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아빠
“사회통념과 정반대의 모습”
“아빠들도 육아 경험 필요해”

(왼쪽부터) 정의현씨, 강아란씨, 정루아양 사진제공 = 정의현씨
(왼쪽부터) 정의현씨, 강아란씨, 정루아양 <사진제공 = 정의현씨>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모성애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육아, 아이를 키우는 일이다.

아이가 아프면 밤새 간호하는 모습, 어린 자녀가 잠을 자다 깨서 울면 달래서 다시 재우는 모습,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돌보는 일. 육아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광경들이다.

그리고 이 같은 광경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대부분 엄마다. 엄마가 육아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엄마들이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모성애와는 반대로 부성애라는 말을 듣고 육아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엄마와 아빠에게 기대되는 사랑의 모습이 다른 것이다.

사회적으로 엄마아빠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불편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육아를 하는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외출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엄마는 어디 갔어?”라고 한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질문이다.

육아를 하는 아빠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실제 육아하는 아빠, 일하는 엄마는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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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노동이다

일을 그만두고 21개월 된 딸의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있는 ‘육아빠(육아하는 아빠)’ 30대 초반 정의현씨는 “육아는 아빠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는 육아를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아내와 저를 비교했을 때 제가 더 체력이 좋아요. 애를 안고 짐까지 들고 다니면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요. 저는 쉽게 들고 갈 수 있는데, 애가 점점 자라면서 아내에게는 버거워져서 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부부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여성보다는 남성이 근력이나 체력이 더 좋잖아요. 세심한 부분은 아내가 더 잘 챙길 수 있겠지만,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제가 더 낫다고 봐요.”
-정의현씨

정씨의 배우자인 30대 방송작가 강아란씨는 성별에 따라 육아를 담당하기보다는 부부간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맡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육아에 엄마아빠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남편이 아이 돌보는 걸 보면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거든요. 엄마만이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없어요. 다만 성격에 따른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남편은 세심하게 아이를 살피지는 못해요. 예를 들면 아이 얼굴에 트러블이 생겨도 알아채지 못하는 거죠. 또 남편은 요리를 많이 해봤던 게 아니라 아이 끼니를 챙기는 것도 차이가 좀 나죠. 하지만 신랑이 육아를 담당하게 되면서 아이가 더 활발해지고 도전적이게 되는 것 같아요. 성별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부부는 그런 차이가 있어요.”
-강아란씨

강씨는 출산 한 달 전부터 딸이 9개월 되던 지난해 5월경까지 휴직을 했다. 일 욕심이 많은 강씨는 하루빨리 복직을 하고 싶어 했다. 다행히 강씨는 어렵지 않게 복직할 수 있었다.

“저는 일하는 걸 좋아해서 경력단절을 많이 걱정했어요. 작가는 복직이 쉬운 편이라서 다행이었죠. 일한 경력이 있어서 복직은 힘들지 않았어요.”
-강아란씨

강씨가 복직을 하면서부터는 정씨가 육아를 담당하게 됐다. 목사인 정씨는 육아를 담당하기 전까지 교회에서 일했다. 정씨가 육아를 담당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문제였다. 넉넉하지 않은 교역자(교회의 종교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소득 탓에 강씨가 휴직하는 동안 가계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교역자 소득은 적은 편이에요. 월세나 공과금 등을 빼고 나면 아이에게 드는 돈을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죠. 그래서 빚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정의현씨

육아를 전담하던 정씨는 지난 1월부터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다.

“출산 전까지 가사노동은 5:5 정도로 분담했어요. 수입은 7:3 정도로 아내가 더 많았고요. 출산 후 아내가 복직하고 제가 육아를 전담하면서 일을 안 하다가 올해 1월부터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게 됐어요. 지금은 9:1 정도로 아내가 수입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어요.
-정의현씨

정의현씨가 딸 루아양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정의현씨
정의현씨가 딸 루아양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정의현씨>

‘육아하는 아빠’ 생각 못하는 사회

아빠가 육아를 담당하는 일에 대해 정씨와 강씨의 부모님들은 모두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들은 ‘그래. 넌 집에 있을 성격이 아니지’라고 말하더라고요. 어머니는 제가 커리어를 쌓아가는 걸 환영하는 입장이셔서 ‘정서방한테 좀 미안하긴 하네’라고 하셨지만 반대하지는 않으셨어요.”
-강아란씨

강씨의 지인들은 ‘남편이 아이 봐줘서 좋겠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같은 반응에 대해 강씨는 ‘남편이 많이 도와주는구나’라고 이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육아를 10 중 9 정도 담당한다고 보는데, 주변에서는 남편이 그 정도 담당한다고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남편이 6:4 정도로 저보다 조금 더 돌본다고 이해하죠. 아빠가 육아를 전담한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강아란씨

정씨는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 불편한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했다.

