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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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치매는 과거 망령, 노망 등으로 불리며 노화 현상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많은 의학적 연구를 통해 뇌 질환임이 밝혀졌고, 치료를 위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중앙치매센터가 지난 4월 발표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9’에 따르면 2018년 전국 치매상병자(의료기관에서 치매 진단 및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약 84만4285명이다. 치매환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치매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치매라는 명칭에는 이미 차별적인 인식이 담겨있다. 어리석을 치(痴)자와 어리석을 매(呆)를 합쳐 어리석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보’, ‘미치광이’와 같은 의미이며, 모멸감을 주는 표현이다.

이 같은 이름 때문에 환자들이 편견과 차별을 겪게 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병명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만·홍콩·일본 등 용어 변경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이 같은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자신의 치매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라고 밝힌 청원자는 “치매가 두려운 이유는 아직 원인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있지만,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이기 때문”이라며 “이제라도 치매라는 질환제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야 하며, 그 시작은 ‘치매’라는 반인권적 용어를 새로운 말로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차별적 병명은 그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이라며 “어리석음을 뜻하는 치매라는 단어는 환자나 가족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실제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나 의료진은 치매라는 용어의 사용을 피하고 있으며, ‘인지장애’등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만·홍콩 등 해외에서는 치매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이로 인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실지증(失智症)’, ‘뇌퇴화증(腦退化症)’ 등으로 명칭을 바꿔 부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04년 치매의 명칭을 인지증(認知症)으로 변경해 의료현장은 물론 복지현장, 학계, 언론 등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서대학교 보건상담복지학과 장세철 교수 외 2명이 지난 4월 동아시아일본학회 일본문화연구에 기고한 논문 ‘치매인식개선에 관한 연구 - 치매용어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도 모멸감, 치매의 실태를 정확히 나타내지 못하는 점, 낙인효과 등이 치매라는 표현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일본 후생성은 이 같은 부정적 병명이 조기발견·조기진단 등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등의 이유로 용어 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국민 앙케이트 조사를 통해 치매를 인지증으로 대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6월 2일 서울 강남구 국민건강보험 서울요양원에서 치매환자 보호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6월 2일 서울 강남구 국민건강보험 서울요양원에서 치매환자 보호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국내서도 용어변경 시도 됐지만

한국에서도 이 같은 문제제기는 지속돼 왔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용어 변경을 시도한 바 있다.

지난 2014년 보건복지부는 전문가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치매 용어 변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전문가들의 50%는 용어 변경에 찬성했지만, 시민들은 23%만이 찬성하는데 그쳤다.

이 설문에서 시민들은 병명에 대한 거부감(7.11%)보다는 질환에 대한 두려움(48.2%) 때문에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고 응답했다. 당시는 아직 국민의 인식이 크게 부정적이지 않았던 탓에 용어 변경으로 인한 불편 초래 등을 이유로 변경되지 않았다.

이후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가 도입되면서 치매라는 병명을 다른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치매국가책임제 간담회에서는 환자 가족 등이 명칭 변경을 건의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치매를 다른 용어로 대체하기 위한 법안을 내놓았다.

20대 국회 시절인 2017년 7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치매의 병명을 인지장애증으로 대체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같은 해 9월에는 당시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이 치매라는 용어를 인지저하증으로 변경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차별·편견 이유로 병명 변경 사례 많아

한센병, 조현병(調絃病), 뇌전증(腦電症) 등 차별·편견 등을 이유로 병명이 변경된 사례는 많다.

과거 문둥병·나병(癩病)·천형병(天刑病) 등으로 불리던 한센병은 지난 2006년 그 법적 용어가 변경됐다. 한센병 환자를 일컫는 말로 쓰일 뿐만 아니라 인격모독적 표현으로 사용되는 문둥병 등의 용어를 변경해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또 조현병의 경우 변경 이전까지 정신분열병으로 불렸다. 그러나 어감으로 인해 병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 병에 대한 편견으로 환자와 그 가족에게 고통이 되는 점 등을 고려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2010년 11월 정신분열병의 명칭을 조현병으로 개정하기로 결정했으며, 2011년 3월 대한의사협회의 추인에 따라 명칭이 바뀌게 됐다.

간질은 지난 2010년 5월 대한의사협회는 대한뇌전증학회와 한국뇌전증협회의 요청에 따라 간질의 공식 명칭을 뇌전증으로 변경했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2014년 보건복지부는 간질을 뇌전증으로 바꾸기로 했다.

차별과 편견을 이유로 질병의 용어가 변경된 사례가 있는 만큼 치매라는 단어가 환자와 그 가족에게 상처가 되고, 질병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조기 발견에 방해가 된다면 인식 개선을 위한 용어 변경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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