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내용 일부 블라인드에 올라와…내부 직원 증언에 비판 잇달아
“밥당번 예산, 직원 석식비로 충당돼 구경도 못한 채 소모되기도”
한전 관계자 “영상 제작 의도는 사내 문화 개선, 합리화 시도 아냐”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공사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에서 사내 갑질 악습인 ‘밥당번’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한전은 내부적으로 ‘밥당번’ 악습에 대해 이해 해야할 문화인 것처럼 표현한 동영상을 제작해 그 의도에 의문이 붙고 있다.

18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한전 본사는 최근 밥당번을 다룬 홍보동영상을 제작해 사내에 배포했다. 지난 6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게시된 <한전의 폭력적인 문화 “밥당번” 합리화 하기>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해당 동영상의 내용이 일부 소개돼 있다.

이 동영상은 부장과 갖는 밥당번에 의문을 제기하는 직원에게 한 직원이 “저녁식사 한끼 떼운다고 생각하라. 1주일 내내 하는 게 아닌 한끼다”라고 설득한다. 이어진 식사자리에서 부장은 “다들 기러기 아빠에 타지살이하는 홀아비 신세다. 나도 같은 신세다”라며 한탄하고 동석한 직원은 “아는 선배가 ‘이래서 밥은 같이 먹어야 돼’라고 말하는데 짠하고 울컥했다”면서 맞장구를 친다.

블라인드는 본인 회사 이메일로 인증을 해야 활동이 가능하기에 해당 글을 올린 게시자는 한전 관계자로 추정된다. 블라인드에는 최근 또다른 한전 인증 회원이 작성한 “아직도 돌아가면서 밥당번 하는 곳이 있다? 그것이 한전이니깐. 끄덕.”이라는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한전의 밥당번 악습 의혹은 최근에만 불거진 사안이 아니다. 블라인드에는 이외에도 한전 내부의 밥당번 악습에 대한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내용을 보면 “순번 정하고 지사장에게 식사 대접하고 술시중도 든다”, “조폭문화다”. “부장 달려면 술당번 밥당번해야 되는데 자신이 없다” 등으로 일관되게 밥당번 악습이 한전 내부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블라인드에 한전 밥당번 악습을 비판한 게시글을 올린 A씨는 본보 취재에서 “밥당번인 저녁식사로 업무 외 시간에 대접받는 상급자를 제외한 직원 모두 고통받는다”라며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고통분담을 하니 한명이 빠진다고 하면 윗사람이 그를 반역자 취급하며 괴롭힌다”고 전했다. 밥당번 체계에 대해서는 “밥당번을 받는 상급자는 부장 이상 직책이며 본부장이 있는 사업소면 본부장이 받는다. 안 받는다고 하면 그 아래 직급이 받는다”라며 “본부장 밥당번은 부장, 차장이 참여하고 부장 밥당번은 차장과 그 아래 직급이 참여하는 식이다”라고 귀띔했다.

이어 A씨는 밥당번 예산에 대해 “예를 들어 본부장 밥당번을 B부서 부장이 참여하면 이 때 B부서 직원들 앞으로 나온 석식비 예산을 소모하게 된다. 그러면 B부서 직원들은 야근 뒤 석식을 못 먹게 되고 본부장 등은 야근을 하지 않고도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된다”라며 “물론 정산은 직원에게 영수증만 넘겨서 직원 이름으로 정산하도록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대부분 상급자 주도로 야근 후 석식비는 구경도 못하고 소모되는 부분이 매우 많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금은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행하며 술잔돌리기 문화는 없어졌다. 식사시간이 제한된 이후로 그나마 밥당번 부담이 적어졌지만 그 이전에는 2차, 3차까리 대접해야 했다”라며 “본사 차원에서 술잔돌리기 근절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는데 밥당번은 이번 동영상처럼 합리화를 하며 근절 캠페인을 하지 않는다. 결국 묵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밥당번 악습 의혹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제가 된 밥당번 동영상에 대해선 “사내문화 개선 취지로 제작했다. 밥당번 사례가 실제로 있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픽션으로 만든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블라인드에 글을 게시한 직원은 영상 취지를 오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조직문화 개선 목적으로 영상을 만들었지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미를 위한 픽션이며 부조리한 문화는 개선하자는 캠페인 활동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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