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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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SNS 대화방에서 여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성적인 표현을 한 남고생에 대해 학교 측이 내린 징계를 법원이 무효로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징계 무효 판단의 이유로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는 생활기록부에 기재돼 향후 당사자가 진학하거나 직업을 선택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신중히 조치해야 한다”고 밝혀 가해자에 온정적인 판결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인천의 한 고등학교 2학년 A군은 친구 2명과 함께 페이스북 메신저 대화방에서 여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며 순위를 매기고 성적인 표현이 적힌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남학생이 올린 사진을 본 A군은 “(여학생이) 성적 취향을 받아주면 결혼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대화는 대화방에서 이름이 오르내린 한 여학생이 대화내용을 알게 되면서 드러났습니다.

이 여학생은 학교 선배로부터 태블릿PC를 빌려 썼다가 A군의 계정이 저장된 페이스북을 보고 A군을 비롯한 남학생들의 대화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피해 여학생은 해당 대화에서 함께 이름이 언급된 다른 여학생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성적 수치심에 학교에 신고를 하게 됐습니다.

학교 측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어 A군 등의 대화내용이 사이버 성폭력 등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A군에게 출석정지 5일, 학급 교체, 특별교육 5시간 이수, 여학생 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 등의 징계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에 A군은 “해당 대화내용은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고, 설사 해당한다고 해도 학교의 징계는 재량권을 벗어나 위법하다”며 학교법인을 상대로 징계조치처분 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인천지법 민사14부(부장판사 고연금)는 A군이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등 성희롱성 대화가 이뤄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학교폭력예방법에 명시된 위법행위에 준할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3명만 있는 대화방에서 대화가 이뤄졌고 피해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직접 보낸 것은 아니다”라며 “전후 대화 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서로 놀리고 장난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표현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 같은 표현이 명예훼손·성폭력에 해당하거나 음란정보와 같은 심각한 내용으로도 보기 어렵다”며 학교 측의 징계가 위법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학교 측의 징계에 대해 “학교 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는 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며 “향후 당사자가 진학하거나 직업을 선택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신중히 조치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SNS 대화방에서 이뤄진 성희롱은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직장 등에서 꾸준히 반복돼 왔습니다.

2015년 국민대, 2016년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2017년 관동대, 동국대, 인하대, 홍익대, 2019년 경북대, 경인교대, 경희대, 국군간호사관학교, 서울교대, 청주교대, 충북대 등 대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의 단체대화방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밖에도 기자 단톡방, 정준영 등 연예인 단톡방, 일렉트로마트 등 직군을 가리지 않고 남성 단체 대화방에서는 이 같은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남성들의 SNS 대화방에서는 일어나는 성희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남성집단 내에서 성희롱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낮은 수준의 처벌과 가해자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입니다.

대검찰청 연감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접수된 사건 2287건 가운데 기소된 사건은 558건에 불과하며, 982건은 불기소 처리 됐습니다.

또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 사건 5022건 중 무기 또는 유기징역이 선고된 경우는 1356건이며, 1636건은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기계적인 감형과 가해자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법계의 태도가 성희롱, 성폭력 등 반복되는 성범죄를 막지 못하는 이유가 된 것입니다.

이번 남고생 단톡방 사건의 경우에도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징계 또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사법계가 학교 측이 내린 징계를 무효로 판결해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가해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처벌하는 것은 사법부의 임무입니다. 성희롱, 성범죄에 대해 엄정한 판결을 내리고 가해자들의 인식이 개선될 수 있도록 사법계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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