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일 이전 or 이후 사망 여부 쟁점화
前, 복무 중 사망…後, 민간인으로 사망
‘의무복무일 하루 전 목숨 끊었다’ 결론
정부, 여전히 순직 인정 처리하지 않아
재단 출범 앞둬…“그의 꿈은 우리 용기”

고(故) 변희수 하사가 생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강제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전 국외여행 허가서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고(故) 변희수 하사가 생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강제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전 국외여행 허가서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 처분을 받은 고(故) 변희수 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3년이 흘렀다. 남은 이들은 여전한 차별에 맞서고 있는 성소수자들을 위해  ‘변희수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2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군인권센터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등 32개 단체는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준비위)를 통해 고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한다.

앞서 경기 북부 모 육군부대 소속 변 하사는 지난 2019년 성전환 수술을 받고 이듬해 2020년 1월 23일 강제 전역 처분을 받았다. 변 하사는 해당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소송 중이던 지난 2021년 3월 3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사망 시점은 논쟁의 대상이 됐다. 그의 의무복무일은 같은해 2월 28일까지였는데, 이를 기점으로 이전에 사망했다면 복무 중 사망이지만, 이후라면 강제 전역 처분에 따라 민간인으로 사망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월 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변 하사가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20년 1월 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변 하사가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그는 끝까지 군인으로 남았다

군은 변 하사가 발견된 시점인 지난 2021년 3월 3일 기준, 전달 28일인 전역일이 지나 사망했기 때문에 순직 심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변 하사의 유족이 낸 전역 처분 취소 행정소송 판결문의 사건 경위 정리 부분에 사망 일자가 시신 발견일인 ‘3월 3일’로 기재돼 있기도 했다.

해당 자료 등을 근거로 지난 2021년 12월 육군은 변 하사가 변 하사가 이미 만기 전역한 것으로 본다는 취지의 ‘정상 전역 명령’을 내렸다.

반면 대통령소속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규명위)는 변 하사가 부사관 의무복무 만료일 이전인 2월 27일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판결문에 기재된  ‘3월 3일’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제출된 증거 등을 조사해 본 결과 변론주의 한계 등으로 잘못 기재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군사망규명위는 사망 당시 그의 신분은 여전히 군인이었으며, 앞으로도 여군으로 지속 근무를 원했던 만큼 그의 죽음을 ‘순직’으로 심사하라고 요구했다. 부당한 전역 처분이 그의 주된 사망 원인이라는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의무복무일 만료를 하루 앞둔 지난 2021년 2월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군 복무 중 성전환을 받고 강제 전역 처분을 받은 후 사망한 변희수 하사의 자택 현관문에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있다. 사진은 지난 2021년 3월 4일 그의 자택 앞. [사진제공=뉴시스]

‘군 복무 중 숨진 일반사망자’

그러나 강제 전역에 불의해 스스로 세상을 등진 변 하사의 죽음에 군은 줄곧 냉담했다.

변 하사의 신분은 ‘전역 직후 숨진 민간인 사망자’에서 ‘군 복무 중 숨진 일반사망자’로 변경됐다. 군인 신분으로 사망했음을 뒤늦게 인정한 셈이다.

육군은 지난 2022년 12월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열어 ‘변 전 하사의 사망은 공무와 타당한 인과관계가 없다’며 ‘일반사망’으로 분류했다. 사망 1년 10개월 만에 나온 판단이다.

군인의 사망은 전사, 순직, 일반 사망 세 가지로 분류된다. 군인사법에 따르면 군인이 의무복무 기간 중 사망하면 통상 순직자로 분류한다. 다만 고의·중과실 또는 위법행위를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 등에는 일반사망자로 분류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지난해 1월 국방부에 ‘순직 재심사’를 권고했으나, 현재까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단체는 국방부가 아무런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채 뒷짐만 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순직 심사에 대한 시한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군이 관련 절차를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순직을 인정할 경우 군의 강제 전역 처분이 불법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셈인지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지난 2022년 12월 1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지난 2022년 12월 1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호르몬 치료 알았는데, 성전환 몰랐을까

당시 군은 지난 2019년 성전환 수술 이후 그에게 생긴 신체 변화를 ‘심신장애’로 규정하고 강제 전역 처분을 내렸다. 여군으로 지속 근무를 원하던 변 하사가 전역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 도중 사망하자, 그의 유족이 소송을 이어 진행했다.

이에 지난 2021년 10월 7일 대전지법 행정2부는 “심신장애 여부 판단은 여성을 기준으로 해야 했다”고 보고 변 하사 유족에게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육군이 항소치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다만 군인권센터 등 단체는 변 하사가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군에서도 알고 있었으며 성소수자들에게 군과 사회는 여전히 혹독하다고 덧붙였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변 하사가)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2019년 8월에 알렸다”면서 “본인이 성전환 수술을 할 것이라는 것을 부대 대대장에게 알렸고, 대대장은 여단장과 군단장에게, 육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에게까지 보고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군인들은 국외여행 시 무엇을 하는지 스케줄을 적어 내도록 돼 있으며 당시 변 하사는 어디서 수술할지까지 적어 국외여행신청서를 상신(上申)했다”며 “호르몬 치료 사실을 알고 있고, 수술을 위한 국외 여행까지 승인한 군이 강제 전역 처분을 결정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2년 3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방면에 고(故) 변희수 하사 추모 광고가 걸려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22년 3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방면에 고(故) 변희수 하사 추모 광고가 걸려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변희수의 꿈은 우리의 용기일 것”

군인권센터는 “변 하사가 생을 마감하기 전 겪었던 여러 어려움은 대한민국에서 트랜스젠더가 보편적인 생활을 누리기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있다”며 “변희수의 꿈은 언제나 우리의 용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불행한 사건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트랜스젠더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 체계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홀릭(닉네임) 대표는 “군대 내에서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밝히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면서 “폐쇄적인 조직인만큼 커밍아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정체성 차이에도 불구하고 군 복무를 하는 성적소수자들이 많다”고 했다.

변 하사가 내부에 호르몬 치료 및 수술 계획을 보고한 이후 여군으로 전환되는 것이 논의됐으나 그가 사회에 공식 ‘커밍아웃’을 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는 내용도 나왔다.

이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여군으로 복무하는 것에 대해 문제가 없던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정부 자체에서 막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변 하사의 수술 후 신체 변화가 심신 장애로 정의된 것에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트렌스젠더 군인 복무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신체 훼손으로 자격이 없다’는 식의 판단은 내리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조직과 사회의 부당함에 맞선 변 하사에 대해서는 “자신이 선례로 남아 많은 성적소수자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마주할 수 있길 바란 듯하다”고 말했다.

홀릭 대표는 “실제로 성별정정요건이 일부 완화되고 있는 등 변화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며 “변희수재단의 설립에도 기대를 걸어본다”는 뜻을 밝혔다. 고인의 이름을 딴 재단은 오는 6월 출범할 예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