“육아를 전담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덤덤하게 받아들이셨어요. 가까운 사람들은 잘 이해하고 넘어가는데,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어른들이 ‘엄마는 어디 있어?’하고 물어봐요.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예요. 아빠랑 둘이 나왔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죠.”
-정의현씨

이 같은 말을 들으면 강씨는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빠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한부모가정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해요. 사회적인 편견이 만들어내는 시선이죠. 제가 일을 하겠다고 해서 남편이 괜히 듣지 않아도 되는 말을 듣게 되는 것 아닌가 싶어 한편으론 미안하죠.”
-강아란씨

정루아양이 아빠 정의현씨 함께 방송작가인 엄마 강아란씨의 근무현장을 방문해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 = 정의현씨
정루아양이 아빠 정의현씨 함께 방송작가인 엄마 강아란씨의 근무현장을 방문해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 = 정의현씨>

여자가 돈 버는 게 어때서

1년여 간 육아를 전담한 정씨는 딸을 돌보면서 어머니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저는 엄마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어요. 엄마가 제게 주신 사랑 때문에 저도 딸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제게 보여주신 모습을 그대로 딸에게 하고 있는 거죠.”
-정의현씨

강씨 역시 일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 이유를 어머니의 모습에서 찾았다. 어머니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온 탓에 여성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엄마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셨어요. 당시 사회분위기를 생각하면 아빠께서도 가사노동이나 육아에 많이 참여하신 편이지만, 어머니께서 더 많은 부분을 담당하셨어요. 소득, 가사노동, 육아 모두 어머니께서 더 많이 부담하셨던 것 같아요. 제 기억 속에 엄마는 ‘일하는 엄마’예요. 그래서 ‘여자가 돈 버는 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죠.”
-강아란씨

정씨는 딸이 만 3세가 될 때까지는 육아를 전담할 생각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낼 수 있을 때까지는 제가 육아를 전담할 생각이에요. 아이를 맡길 곳이 생기면 육아 부담이 줄어들 테니까요.”
-정의현씨

정의현씨가 여행지에서 딸 루아양을 안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정의현씨
정의현씨가 여행지에서 딸 루아양을 안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정의현씨>

“모성애,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

강씨 부부는 자신들이 사회통념상 엄마아빠의 모습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남편이 육아를 담당하면서 제가 소득에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일을 하다 힘들고 화나면 그만둘 수도 있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한번 더 참게 돼요. 부모님 세대의 통념에는 제 모습이 부성애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요.”
-강아란씨

“저희 부부는 사회적 통념과 정반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내가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제가 육아를 하니까요. 또 저희 부부는 ‘자주 안 보는 사람이 혼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내가 엄한 모습으로 훈육을 담당해요. 아내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당하고, 제가 어머니의 모습을 담당하는 거죠.”
-정의현씨

강씨는 사회통념상 본능이라고 여겨지는 모성애에 대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했다.

“제 아이를 보면 뭉클한 게 있어요. 함께 있어주지 못하면 조금이라도 더 잘 해주려고 하고, 불편한 것 없이 챙겨주고 싶어요.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히 본능이겠죠. 다만 ‘엄마라면 당연히 아이 옆에 있어줘야지’, ‘엄마가 더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어’와 같이 엄마에게 특정한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본능과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거라고 생각해요.”
-강아란씨

정씨 역시 엄마가 더 육아를 잘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아이가 엄마랑 있던 시간이 길었다보니 저랑 있을 때도 엄마를 많이 찾았어요. 아이에게는 밥을 주는 사람이 우선일 텐데, 제가 육아를 전담하기 전까지는 모유를 먹고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나는 아빠라서 아이를 챙기는 게 힘든 건가’ 싶기도 했어요. 아이도 저도 적응을 하면서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지금은 엄마가 없어도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요.”
-정의현씨

정씨는 아빠들이 꼭 육아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엔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나 휴업이 많아지면서 아빠들이 아이를 많이 돌보기는 해요. 그런데 이것도 잠깐일 거예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들이 육아를 전담하게 되겠죠. ‘위대한 모성’이라고들 하는데, 그 위대하고 좋은 걸 왜 엄마들에게만 강요하죠? 육아를 하는 아빠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남편들도 육아휴직을 쓰고, 육아를 경험해봐야 해요. 해봐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되니까요.”
-정의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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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형태’ 강요하는 모성애

모성애와 부성애는 엄마아빠가 자식에 대해 갖는 본능적인 사랑을 뜻한다. 하지만 이 단어가 갖는 실제적 의미는 어버이의 사랑을 넘어 그 형태까지 규정하는 말이 됐다.

정씨의 말처럼 ‘육아하는 아빠’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는 육아를 하지 않고 일을 하는 엄마, 일을 하지 않고 육아를 하는 아빠들을 향해 ‘평범하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 같은 시선을 받는 강씨 부부는 ‘육아를 더 잘 하는 성별은 없다’는 말에 동의했다. 이들은 오히려 부부의 상황에 따라 육아를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이를 돌보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흔히 ‘모성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위대하다’며 상찬하는 말로 희생을 엄마에게만 강요되고 있다.

부부의 맞벌이가 일상이 된 시대에서 모성애가 엄마의 희생을 강요하는 말로 소비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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