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4일

『공부의 철학』을 읽었다. 퇴근 후 독서의 절반은 업무의 연장이다. 책을 만들기에 평생 학습을 내 업무의 근간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공부’는 출판계의 소중한 아이템이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두 음절 속에서 인문학과 자기계발이 교차한다. 인문학이 인격의 성숙을 도모한다면, 자기계발은 욕망의 충족을 추구한다. 수도사적 공부의 길을 제시하는 『공부하는 삶』이나 전통적 공부의 개념을 조망한 『공부란 무엇인가』와 고시 합격 수기들을 모아놓은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나 하버드 열망에 불을 지른 『7막 7장』을 비교해보라. 공부는 이 모두를 아우른다.

공부의 이러한 면모를 고려한다면,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곧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공부에 무관심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여전히 공부라는 주제로 책이 쏟아져 나온다.

『공부의 철학』은 그런 책무더기에서 건져 올렸다. 공부에 대한 그의 설명이 참신해서다. “깊이 공부한다는 것은 동조에 서툴러지는 것이다.” 주변과 어우러져 살아가던, 좋았던 시절을 떠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집단의 압력이 강력한 일본의 맥락을 고려하며 음미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더욱이 지금은 온 세계가 SNS라는 온라인 공간이 흥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받는 동조에의 압력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자는 공부를 안전한 둥지로부터 떠나는 행위, 즉 자기 파괴로 규정짓는다. 이를 부정적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안온히 거하던 알을 깨고 나와야 바깥세상을 조우하듯 자기 파괴의 목적은 속박을 벗어나 누리는 참다운 자유에 있다. 자기 파괴는 주변 흐름과 사회 풍조에 맞추라는 유무형의 압력을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 여기에는 불화와 고독이라고 하는 대가가 따른다.

이는 새로운 동조, 새로운 구축으로 이어진다. “공부란 어떤 전문분야의 동조로 이사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언어의 문제로 수렴된다. 언어는 인간을 구성한다. 언어를 바꾸면, 인간이 바뀐다. 『공부의 철학』은 20세기 철학의 문제의식, 이른바 ‘언어학적 전회(轉回)’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근대 사상가들이 인간 내면(의식)에 관심을 집중한 반면, 현대 사상가들은 언어에로 관심의 방향을 전환했다.

새로운 공부는 새로운 언어를 장착하는 것이다. 가령 리걸 마인드가 장착된 법조인은 삶의 모든 순간을 숨쉬듯 자연스럽게 법률 용어로 번역해낸다. 새로운 언어를 장착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야를 획득하는 것이기도 하다. 법학의 눈, 생물학의 눈, 철학의 눈 등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는 또한 새로운 관계를 제공하고, 새로운 경험을 매개한다.

<strong>바벨 도서관의 사서</strong><br>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br>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br>​​​​​​​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br>나 역시 마찬가지다. <br>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바벨 도서관의 사서
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
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언어 하나를 체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끝까지 버틴다면 결국 달성할 수 있는 경지다. 그 사이에 가다 쉬다를 반복하는 것은 정상이다. 완벽해지고 하는 강박은 버려도 좋다. 자기 것으로 향유하고자 한다면, 적절한 선에서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를 ‘유한화(有限化)’라고 말한다.

『공부의 철학』은 인문교양과 자기계발 사이에 서있다. 부러 자기계발의 외피를 뒤집어쓴 교양서적이다(후속작 『공부의 발견』에서 저자가 직접 말한 바다). 이런 저자의 시도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그가 가리키는 달은 참된 공부, 깊은 공부다. 자기계발서는 시험에 합격하는 공부의 비결을 알려주지만, 저자는 변화와 성장을 독려하는 깊고 참된 공부를 독려한다.

전업 학생일 때에도 내 관심은 늘 참된 공부에 있었다. 세상이 조형한 틀에 갇히지 않고, 참 자아로 살아가기 위한 공부를 갈망했다. 세상에 맞춰 사는 모습이 참 자아가 아닌 것 같아서였다. 해서 『공부의 철학』의 저자 지바 마사야의 생각에 충심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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