예외사항이 인정되자 ‘경자유전의 원칙’은 이름만 남은 채 형해화되고 있다. 그 간극이 벌어지면서 ‘농민이 농지에 대해 보장받아야할 권리’는 존재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전라남도는 전국에서 가장 쌀을 많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지난해 기준 전체 쌀생산량의 20%(74만3000톤)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전남 서남부 해안지역에 조성된 간척지에는 반듯하게 경지 정리된 논이 광활하게 펼쳐져 식량생산에 기여하고 있다.

한편, 전남 서남부지역은 일조량이 많아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 사업을 하기 유리한 지역이다. 지역 곳곳에 우후죽순 태양광이 들어서자 전남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은 조례를 통해 주거지역과의 이격거리 제한을 두는 등 난개발을 규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지역은 태양광 개발사업 계획이 줄을 잇는 실정이다.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연대회의 손용권 대표는 “전남지역 지자체 조례 상당수가 민가지역과 300~500m 가량 이격거리를 두도록 돼있다. 그러나 일부지역은 이를 완화하려 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간척지는 대단위 태양광 발전을 하기 최적의 조건이라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손 대표는 “농지법에 따르면 간척지는 염해가 확인되면 태양광 사업에 대한 한시적인 허가가 가능하다. 그런데 멀쩡한 논도 염해농지라며 허가를 내고 있다”고 혀를 찼다. 그는 “벼는 15~20㎝ 가량 뿌리를 내린다. 그런데 염도 측정을 위해 최대 60㎝ 깊이의 흙을 파내 측정하고는 염해농지라고 하니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간척농지에서의 태양광사업은 보통 20년 가량 임대를 통해 진행된다. 과연 20년 뒤에는 해당부지가 농지로 온전히 되돌릴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전남 영암, 이미 태양광 많은데 간척농지까지 노려

전남 영암군은 2읍 9면 403개 행정리로 구성된 인구 약 5만2000여명의 농촌지역이다. 그러나 영암군에 따르면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은 올 8월 기준 2649건(총 105만㎾ 규모)이나 허가를 받은 상황이다.

행정리 1곳당 6.57건에 달하는 사정이다 보니 길을 몇 분만 지나가면 태양광 패널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중 1661건은 상업운전을 시작했으며 988건은 사업을 아직 개시하지 않은 상태다. 

아직 허가를 신청하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 중인 경우도 많아 이 수치를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간척지를 대상으로 20㎿ 이상 대규모 태양광발전을 계획한 곳들도 있어 지역농민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영암지역의 한 농민이 도로변에 ‘태양광 반대’ 깃발을 달고 있다. [사진제공=영암군농민회]
영암지역의 한 농민이 도로변에 ‘태양광 반대’ 깃발을 달고 있다. [사진제공=영암군농민회]

미암면 호포리 간척지에서 만난 영암군농민회 권혁주 사무국장은 “이 간척지도 대규모 태양광이 계획 중이다. 지금도 멀쩡히 벼가 잘 자라고 있는데 염해농지로 보이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영암군 전체 논 면적이 1만6000㏊인데 추진 중인 태양광 발전 부지가 2000㏊ 가량 된다”라며 “간척지 한 곳이라도 염해로 인정받아 뚫리면 그 뒤로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영암지역 농민들은 호포리 일대 간척지에서의 태양광 개발을 불허해 달라는 탄원서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이런 우량농지에 태양광 개발이 허가되면 다른 지역의 간척지에도 들어설 것”이라며 “농지가 줄어들면 농지 임차료는 높아지고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고 영암군에 호소했다.

권 사무국장은 “심지어 시종면에서는 아예 발전소 이름에 ‘염해간척지’라고 이름을 붙였다”면서 “염해농지면 먼저 농사짓던 농민이 염해피해를 신고했을 것 아닌가. 간척지가 조성된 초기에나 염기가 안 빠졌지 그 이후로 수십 년간 염해가 없던 지역이다”라고 답답해 했다. 

