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비람풍, 고전·현대 소설, 각종 이론서로 학습
인간과 AI는 서로 비교대상이 아닌 별도의 대상
AI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다양한 시도 예상
사회적 제도 변화 및 정부의 적극적 개입 필요

<지금부터의 세계> 김태연 소설감독(작가) ⓒ투데이신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가본 사람만이 창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거대담론과 정면 승부를 벌이기는 쉽지 않다. 큰 그림으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것도 미덕이다. 무수한 물음표를 던지는 우리 시대의 문제작임에 틀림없다. 이 역사적 기획을 감히 두려워하며 추천한다. -소설가 이문열


【투데이신문 조유빈 기자】 인간은 AI보다 창의적인 면모에 더 앞서가며, 특히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예술 같은 경우 AI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야라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현재 AI 예술가의 소개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AI화가 중 구글의 ‘딥드림(Deep Dream)’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딥드림은 기존에 학습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작품으로 손쉽게 변형이 가능하다. 지난 2016년에 샌프란시스코 경매에서 딥그림의 그림이 약 9만 달러가 넘는 금액에 낙찰됐다고 한다.

또한 안창욱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팀이 발명한 국내 최초 AI 작곡가 ‘이봄(EvoM)’은 여러 장르의 음악들을 섭렵하고 있으며 몇 분짜리 곡들을 몇 초 만에 만들 수 있다. 실제로 한 신인 가수가 이봄의 곡을 받아 앨범까지 내기도 했다.

AI의 예술에 대한 도전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25일 AI가 국내 최초로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를 출간해 화제가 됐다. 이번 소설의 기획자인 김태연 소설 감독이 당시에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소위 말해 ‘미쳤다’고 말할 정도로 수학을 좋아했던 그는 소설에도 관심이 많아 연세대학교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하면서 국문학을 부전공했다. 그는 2014년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세계적인 수학자들과의 토론 과정해서 이번 기획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음해에는 소설 스타트업 ‘다품다’를 세웠고 자연어 처리(NLP) 스타트업 ‘나매쓰’와 협업하며 새로운 길을 닦았다. 이것이 바로 한국소설에 특화된 AI인 ‘비람풍’의 탄생 배경이다.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알려진 AI 소설은 거의 단편에 불과했다. 안 그래도 한국어는 어렵기로 이름난 언어 중 하나임에도 비람풍은 장편소설을 써낸 것이다.

이처럼 AI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점차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미지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AI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 것일까. 시대의 흐름이라며 체념해야 되는 것일까, 아니면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되는 것일까.

<투데이신문>은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카페에서 AI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의 소설감독 김태연 작가와 만나 AI의 등장으로 인해 변화될 세계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지금부터의 세계> 김태연 소설감독(작가) ⓒ투데이신문

Q. '소설감독‘이란 말이 생소하다.

아마 ‘소설감독’이란 말 자체를 쓰는 게 제가 세계 최초일 것이다.

처음에는 AI 비람풍을 보조작가 혹은 대필작가라고 칭하려고 했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니, 비람풍과 같이 협력해 이뤄낸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비람풍이 아닌 나를 칭하는 말이 바뀌어야 된다고 깨달았다.

영화감독은 시나리오를 써서 거기에 맞는 배우를 섭외해서 카메라로 담아낸다. 나 또한 AI 비람풍에게 자료와 설정을 입력한다. 만약 장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다시 또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이런 과정들이 마치 영화감독의 역할 같다고 느꼈기 때문에 ‘소설감독’이라고 칭하게 됐다.

Q. 이번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간단하게 말하면, 다섯 명의 주인공인 지체장애인인 아마추어 수학자, 수학과 교수이자 벤처 사업가, 정신의학과 의사, 천체물리학자, 불문에 귀의한 스님 등이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의 비밀을 탐구하면서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여가는 과정이다.

Q. AI작가 ‘비람풍’을 소개한다면.

비람풍은 우주 성립의 최초와 최후에 분다는 거대한 폭풍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학사에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일으키고자 그렇게 작명했다.

7년에 시행착오가 있었다. 2014년도에 세계 수학자들의 토론회에 참석해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때 바로 상표나 특허청 등록을 하고서 스타트업을 비롯해 이런 저런 곳에서 많은 도움들을 받아 완성된 것이 AI 비람풍이다.

비람풍은 딥러닝(Deep Learning, 학습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컴퓨터)이 탑재돼 수많은 동서양 고전과 각종 이론서, 현대소설 등을 학습해 이번 작품을 완성시켰다.

Q. 현재 비람풍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아직까지 비람풍은 대필 작가 수준이다. 아직 완벽한 수준의 문체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습된 지식을 끌어오는 게 대단한 수준이다. 내 의도와 다르게 정보와 표현이 과하거나 너무 많은 정보를 담아 이야기가 삼천포로 향할 수 있지만 그 부분은 내가 개입한다.

