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숨진 채 발견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 전환 대책 사실상 X
NDC 40% 달성 위해 노후 화력 발전소 폐쇄 불가피
화력발전소 폐지보다 비정규직 고용유지 우선돼야

경남 고성군 소재 삼천포화력발전소
경남 고성군 소재 삼천포화력발전소 ⓒ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화력발전소 폐쇄를 앞두고 한국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에서 근로하던 30대 노동자 A씨(38)가 숨진 채 발견됐다. 

19일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경남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전 한국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 비정규직 노동자 A씨는 본부 비품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긴 점과 타살 흔적이 없다는 점 등을 토대로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난 2015년부터 삼천포발전본부의 경상정비 전기팀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해 왔다. 그런데 그가 근무하던 6호기가 오는 2028년 폐쇄 후 LNG발전소 전환이 결정됐다. 아내와 어린 딸이 있는 가장인 A씨는 발전소 전환으로 인해 이직을 준비해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조는 고인이 발전소 폐쇄를 앞두고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한국발전기술은 2018년부터 3개월 단위로 계약갱신을 하는 ‘쪼개기 계약’을 자행해 왔고 이로 인해 발전소 폐쇄를 앞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발전소 전환에 따른 노동자를 위한 대책으로 직무 전환교육 및 재취업알선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게 노동계의 목소리다. 

故 김용균 씨 1주기인 10일 오후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추모제
지난 2019년 故 김용균 씨 추모제에 참석한 노동자 ⓒ뉴시스

환경정책에 밀려 방치된 비정규직 노동자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문 대통령이 제1회 ‘푸른 하늘의 날’ 행사 축사를 통해 “임기 중 노후화된 석탄발전소 10기를, 2034년까지 노후화된 석탄발전소 20기를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와 2050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소중립위)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최대 21기 추가로 폐쇄하는 NDC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듯 정부와 탄소중립위가 NDC 40% 달성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를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4월 정의로운에너지전환 연구팀이 비정규직 노동자 7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발전소 폐쇄 시점을 인지하고 있는 노동자는 단 8.7%로 나타났다. 

발전소가 언제 폐쇄할지조차 모르는 가운데 느끼는 고용불안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폐쇄로 인해 고용불안을 느끼는 노동자는 92.3%에 달했다. 반면 폐쇄 시 다른 일자리가 준비돼 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4.3%에 불과했다. 정부의 재취업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노동자는 26.5%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은 절정에 달했지만, 이에 상응하는 일자리 대책이나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았다.

노동자들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화력발전소 폐쇄 절차는 계속해서 진행되자 일각에서는 화력발전소 폐쇄 책임을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전가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인천시 국정감사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은 “충청남도의 경우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14기를 폐쇄해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탄소중립 전환을 위해 불가피하지만 이에 따라 지역경제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7월 환경단체 체인저스가 서울 통일로에서 삼척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환경단체 체인저스 삼척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반대 거리 행진 모습 ⓒ뉴시스

화력발전소 폐쇄, ‘고용유지’가 관건

물론 정부가 발전소 폐쇄에 따른 노동자 고용유지에 마냥 손을 놓은 건 아니다. 

정부는 지난 7월 22일 한국판 뉴딜2.0의 후속 조치로 마련된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 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석탄발전 및 내연 자동차 사업체 집중지역의 고용 위기에는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재직자들의 신산업분야 직무 전환 훈련을 지원해 고용유지를 유도하기로 했다. 또  2025년까지 노동자 10만명을 대상으로 ‘산업구조 대응 특화훈련’(신설)을 실시하는 등 신산업분야 직무 전환훈련을 대폭 확대하고, 장기 유급휴가훈련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성장 유망직종으로의 직무 전환을 촉진한다. 

불가피한 인력조정이 발생할 경우 사전 전직 준비와 재취업 지원도 강화할 예정이다. 전직 희망자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재직 중 미리 전직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전직·재취업 준비를 근로시간 단축 사유로 인정하고, 기업에 인건비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더불어 이직한 근로자가 신속하게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자동차 및 발전 분야 산업별 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를 통해 사전 전직 수요조사를 시행해 맞춤형 훈련과정을 운영하고, 훈련 중 생계 불안 없이 훈련받을 수 있도록 저금리(연1%)로 생계비 대부를 지원한다.

이렇듯 정부 나름의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대책방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게 노동계의 목소리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신정원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앞선 정부의 정책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앞선 방안들이 진정성이 있고 의지가 있었더라면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대화를 했어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대화가 일절 없었는데 어떤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정부 정책의 경우 외주의 확대 정책,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탈석탄 정책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현재 곳곳에서 충돌이 이뤄지고 있다. 그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해결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책만 내놓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신 국장은 “적어도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이 계속해서 충돌한다는 것은 이에 대한 재편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라며 “화력발전소 폐쇄가 시대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다면 고용보존이 이뤄진 다음 폐쇄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 맞다. 적어도 당사자들에 있어서 무작정 폐쇄를 이어갈 것이 아니라 명확한 답을 내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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