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본회의 앞두고 특별법 통과 촉구
양 무릎, 팔꿈치, 이마 땅에 대는 행위
“자식 잃은 부모들의 경고이자 호소”

19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관계자들이 ‘10·29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19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관계자들이 ‘10·29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전투태세야 전투태세!”

국회 정문 앞에 마련된 10·29 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 촉구 농성장 천막 안에서 유가족 및 관계자들의 탈의와 환복이 시작됐다. 무릎보호대 위에 점프 수트 형태의 먹색 방진복을 겹쳐 입고, 빨간 목장갑까지 착용하면 출전 준비 완료.

마치 총기를 배급하듯 각자의 손바닥 위에 핫팩이 지급됐으나, 기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이들이 사양하며 천막의 비닐을 걷었다.

붙이는 형태가 아닌 이상 주머니 없이 일체형인 방진복은 핫팩을 담기엔 역부족이었다. 손으로 쥐고 있을 여력도 없었다. 짐을 최소화하고 맨 몸으로 나서는 것이 비책이라며 서로를 조언했다.

최저 기온 영하 7도를 기록한 19일. 유가족과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단 종교인, 시민단체 활동가 및 관계자 45여명은 국회 정문을 기점으로 담장을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오체투지(五體投地)를 거행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전장은 가장 낮은 곳이었다. 오체투지란 불교 인사법의 일부로,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몸을 지저분한 땅에 닿게 함으로써 합일하는 예법이다. 단체는 다섯 걸음에 한 번씩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발 맞춰 걸음 하고, 북 소리가 울리면 낮아질 시간. 양 무릎을 닿게 하고, 두 손을 이용해 엎드리니 배가 바닥과 맞닿았다. 찬 기운이 복부에 번졌다. 이어 팔과 다리를 상하로 쭉 뻗고 이마가 닿으면 완성이다. 다섯 부위를 넘어 전신이 맞닿는 셈이다.

얇은 방진복은 바람을 온전히 들였으며 아스팔트 바닥에 닿는 이마며 상하체는 시려왔다. 국회 담장 밖을 한 바퀴 돌며 단체는 인도, 횡단보도, 자전거 도로를 불문하고 몸을 낮췄다.

자전거도로에서의 오체투지 ⓒ투데이신문
자전거도로에서의 오체투지 ⓒ투데이신문

오체투지는 머리를 들더라도 시선은 땅에 두며 고개를 들지 말 것을 권한다. 이 때문에 바닥에 온 신경이 집중됐다. 손으로 어느 곳을 디딜 것이며, 무슨 무늬가 있고 어떤 자연물이 있는지 말이다. 숙일 때마다 손바닥에 지형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설 때마다 마른 솔잎과 은행, 돌가루 등이 딸려왔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방진복은 쉽게 찢어졌으며, 이마에는 붉은 자국이 새겨졌다.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의 옆에 엎드린 후에는 두 세 종류로 나뉜 경찰화 종류를 분석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회를 향한 이들의 ‘인사’는 끊일 줄을 몰랐다.

북 채 닿는 소리에 온 신경이 집중될 무렵, 인사에 화답한 이가 있었으니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다. 현장에 나타난 남 의원은 유가족들과 인사하며 격려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들이 행하는 오체투지는 전날부터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오는 20일까지 3일 간 진행되고 있다.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은 “본회의에 이태원특별법을 여야합의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통과시켜 달라”며 “자식 잃은 부모들의 마지막 경고이자 간곡한 호소”라고 촉구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관계자들이 ‘10·29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관계자들이 ‘10·29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고(故) 신애진씨의 어머니 김남희씨 또한 “특별법이 꼭 통과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의 절규가 국회에 닿을 수 있기를’을 표어로 내세우며 국회를 에워갔다.

10·29 이태원참사특별법은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야4당 주도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지난 8월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본 회의의 문턱에서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故) 이주영씨 어머니 최진희씨는 어떤 힘으로 행동을 이어가고 있냐는 질문에 “안 그래도 일요일에 주영이한테 갔다 와서 기를 팍 팍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주영씨에게 “기다려 봐. 엄마아빠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지켜봐 줘”라는 말을 남겼다.

다섯 걸음에 한 번 하던 오체투지는 막바지에 열다섯 걸음에 한 번으로 박차를 더해갔다. 오전 10시 29분부터 시작된 30분여간의 기자회견 후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고행길이었다. 

오체투지를 마무리하며 방진복을 벗는 이들의 몸에서 김이 훅 올라왔다. 이들의 열기는 뜨겁고 여의도 국회 공기는 너무도 차갑기 때문일 테다.

오체투지에 나서는 4대 종단 종교인 관계자 뒤로 국회 본청이 보인다. ⓒ투데이신문
오체투지에 나서는 4대 종단 종교인 관계자 뒤로 국회 본청이 보인다. ⓒ투데이신문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