Q. 비람풍의 앞으로의 성장은.

작가의 세부적인 표현력을 따라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구상에 있어서도 아직은 비람풍이 부족한 면모가 많다. 하지만 비람풍은 계속 학습해나가고 있다. 앞으로 머지않아 더욱 풍부해지고 질 높은 작품이 생겨날 것이라고 본다.

이 우주가 종이 한 장을 확대한 모양임을 수학적 현미경, 물리학적 가속기로 보고서도 왜 중질을 더 오래 한 지 아시오? 공자가 말한 회사후소(繪事後素 : 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은 후란 의미)를 마음 속 깊이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라면, , 이 백지 한 장의 전생 때문이라오. 종이 전생은 나무였지 않소? 나무! 그 나무의 전생은, 그러면? 듣건대 택배 박스를 일반 책종이로 만든다고 하니, 그러면? 나아가 이 나무가 사는 이상한, 기묘한 또 다른 별세계를 발견하지 않았겠소. 자연에서만 사는 나무가 아니라 A4 용지나 택배 박스로서 사는 나무가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도 사는, 디지털 공간 속에서도 사는 나무들 말입니다. 자동 의사결정 트리, 그게 바로 AI 아니오. AI란 신세계의 주춧돌이 트리이니까. 해서 나를, 트리를, AI세계를 일신(一新)하고자 하는 거라오. 미국에서 활약하는 이쪽 전문가 베프를 멘토로 모시고 고시생처럼 열공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죠. 또 다른 타불라 라사(tabula rasa:백지)를 향하여 팍팍한 길을 걷는 이 인간 좀 응원해주면 안 되겠소? 형부로서. 언니가 라면 로서.

 

(중략)

 

이어지는 이금지의 드센 공격을 전직 승려는 잘도 받아냈다. 고론(高論)으로 증명까지 하였다. 극도의 단순함, 심오한 단순성이야말로 모든 신비의 원천임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금지는 자신의 상상력에 여백이 많음을 실감한다. 심사(深思)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그 화룡점정을, 전직 승려가 현란한 수식의 바다로 선보인 우주 방정식을, 인생 함수를 한글 버전으로 통분하고 약분하고 기약해서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우리로 변하는 순간이 죽음이요

우리가 나로 변하는 순간이 탄생이로다

 

-<지금으로부터의 세계> p428~430
 AI소설가 비람풍x 소설감독 김태연

Q. 사람인 작가와 AI 작가와 비교한다면.

사람들은 곧잘 인간과 AI 중 누가 뛰어나나 비교를 하려고 하는데, 일단 인간과 AI를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자동차와 사람 중 누가 더 빠른지 경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AI는 AI대로 인정하고, 사람은 사람대로 인정해야 된다. 이제 우리는 다른 시점으로 AI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Q. 소설가란 직업이 AI에게 대체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AI가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해주는 것으로 인해 시간 절약이 되고 더 전문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고 본다. 위협당한다는 생각보다는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구성을 짜는 것은 아직까지 인간만의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나 무슨 일을 할 때 마무리를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기계가 예술을 대체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가진 영감을 AI가 한다는 것은 다른 영역이라고 본다.

Q. AI의 발달이 어디까지 이뤄질 것이라 보는가.

AI의 발달은 이 순간마다 계속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딱 단정 지어서 얘기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AI의 학습량은 엄청나다. AI 소설가라고 해서 그 직업이 소설가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화가도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작곡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AI는 계속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어떻게 자리 잡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Q. 왜 사람들은 AI의 발달에 두려움을 느끼는가.

사람들은 AI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새 기술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자동차도 통제가 안 되는 경우에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는 이미 인간 사회에서 없으면 안 될 이동수단으로 자리매김돼 왔다.

앞으로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듯 AI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된다.

ⓒ게티이미지뱅크<br>
ⓒ게티이미지뱅크

Q. 그렇다면 인간이 이런 급격한 AI의 발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가.

이런 부분은 사회적인 시스템과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이런 식으로 눈 깜짝할 새에 발달이 됐고 이제 AI도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AI의 베이스인 수학 공부에 대한 비중을 늘리거나 재교육을 한다거나 등 시대의 흐름에 맞게끔 변해가고 배워가야 된다. 그렇다고 해서 AI분야를 뺀 그 외의 것이 다 중요치 않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다. 다른 전문 분야도 정말 중요하다. 그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된다는 의미다. 이런 건 제도적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되는 부분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소설은 수학 자체를 쉽게 풀어내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기울였다. 수학의 절대성 등과 같은 심오한 매력을 수학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잘 전달됐으면 싶었다. ‘AI가 쓴 소설’이라는 점에만 집중하기 보다 소설의 내용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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