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가격’ 두 번째 납부자, 배우지망생 김용현씨의 이야기
중학교 때부터 배우 꿈 꿔 학원行…연기과로 예술고·대학 진학
밤샘 연출부 스태프·전단지 배포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계 유지
현직 예술인 “대부분 낮은 임금·프리랜서 근무…포기·진로변경 많아”
학자금·생활금 대출 쌓여…연기 위해 6년간 1억1000여만원 지출

‘빈곤이란, 누구나 갖는 꿈을 똑같이 갖고 있지만, 실현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 -도서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中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우리나라도 빈곤 문제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특히 고달프게 살아가는 빈곤 청년들에게선 꿈을 잃은 슬픈 자화상을 여과 없이 목도하게 된다.

과연, 꿈이라는 작은 씨앗에 푸른 싹이 트고 잘 익은 열매가 맺히기 위해선 몇 리터의 땀과 눈물이 필요할까. 그간 흘려온 땀과 눈물로 꿈이라는 씨앗에 물을 준다면 꿈은 무탈하게 자라날 수 있을까. 또, 우리 사회라는 토질(土質)은 꿈을 심기에 얼마나 비옥한가.

다들 ‘꿈을 크게 가져야 깨졌을 때 그 조각도 크다’고들 말한다. 꿈을 크게 가지는 것조차 사치스러울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무기력하게 깨져버린 꿈의 조각들이 온 몸을 할퀴어 올 때,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선 그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맨 몸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청년들에겐 꿈은 어떤 존재일까.

<투데이신문>이 만나본 꿈꾸는 빈곤 청년들의 눈빛은 그 무엇보다 뚜렷이 빛났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침이고, 밤이고 죽어있다. ‘꿈의 가격’을 제때 지불하기 위해서다.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꿈을 오롯이 자력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청년들은 심적으로도, 물적으로도 빈곤했다. 청년들은 꿈을 담보로 가불인생을 살고 있다. 

너무나도 성실한 이들은 깨어있는 동안 꿈의 청사진에 열심히 덧칠한다. 꿈은 아름답다고들 말하니까, 여기저기서 열심히 긁어모은 가장 선명한 색으로 가득 채운다. 그런데 이상하다. 덧칠을 하면 할수록 소중한 청사진이 흐려진다. 청년은 급하게 붓을 내려놓는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그려나가는 꿈의 가격은 얼마일까. 

출근 시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전단지 나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용현 씨. 이날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 날씨였다. ⓒ투데이신문
출근 시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전단지 나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용현 씨. 이날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박효령 기자】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이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부터 몰입감 넘치는 연기력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브로커>의 배우 송강호까지. 이처럼 국내 대중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출연하는 배우들도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 문화는 날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많은 청년들도 제2의 송강호를 꿈꾸며 ‘배우’가 되기 위한 여정에 동참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본보가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연기학원 관계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K-컬처’라고 불리며 한국 예술과 예술인이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국내 예술계는 비전이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고 싶어도 매체 진입 장벽이 높아 재능만으로 승부를 볼 수 없는 시스템이다보니 장기간 무명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 문제에 봉착해 배우라는 꿈을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12년 동안 배우를 꿈꿔온 김용현(27·가명)씨도 현재 꿈과 현실, 그 혼란의 기로 앞에 서 있었다. 현재 용현씨는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품었던 배우라는 자신의 꿈이 현실에 부딪혀 너덜너덜하게 해져버린 기분이다.

그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 비싼 등록금을 대가며 예술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워터파크 수질관리요원, 서빙, 공사 현장 근로자, 연출부, 무대·세트 제작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해가며 맨땅에 헤딩했다.

하지만 용현씨에게 돌아오는 건 결말을 알 수 없는 시나리오와 같은 삶이었다. 현재 그는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혀 잠시 배우라는 꿈을 고이 간직한 채로 생계 유지에 힘쓰고 있다. 가장 좋아하고 잘하던 것을 잊어버린 그의 요즘 머릿속은 복잡하다. 

‘의욕을 잃어버린 삶이 다시 뜨거워질 수 있을까.’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이러한 생각 속에 사로잡힌다. 과연 그는 평생 꿈꿔 왔던 배우라는 꿈을 쟁취할 수 있을까. 

용현씨가 세트 제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본인]
용현씨가 세트 제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본인]

끝이 보이지 않는 꿈의 리허설

배우라는 꿈을 향해 예술고, 대학 등을 포함해 10년이 넘는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지만, 현재 용현씨는 하루를 연기가 아닌 돈을 위한 노동으로 채운다.

아직 해마저도 다 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4시, 용현씨는 자꾸 감기는 눈을 꾸역꾸역 뜬 채 발에 밟히는 옷가지들을 주워 입는다. 그는 제대로 앉지도, 쉬지도, 제때 밥을 먹지도 못하는 고된 연출부 일로 생계를 유지 중이다.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했을뿐더러 대학 연극영화과를 다녔던 그가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연출부 일이기 때문이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도착한 촬영 현장은 여름이면 너무나도 덥고 겨울이면 너무나도 추운 야외가 대부분이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속 그는 큰 짐을 나를 때도, 조명을 설치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묵묵하게 스태프로서 현장 공백을 메꾼다.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를 꿈꿨지만, 최근에는 그 현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 속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다.

