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개편, 또 내년으로 미뤄
“정책 일관성‧시장 예측가능성 떨어질 수도”

서울시 서초구 한국부동산원 강남지사에서 지난 20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시 서초구 한국부동산원 강남지사에서 지난 20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내년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올해 수준으로 동결되면서 당초 계획보다 현실화율이 낮아지게 됐다.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개편하겠다는 입장이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구체적 방안은 발표하지 않았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개편을 또 연기하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책 일관성을 해칠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1일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를 열고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계획 재수립방안을 의결했다. 국토부는 지난 정부에서 수립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대해 필요성과 타당성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또, 2024년 공시가격에 적용할 현실화율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2020년 수준에 맞춰 동결했다. 

기존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현실화율은 공동주택 75.6%, 단독주택 63.6%, 토지 77.8%다. 그러나 2020년 수준으로 현실화율이 동결되면서 공동주택 69%, 단독주택 53.6%, 토지 65.5%로 각각 낮춰지게 됐다.

국토부는 금리 인상, 물가 상승, 가계부채 증가 등에 따른 국민의 부담을 덜고자 공시가격 인상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현실화율이 동결되면서 공시가격 변동은 최소화될 전망이며 내년도 최종 공시가격은 연말 부동산 시세를 반영해 결정될 예정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에 대해 “지역별로 가격 변동에 따라 2020년 수준을 적용하는 것도 평가가 달라진다. 2020년도 가격보다 시세가 올랐다면 보유세가 사실상 감소했으니 유리하지만 시세가 더 떨어졌다면 그 반대”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세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동산시장에 긍정적이나 거래 활성화까지 영향을 미칠 사인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근본적인 개편’ 한다는데

국토부는 내년 1월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대한 연구용역에 착수해 그 결과에 따라 근본적인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국토부 김오진 제1차관은 “공시제도 현실화 계획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종합적인 처방이 필요한 만큼, 국민 눈높이에서 현실화 계획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공시제도는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에 따라 토지, 주택 등에 대해 매년 1월 1일 기준으로 적정가격을 공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국토부는 부동산의 시세 반영률의 목표치를 설정해 적정가격 반영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난 1989년 제도가 도입된 이래 조세(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건강보험료, 복지제도(기초연금, 장애인연금 등) 및 토지보상(보상, 소송, 경매) 등 60여개 행정제도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부동산 공시가격은 조사자가 산정한 시세와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따른 연도별 현실화율을 감안해 산정하고 있다. 국토부는 2022년 올해 공시에 적용되는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하향한 데 이어 내년도 공시도 올해와 동일하게 현실화율을 동결했다.

공시제도는 월드뱅크와의 MOU 등을 통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을 타진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 해외에서도 방법은 각자 다르지만 과세를 목적으로 부동산 가치를 조사하고 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달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국토부는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공시가격 검증센터를 설치하고 국민적 관심이 높은 공동주택은 층향별 등급과 평가자 등을 공개하기로 했다. 또,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인력을 지난해 대비 25% 증원해 공시가의 정확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현재의 공시가격 산정 방식은 국민의 일반적인 기대와 실제 공시가격이 괴리되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부동산 시장 급변 가능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국민부담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개편된 공시가격 산정 방식을 내놓지 못하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공시지가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표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지난 정부가 만든 계획이라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정책 일관성을 해치고 시장의 예측가능성도 떨어뜨리는 결과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세부담을 낮춰야 한다면 세율을 조정해야지 현실화율을 조정하면 실질과세 원칙을 위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방세와 종부세는 지자체 수입이기에 공시지가 현실화율 동결 결정은 중앙정부가 하고 막상 재원 부담은 지자체가 떠맡은 셈이 된 점도 문제다. 이 연구위원은 “과거에 정부가 감세를 하면 예외없이 지자체 세수를 보충하는 방안을 함께 만들었는데 이번엔 이례적으로 지자체 재원대책을 발표하지 않았다”라며 “중앙정부로서는 재정적 부담없이 생색을 낸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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