귀농 6년 차인 윤수성(46)씨는 시종면 간척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윤씨는 “논농사 3만평 중 2만6000평 정도가 간척지”라면서 “자가는 6000평이고 나머지는 다 임차농지다”라고 말했다.

수만평 규모의 논농사를 지으려면 농기계를 필수로 구입해야 한다. 윤씨는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드론 등을 다 합치면 농기계값만 1억8000만원 들였다”라며 “농기계를 구비하고 있으면 농사지을 땅은 더 늘어나도 되니 현재도 농지를 알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씨는 자재비, 비룟값, 작업비, 기름값, 인건비 등도 날이 갈수록 상승하는데 임대인이 올해 임차료를 또 올려달라고 연락이 왔다고 귀띔했다. 그는 “귀농하며 진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갚으면 농기계가 고장 나 수리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간척지에 대규모 태양광이 들어설 수 있다는 소식은 이런 빠듯한 생활마저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윤씨는 “정부에서는 규모화된 농업을 권하는데 간척지에 태양광을 지으면 어디에서 대규모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겠냐”라며 “태양광 개발 얘기가 돌면서 언제 논을 뺏길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태양광 개발이 예정된 인근지역 마을은 주민들 간 찬반으로 나뉘어 또다른 갈등을 빚고 있다. 발전사업을 하려면 주민설명회를 거쳐야 하지만 뚜렷한 기준도 없어 요식행위에 불과한 지 오래다. 인근마을에서 반대가 높으면 예정부지에서 거리가 먼 마음에서 지지를 얻어 갈등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해당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임차농에게는 누구도 태양광 개발에 대한 찬반을 묻지 않는다. 농민들에게 간척지 태양광 사업은 생계 전반이 흔들리는 문제인데도 정작 이들에게는 지켜야 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여긴다.

영암지역 농민단체들은 군청 앞에서 농지 태양광 개발과 변전소 설치를 반대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550여일 넘게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영암군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영암지역 농민단체들은 현재 550일 넘게 군청 앞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하며 농지 태양광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제공=영암군농민회]
영암지역 농민단체들은 현재 550일 넘게 군청 앞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하며 농지 태양광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제공=영암군농민회]

영암군 한 관계자는 “간척지는 농업진흥지역이기에 농지 확보 차원에서 논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라며 “농업진흥지역을 태양광 개발로 이용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본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태양광개발 허가는 민원허가팀 소관”이라며 거리를 뒀다.

한편, 간척농지를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는 농어촌공사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간척농지는 기본적으로 농지 확보를 통한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공사는 본래 목적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라며 “태양광사업을 하려면 정부 부처와 협의할 사항으로 공사가 단독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농민들은 “신재생에너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농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생산한 전력을 도시로 보내기 위해 산자락을 파헤쳐 변전소와 송전탑을 짓는 것이 어떻게 청정에너지일 수 있냐고 의문을 표했다. 

한 농민은 “영암지역 전체 전력사용량이 지역 내 태양광·풍력 발전량과 맞먹을 것이다. ‘에너지 자립’을 얘기한다면 우리는 이미 달성했다”라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 농민은 “농지가 줄어들면 좋은 농지를 찾으려는 농민 사이의 경쟁이 심해지고 따라서 임차료가 더 올라간다”라며 “농지 상당수가 외지인 소유인데 누구에게 좋은 일이냐”고 물었다.

농지법 규제 완화 요구, 누구를 위한 건가

경상남도의회는 지난 4월 농지 소유 규제 완화 촉구 건의안을 가결했다. 경남도의회는 이 건의안에서 LH 사태로 인해 지난해 개정된 농지법이 농지 거래를 막고 있다며 다시 개정 이전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정된 농지법은 농지 소유권 이전 시 제출 서류를 보강했으며 시군 농지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 경남도의회는 농지법 개정 이후, 지난해 경남도에서 발급된 농지취득자격증명(농취증) 발급이 33.5%나 감소했다며 이는 도시민과 외지인의 농촌 유입 추세가 그만큼 경색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미 농지법은 비농업인의 토지 소유를 허가하는 예외조항 및 단서 16가지를 규정해 비농업인의 합법적 농지 보유 및 보유 증가는 예견된 현실”이라며 정부와 국회에 농지 소유 규제를 완화하는 입법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개정된 농지법을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은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고령농민들이 농지를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 주된 근거다.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억제하는 농지법 때문에 농촌이 어렵다는 것이다.

