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월요일

데이비드 앨런의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을 읽다.

안식에 대한 책을 읽은 김에 시간 관리 서적도 더불어 다시 살펴보다가 집어 들게 되었다. 예전에 공병호 박사의 번역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로 읽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번역자이자 한국리더십센터의 창립자로 유명한 김경섭 박사와 김선준 교수가 개정판을 새롭게 번역한 것으로 읽었다(분량이 확 늘어 예전과 달리 책이 상당히 두터워졌다).

업무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 책이 소개하는 것은 GTD(Getting Things Done)라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업무 관리 프로그램이다(현재 한국리더십센터에서 이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워크숍을 실행하고 있다). 혼동하기 쉽지만 사실 GTD 프로그램은 시간 관리 기법이 아니라 업무 관리 기법이다(하지만 현실을 보면 원서나 번역서나 모두 시간관리 분야로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GTD는 목록을 적절히 활용하여 당장 해야 할 일과 차후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질서를 부여하여 순차적으로 처리해내게 하는 방식이다. 물론 시간 관리 기법과 병행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병행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자체는 일정표 작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은 업무 관리 기법이기에 업무 목록 작성이 중요하다. 이메일에 답장하기, 치과병원에 내원하기, 배우자의 생일선물 선택하기 등 머리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모든 일거리(stuff)를 모조리 꺼내어 이 목록(INBOX)에 담아야 한다. 온라인(가령 이메일)에든 오프라인(가령 서류함)에든 상관없다.

인간 두뇌에 대한 새로운 접근

이 제안의 근간에는 인간의 뇌가 기존 정보의 저장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조를 위한 기관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미완의 과제들이 우리의 의식을 갉아먹어 주의력과 에너지를 소모시킨다.”(브라흐마 쿠마리스)

기존 방식의 해야 할 일들 목록(“불명확한 일들의 불완전한 목록”)처럼 그냥 대충 적어두는 게 아니라, 이를 온전히 처리했을 시에 얻을 성과와 이를 위해 수행해야 할 행동을 생각해서 정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딱 2분 동안 투자하라고 저자 데이비드 앨런은 말한다(2분을 넘어서는 일이라면 차라리 위임하거나 연기하라). 특별히 우선순위 정리를 위해 고심하지 말고 결과와 행동 위주로 고민하고 이를 정리한다. 이후 옵션을 검토하고 선택하고 실행한다.

업무 처리 과정 5단계

데이비드 앨런은 업무 처리 프로세스를 5단계로 제시한다(위에서 소개한 논의와 어느 정도 겹친다). 각 단계에 대해 여기서 충분히 소개하기는 어렵다. 대충 핵심만 정리해 보자.

수집(미완의 일거리들을 한데 모은다)→명료화(어떤 일인지 파악하고 그 일을 위해서 어떤 구체적 행동이 필요한지 아닌지 분별한 후에 이를 직접 실행할지 아니면 위임하거나 연기할지 판단한다)→정리(범주화시켜 물리적인 형태 안에 담아 언제든 확인이 가능하게 처리한다)→검토(적절한 주기를 따라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만큼 이 목록들을 검토한다)→실행(자신의 직관을 믿으며 적절하게 실행한다)

이제까지 다룬 바와 같이 기본 아이디어 자체는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많은 훌륭한 아이디어가 대개 그렇듯이 여기서도 실제로는 고려할 사항들이 많고, 선결과제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해야 할 일에 대해 집중이 요구된다. 중요한 일에는 특히 더 집중해야 한다.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문자와 이메일이 날아와도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첫 단계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미처 정리하지 못한 숱한 정보들을 끄집어내어 한데 모으고, 이를 명료화하고 행동을 판단하는 등의 과정에 통상 이틀 정도는 잡아야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시 말해 주말이나 휴일 정도는 통째로 할애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물과 같은 마음 만들기, 물과 같이 시간 대하기

그럼에도 내가 데이비드 알렌의 책을 주목하고, 또 여기에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관리해야 하는 것이 과연 시간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GTD 자체는 시간 관리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 관리가 아니라 업무 관리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내가 판단하기로 많은 사람들이 계측 가능한 물리적 시간에 집착하여 시간 관리의 강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에는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질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이 내포되어 있다. 그걸 통제하려는 시도는 대체로 실패하기 쉽다.

바벨 도서관의 사서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나 역시 마찬가지다.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바벨 도서관의 사서
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
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따라서 물리적 시간 자체보다는 그 시간 안에서 진행되는 노동과 안식의 리듬에 집중해야 한다. 한 주간의 주기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주기일 것이다(하루는 짧고, 한 달이나 한 해는 길다). 일주일로 구성되는 노동과 안식의 고유한 리듬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아보기를 권한다. 시간 관리 면에서도 높은 효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간의 질적 차원을 깨달은 많은 이들이 일주일 단위로 접근하는 것을 본다. 이는 시간의 자연스러운 리듬에 따라 자신을 맞추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데이비드 앨런 또한 바로 그런 접근의 유용성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데이비드 앨런이 물과 같은 마음을 이야기할 때, 이는 무엇보다도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를 함축하는 것일 테지만, 자연적 리듬 혹은 흐름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물과 같은 마음 만들기와 물과 같이 시간 대하기는 궤를 같이 한다. 우리는 통상 각자 마음의 상황을 시간에 투사하기 마련이다. 물론 마음이 투사되는 외부의 대상이 꼭 시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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