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의 국민인식조사 결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국민이 8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권위가 지난 23일 발표한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90.8%)는 ‘누구도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 그리고 내 가족도 언젠가 차별을 하거나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외에서 발생한 혐오와 차별 사례를 접하면서 국민 10명 중 9명(91.1%)이 ‘나도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권위는 코로나19가 국민들의 차별 민감성을 높이는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한 존재(93.3%),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한 존재(73.6%), 여성,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 필요(92.1%)라는 인식에도 상당수 동의한다고 응답해 타인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높은 수준의 인식과는 달리 국민 10명 중 8명(82.0%)은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차별로는 △성별(40.1%) △고용형태(36.0%) △학력·학벌(32.5) △장애(30.6%) △빈부격차(26.2%)로 집계됐으며, 10명 중 4명(40.4%)은 과거에 비해 차별이 심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차별은 해소를 위해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사회문제라는 인식을 가진 국민은 93.3%로 나타났으며, 특히 차별 해소를 위한 차별금지법 등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에는 국민의 88.5%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당론으로 채택해 오는 29일 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정의당 의원실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혐오세력의 항의문제와 전화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의당 장혜영 혁신위원장은 지난 25일 자신의 SNS에 “정의당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한다는 소식에 댓바람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의당 의원들의 휴대폰 번호가 공개돼 항의문자와 전화가 빗발치고 의원실 전화 또한 마비상태에 가깝다”고 밝혔습니다.
‘슈퍼 여당’이 된 민주당과 청와대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동성혼 법제화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성소수자 차별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인 바 있습니다. 또 지난 총선 기간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당시 후보는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묻는 미래통합당 오세훈 당시 후보의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며 혐오를 일삼는 보수 개신교 세력의 비난을 받게 되면 지지율이 떨어질 거라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인권위 조사를 보면 이미 사회적 합의는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회적 합의’라는 방패를 내세우며 미룰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정의당뿐만 아니라 인권위 역시 차별금지법의 이름을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으로 바꿔 발의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지’라는 단어로 인해 과도하게 규제하는 법안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헌법상 기본권인 평등을 강조해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인권위는 오는 30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국회에 입법을 촉구하는 의견을 표명할 예정입니다.
지난 2006년부터 논의된 차별금지법 제정이 21대 국회에 이르러 다시 한번 본격적인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사회적 합의’를 거론하며 성소수자 인권을 나중으로 미뤄 온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 더 이상 피할 곳은 없습니다.
국민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정의당과 인권위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21대 국회에서마저 차별금지법 입법이 좌절된다면 더불어민주당에는 차별금지법 제정 의지가 없다는 것이 탄로 나는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모든 국민이 차별을 ‘사회적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만큼,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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