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이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청소노동자 사망 유족 및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유족인 이홍구씨로부터 연서명 결과를 전달받고 있다. ⓒ뉴시스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이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청소노동자 사망 유족 및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유족인 이홍구씨로부터 연서명 결과를 전달받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근무 중 숨진 청소노동자 이모씨의 유족과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하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교육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씨가 숨진 지 40일 만이다.

유족과 청소노동자들은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 자리에서 오 총장을 만났다. 오 총장은 “유족과 근로자 여러분께 위로와 사과 말씀을 드린다”면서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의 행정지도 사항 이행을 위해 TF를 조성했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 교육도 지시해 상호 존중하는 문화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장기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기숙사) 청소노동자 이씨는 지난 6월 26일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노조)에 따르면 이씨가 근무했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는 건물이 크고 학생 수가 많아 업무량이 많은 편이었다. 이씨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기숙사 건물에서 쓰레기봉투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나르며 일했다.

이같은 업무강도에 더해 지난 6월 1일 새로 부임한 안전관리 팀장 A씨는 근무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청소노동자 회의에 필기구를 지참하지 않으면 감점하겠다고 협박했다. 업무와 무관하게 격식을 갖춘 복장으로 출퇴근할 것을 강요하고업무에 불필요한 문제를 출제해 시험을 치르게 했다. 또 시험 점수를 공개해 청소노동자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등 스트레스를 줬다.

A씨를 포함한 관리자 3~4명이 몰려다니며 청소상태를 검열해 업무량이 크게 늘어난 이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했다.

유족과 노조는 높은 노동강도와 A씨의 갑질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씨가 죽음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씨의 사망 이후 서울대 학생처장, 행정대학원 교수 등이 각각 자신의 SNS에 A씨를 두둔하는 내용의 글을 올려 비난을 받았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과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과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학생·노조·시민사회 처우개선 요구

이날 간담회에 앞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과 노조는 ‘서울대 청소노동자 처우개선 요구 시민사회 연서명 전달식’을 열고 총 8305명, 312개 단체가 참여한 연서명을 대학 측에 전달했다.

공동행동 등은 “사망 사건 이후 고인의 죽음 뒤에 지나친 노동강도 및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이 있었음이 드러났다”면서 “극심한 노동강도와 직장 내 괴롭힘, 갑질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 당국의 대응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대 관계자는 갑질 행위를 두둔했으며 대학 당국은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사과도, 책임 인정도, 실질적인 대책 제시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심지어 노사 공동 산업재해 조사단을 구성하자는 노동조합 측의 요구에도 거절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학교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 ▲노사가 함께 산업재해 공동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규명에 나설 것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직장 갑질을 자행한 팀장 등 책임 있는 관리자들을 징계할 것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노조와 적극 대화할 것 ▲강압적인 군대식 인사관리 방식을 개선하고 청소·경비 노동자의 인간다운 처우 보장을 위해 인력충원을 비롯한 근본적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지난 7월 15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아고리움에 근무 중 숨진 청소노동자의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뉴시스
지난 7월 15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아고리움에 근무 중 숨진 청소노동자의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뉴시스

고용노동부, 서울대에 개선지도

한편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15일부터 28일까지 이씨의 사망과 관련해 유족과 행위자, 노동자 등 관련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왔다. 그리고 같은 달 30일 일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있다고 판단하고 서울대에 개선할 것을 지도했다.

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한 사항은 ▲필기시험 실시 및 시험성적의 근무평정 반영 관련 의사표시 ▲복장에 대한 점검과 품평 등이다.

노동부는 필기시험 실시 및 근무평정 반영 의사표시와 관련해 “필기시험 문항에는 업무와 무관한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고, 행위자는 근무평정제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시험성적을 근무평정에 반영한다는 내용의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시험 중에 게시했다”고 지적했다.

시험내용이 외국인과 학부모 응대에 필요한 소양이라는 행위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전교육 없는 필기시험이 교육수단으로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고, 필기시험에 대한 공지를 선행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필기시험 실시 및 근무평정 반영 의사표시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복장점검과 품평에 대해서는 “행위자는 2차 업무회의에 ‘드레스코드’에 맞는 복장을, 3차 업무회의에 퇴근 복장을 입고 참석할 것을 근로자들에게 요청했고, 행위자가 회의 중 일부 근로자들의 복장에 대해 박수를 치는 등 품평을 했다”면서 “복무규정 등의 근거 없이 회의 참석 복장에 간섭하고 품평을 한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서울대 측에 조사 결과를 통보하고 개선방안, 재발방지, 조직문화진단 계획을 수립해 모든 노동자가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관할 지방노동관서에 조치 결과를 제출하도록 즉시 개선과 재발 방지를 지도했다. 아울러 행위자에 대한 필요조치와 함께 서울대 전체근로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특별 예방교육 실시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했다.

서울대학교에서 근무 중 숨진 채 발견된 청소노동자의 유족 이홍구씨가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오세정 서울대 총장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대학교에서 근무 중 숨진 채 발견된 청소노동자의 유족 이홍구씨가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오세정 서울대 총장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유족 “증언한 노동자 불이익 없어야”

숨진 이씨의 남편인 이홍구씨는 이날 간담회에서 “소나기가 지나가길 피하려는 느낌의 자리가 아니길 바란다”면서 “이런 자리가 조금 더 빨리 마련됐다면 우격다짐으로 뭔가 얻어내려고 하는 불쌍한 사람들로 비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사결과를 기다리느라 2차 가해의 아픔을 느꼈다”면서 “청소노동자도 학내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가 되고 싶다. 현장 노동자와 행정직간 최소한의 예절과 존중이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의 동료들이 용기 내 증언해주셨다. 그분들이 정년 때까지 어떤 불이익 없이 학교에서 일할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오 총장은 “사회가 서울대에 바라는 타인에 대한 존중문화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동료 근로자에 대한 부분은 전혀 문제가 없을 테니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