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윤석열 당선자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대통령직 인수가 한창이다. 국무총리 후보자가 내정됐고,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약 한 달 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선자와 인수위의 현 정부인 문재인 정부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경쟁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고문을 향한 정치 보복설이 돌고 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조작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고가 옷 장식품 논란, 산업자원부 인사 관련 수사의 3년 만의 재개, 경기도 법인카드 관련 수사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윤석열 당선자가 “통합”을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정치 보복을 준비하는 모습이라고 규정하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사에서,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겉으로는 통합을 강조했다. 특히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이후 후삼국 분열 등 분단 상황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왕조가 들어섰을 때마다 통합을 강조했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 문무왕(文武王, ?-681)은 백제 부흥 운동을 벌였던 웅진도독(熊津都督) 부여융(扶餘隆)과 화맹(和盟)을 맺었다. 이후 당(唐)이 고구려, 백제의 옛 영토와 신라에 도독부(都督府)와 도호부(都護府)를 설치해 삼국 지배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당과 전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백제와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과 연합했다.

후삼국의 분열을 끝내고 고려를 세운 고려 태조 왕건(王建, 877-943) 역시 후백제와 대립했지만, 왕위 계승 과정에서 아들에게 연금됐던 견훤(甄萱, 867~935)을 구해 자기 편으로 포섭했고, 신라에 대하여 유화적 태도를 보여서 신라 스스로 항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란족에게 멸망한 발해의 유민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의 모습은 대립했던 왕조나 나라들과 통합의 입장을 취한 사례다. 그러나 신라가 펼쳤던 행정제도인 9주5소경은 겉으로는 경주가 한반도에서 지리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었지만, 과거 고구려, 백제 영토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반란에 대한 감시의 기능도 담당했다. 또한 왕건은 지방 호족의 자식과 혼인 관계를 맺어서 호족과 연대하는 동시에 호족의 자식을 인질로 삼는 이중의 효과를 도모했다. 그리고 후대가 지켜야 할 교훈으로 남긴 훈요십조에서 차령산맥과 공주강 이남 지역의 인물을 등용하지 말라고 했다. 겉으로는 풍수지리를 이유로 들었지만, 과거 후백제 지역 출신 인물에 대한 경계의 의도가 담겨있다.

분열되지 않았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수립된 조선 왕조도 마찬가지였다. 이성계(李成桂, 1392-1398)가 왕위에 오른 후 한동안 개경(開京)에 머무르면서 나라의 이름도 고려를 그대로 썼다. 특히,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 1345-1394)을 원주에 보낸 것을 제외하고 왕씨 일가를 보호했다. 그러나 과거 고려 왕조를 그리워하는 민심이 줄어들지 않았고, 이성계보다 고려 왕씨들이 더 귀하다는 점괘가 나왔다는 소문이 돌자 신하들이 왕씨 일가의 주살(誅殺)을 요구했고, 이성계가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공양왕을 비롯한 왕씨 일가를 주살했다. 그리고 태조가 왕위에 오르고 2년 뒤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바꾸고, 3년 뒤에는 한양으로 천도(遷都)했다. 국호를 바꾸고 천도한 것 역시 과거 왕조의 흔적을 지우고, 과거 왕조의 부흥을 도모하는 세력의 힘을 빼겠다는 의도가 강했다. 왕명 교체와 천도는 준비에 시간이 걸림을 고려했을 때 조선 개창 초부터 기획됐고, 조선 개국 세력이 애초에 고려 왕조를 포용할 생각이 없었음을 방증한다.

현대, 특히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후에도 수구·진보 개혁 정권을 가리지 않고 과거 정권에 대한 단죄는 이어졌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군부 독재 세력과 이들에게 협력했던 세력의 청산 차원에서 과거 정권을 단죄했다. 노무현 대통령 초기에는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에 있었던 대북 송금 관련 특검이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노무현 정권에 대한 탄압은 노무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이 “정치적 타살”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당시 새누리당에서 “공천학살”이라는 이름의 이명박 정권 때의 인사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있었던 것도 유명하다.

과거 집권 세력을 단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진짜 죄가 있어서 단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없는 죄를 만들거나 죄를 부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주로 전 집권 세력의 부도덕함을 드러냄으로써 현 집권 세력의 집권 정당성을 극대화하거나, 전 정권의 지지도가 높고 현 정권의 지지도가 낮을 때 현 정권의 지지도를 올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윤석열 당선자의 지지도가 문재인 정권의 지지도보다 낮은 현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통합을 선택할지 단죄를 선택할지 지켜보자.


1) 고운기, 「문무왕-삼국 통일을 완성하고, 나라의 틀을 세우다」, 『인물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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