농지법 제3조는 ‘농지는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데 필요한 기반’이라며 ‘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돼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4조는 ‘국가와 지자체는 농지에 대한 기본 이념이 구현되도록 시책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고 의무를 규정했다.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김호 교수는 “농지 거래가 활발하다면 농사를 매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겠냐”라며 “농지법 완화 주장은 농지를 투기대상으로 보고 땅값을 올리고 싶은 의도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고령농이 소유한 농지는 농지은행(농지임대수탁사업)을 더 확대하고 정부가 농업진흥지역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정책수단으로 해결해야지 농지법이 문제가 아니라는 논지다.

김 교수는 “현행 농지법은 더 강화해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더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농민이 소유한 농지가 많을수록 이들은 땅값을 높이기 위해 용도변경을 시도하거나 개발사업을 반겨 결국 농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농지 거래가 활발해지며 덩달아 지가가 상승한다면 실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농지 구입 역시 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을 위한 정책방향이 무엇인지 정부와 국회가 고민할 지점이다.

영암군 미암면 호포리에 위치한 한 간척농지에서 벼가 여물어 가고 있다. ⓒ투데이신문
영암군 미암면 호포리에 위치한 한 간척농지에서 벼가 여물어 가고 있다. ⓒ투데이신문

사라지는 농지와 토지에 대한 농민의 권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지난 7월 농지소멸 개선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대규모 산단개발, 무분별한 농지 태양광 설치 등으로 농업진흥지역 해제나 농지전용이 진행돼 농지가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를 밝혔다. 그러면서 “농지는 식량안보와 식량자급률 제고, 농업의 경쟁력 확보, 기후위기 대응 등 농업이 갖는 공공성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지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여의도면적의 69배인 1만8512㏊나 줄어들었다. 특히 논 면적은 2017년 86만 4865㏊였으나 2022년에는 77만 5640㏊로 9만㏊ 가량 소실됐다. 이에 따라 국토면적 대비 농경지 비율도 2017년 16.15%에서 2020년 15.59%로 하락했다.

경실련이 2017년부터 올해 6월까지 산업단지 추진으로 농업진흥지역이 해제된 규모를 자체 조사한 결과, 경기도 220.6㏊, 충청남도 39.4㏊ 충청북도 27.7㏊로 나타났다. 경실련은 “산업시설용지는 대규모 개발 용이성이나 가격 경쟁력 등에 비춰 그 주요 대상이 농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또, 농지 태양광 개발에 대해서는 “잘 정리된 농지가 태양광 설치 대상이 되기 쉽다. 신재생에너지 활용도 중요하지만 기후위기와 환경보전의 수단이 될 수 있는 농지를 파괴하거나 기능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면 안 된다”고 반대했다. 경실련은 농지소멸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려면 농지 전수조사를 통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유엔농민권리선언 제17조는 농민이 토지(농지)에 대해 개인적 및 집단적 권리를 갖고 있다고 짚고 있다. ‘집단적 권리’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건국대학교 경영경제학부 윤병선 교수는 이와 관련해 “농민권리선언은 다른 국제 인권문서와 달리 토지에 대한 농민의 권리를 포괄해 농민이 적절한 생활 수준을 달성하려면 토지가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확인했다”고 풀이했다. 특히 집단적 권리를 인정해 개별적인 재산권 차원을 넘어 토지에 대한 농민의 권리가 행사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농민 상당수가 임차농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농민들을 ‘현대판 소작농’으로 전락시킬 것이 아니라면 농민권리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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