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참사, 노동계 긍정적 변화 가져와
책임자 솜방망이 처벌은 안타까움 가득
숱한 죽음 겪고도 반복되는 산재사망
매번 말뿐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

사고가 발생한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20대 청년노동자 김모군의 4주기가 돌아왔다. 이른바 ‘구의역 참사’로 불리는 이 사고는 비용절감과 이윤에 눈이 먼 기업의 이기심으로 인해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장의 외주화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들의 사고는 사업주가 위험방지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벌어진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마땅치 않았고,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꼴이 돼버렸다.

노동계는 매년 수없이 반복되는 산업재해 사망을 근절하기 위해 10년 넘도록 기업의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인재(人災)가 터져야만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결국 기업처벌법은 입법청원운동과 발의까지 이어진 19대, 20대에서 마저도 제정·시행까지 이어지지 못한 채 폐기됐다.

ⓒ뉴시스

‘솜방방이’ 처벌로 끝난 구의역 참사

지난 2016년 5월 28일, 2호선 구의역에서 20대 청년 노동자 김군은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승강장안전문)에 끼어 숨졌다. 당시 김군은 스크린도어 장애물감지센서를 청소하던 중 이 같은 변을 당했다.

김군의 사망은 단순 사고가 아니었다. 사고 당일, 김군은 ‘2인 1조’ 이상 근무가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소의 지시에 따라 홀로 고장장애가 발생한 구의역으로 향했다.

또 스크린도어 계폐 시에는 역무실·전자운영실과의 출동보고 작업 전 보고 등 소통이 이뤄져야 하지만 사실상 사(死)문화된 절차인 탓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열차는 예정대로 역으로 진입했고 이를 미처 피하지 못한 김군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로부터 4년,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는 김군의 사고가 그간 우리 사회 노동 이슈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위험의 외주화가 사회적으로 드러났고, 2018년 故 김용균씨 사고와 함께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이끌어 냈다. 그동안 싼값에 고용됐던 특성화고 학생들의 목소리도 커지게 됐고, 서울메트로에 근무하던 김군의 친구들도 정규직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노동자의 삶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고, 그와 관련된 정책들이 많이 생기게 됐다”고 평가했다. 

아쉬운 지점도 있었다. 노동계는 구의역 사고 이후 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한 기업의 ‘외주화 시스템’을 비판하며, 김군이 소속된 하청업체 ‘은성PSD’와 더불어 당시 원청인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의 책임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안전관리 책임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은성PSD 대표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와 함께 사회봉사 200시간을 확정받았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메트로 이정원 전 대표는 벌금 1000만원을 확정 받았다.

2017년 기준 10년간 4만2000건에 달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 중 책임자 구속은 단 9건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구의역 참사는 이전의 산재 사고와 다르게 진일보한 판결이 내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앞길이 구만리처럼 창창한 20대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이 끔찍한 사고의 대가라기엔 처벌 수준이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다.

당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2인 1조 작업이 불가능한 인력 상태를 방치하고, 2인 1조 작업이 잘 이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소홀히 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결 이유라면 명백한 살인방조죄에 해당하지만 원청 사업주에게 벌금형만 선고했다”며 “사회는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사법부의 변화는 너무도 더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루에 3시간 마다 1명의 노동자가 죽어간다”며 “솜방망이 처벌로는 산재를 막을 수 없고 산재사망사고 1위 국가 오명을 벗어날 수도 없다”고 규탄했다.

지난 2017년 4월 12일에 열린 당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발의 기자회견 ⓒ뉴시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어디로 갔나

구의역 참사와 같은 기업의 안전 의무 소홀로 인한 산재사고는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했던 노동자 故 김용균씨는 홀로 근무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서, 건설노동자 故 김태규씨는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이들 역시 사용자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위험방지 의무를 제대로 다 하지 않아 목숨을 잃게 된 제2, 제3의 김군이었다.

사실 노동계는 구의역 사고 이전부터 숱하게 반복되는 산재사고를 끝내기 위해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꾸준하게 목소리를 내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취지는 원청 기업 총수 등 경영 총책임자에게 산재 발생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으로, 2006년 노동계가 ‘최악의 살인기업선정’과 더불어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국내에 알리며 제정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2012년에는 ‘산재사망 처벌 강화 특별법’ 입법 발의, 서명운동, 집회 등이 이어졌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2015년부터 입법 청원 운동이 본격화됐다.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꾸준하게 목소리를 낸 덕분에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20대 국회에서는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나 △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조치 의무 강화 △사업주·경영책임자 보건조치의무 강화 △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처벌 강화 △재해에 대한 기업 처벌 강화 △재해에 대한 정부 책임자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다양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발의됐다.

그중 故 노회찬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2017년 9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 상정됨에 따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가시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특별한 논의 없이 3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20대 국회가 막을 내리게 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김종민 대표는 산재사고에 대한 기업의 처벌 강화와 더불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김 대표는 “법원이 산재 사고 책임에 너무나 관대하다. 그동안 법원은 솜방망이 판결을 해왔다”며 “판결의 하한선이 필요하다. 아무리 상한선을 높여봐야 법원에서 낮게 선고하면 소용없다. 최소한의 형량을 두고, 재범을 저지르면 형량을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계 값보다 목숨 값이 싸다는 기업가 인식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가로막아 왔다. 구의역 김군 사고를 계기로 이 같은 사고에 대해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바뀌어야 한다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며 “산재사망은 법 하나 바뀐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하나의 국가적 재난으로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열린 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기간 선포 기자회견 ⓒ뉴시스

21대 국회선 ‘기업 처벌 강화’ 빛 보나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시일 내 개원할 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쟁취를 꾀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136개(20년 5월 26일 기준) 단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라는 범 시민사회 운동본부를 발족했다.

본부는 “2006년부터 살인기업 처벌 운동을 전개했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노동자의 안전과 시민의 안전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속에서 노동자 시민재해에 대한 기업과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법을 준비했고 2017년 20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브레이크 없는 죽음의 질주를 멈추기 위해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기업이 안전 조치를 잘 하는지 관리·감독해야 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노동자들은 생명과 안전을 위한 조치가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부는 “끊이지 않는 재난참사와 산재사망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지만 20대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했다. 그러는 사이 죽음의 행렬은 이어졌다”며 “솜방방이 처벌로는 안전을 위한 조치를 비용으로만 여기는 기업과 정부의 탐욕을 제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람 목숨이 하찮게 여겨지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며 “기업 눈치 보고 권력 유지에만 관심 있는 세상의 바꾸는 법을 만들고 기업과 정부의 변화를 촉구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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