그렇게 용현씨는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약 19시간을 근무하고 나서야 귀가한다. 하루 24시간 중 19시간을 노동해 받는 일급은 25만원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작품이 있을 때만 현장에 나갈 수 있어, 불규칙적인 수입이었다. 

그렇게 일을 마친 후, 용현씨는 일급이 담긴 봉투를 들고 터덜터덜한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온다. 씻을 기운도 없이 축 처진 몸은 침대로 향하고,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진다. 잠만이 유일한 피로회복제가 된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일어나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그는 스스로를 ‘죽어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지쳐 잠든다. 

이렇게 빠듯하게 밥벌이에 치중하다 보니, 연기는 어느새 뒷전이다. 가장 하고 싶었던 꿈이 어느샌가 숙제가 돼버린 느낌이다.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이라는 레이스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고된 아르바이트에 연기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줄고, 어쩔 때는 너무 지쳐 집중하기도 어렵다. 매일 반복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에 갇힌 것만 같다. 

용현씨는 쉴 때면 평소 못 잤던 잠을 몰아 자곤 한다. 남들과 다르게 일하는 시간도 불규칙할뿐더러 현장에서 뛰어다닌 몸은 지쳐 밖에 나갈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고장 난 것처럼 모든 게 버거워진 밖은 더 이상 그에게 안정을 주지 못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은둔형 외톨이처럼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하지만 이 마저도 지금은 휴식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쳇바퀴처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쳐가는 정신은 점차 스스로를 갉아먹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용현씨는 정체된 하루들 속에서 고된 노동으로 채워진 똑같은 일상과 반복되는 삶을 살아간다. 

더운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던 용현 씨가 지쳐 잠시 쉬고 있는 모습. ⓒ투데이신문
더운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던 용현 씨가 지쳐 잠시 쉬고 있는 모습. ⓒ투데이신문

혹독했던 사회라는 오디션

용현씨의 인생이 처음부터 쓰라린 아픔만 가득한 건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배우라는 꿈은 그의 일상을 뒤바꾸기에 충분했다. 무작정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고 결심한 날에 바로 학원을 등록했고, 이어 입시 연기를 배웠다. 연기를 배우면 배울수록 그의 마음 속에는 더 큰 불꽃이 일렁였다. 

그렇게 그는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당차게 예술고에 입학했다. 당시 예고의 학비는 한해 1200만원에 달할 정도로 벅찬 금액이었지만, 성공하면 모두 가족에게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수험생 시절 원하던 대학에 낙방하게 되면서부터 위기를 맞았다. 당시 방황 끝에 대학 입학도 포기한 채 워터파크 수질관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그러다 결국 가족과 주변인들의 오랜 격려에 힘입어 용기내 재수에 도전했다. 그렇게 서울의 한 2년제 대학 연극영화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힘겹게 합격한 대학교를 마지막 학기에 자퇴했다. 연극 무대를 많이 설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입학한 학교는 연기보다는 학점에 치중된 수업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에게 대학교는 ‘배움의 장’이 아니었다.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않다 보니, 1년에 620만원이 넘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이를 갚기 위해 술집 서빙, 모델, 공사 현장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이에 더해 연극 작업은 재학·방학, 평일·주말, 밤낮을 가릴 것 없이 진행됐기에 휴식, 수면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몇년을 아르바이트와 연기 연습을 병행하면서 용현씨의 몸은 점점 지쳐갔고 피폐해져 갔다.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연기를 위해 대학을 선택한 것인데 그 마음만으로는 이룰 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학비, 성적, 출결 모든 것을 맞추려다 보니 2년제 대학을 4년 동안 다니게 됐다.

그를 가장 힘들 게 한 건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대학교 재학시절 내내 학자금과 생활비를 대출 받았으며, 그 외에 드는 비용은 가족의 지원을 받았다. 약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에 많은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과연 학교를 졸업하는 게 내 꿈과 맞는 길일까’라는 생각에 빠지게 됐다. 이미 어긋나 버린 학교에 대한 감정이 자신을 짓눌렀고, 결국 마지막 2학점을 남기고 자퇴를 결정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방황이 시작됐다. 자퇴 후 대학 선배의 추천으로 대학로 극단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스스로 갈피를 못 잡았던 상황이기에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야 말았다.  

자퇴 후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금전적 압박이 먼저 찾아왔다. 더 이상 아르바이트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부담감이 그의 숨통을 짓눌렀다. 더욱이 스무 살 때부터 만난 여자친구와의 미래를 함께 그리는 과정에서 더 이상 철부지 노릇은 할 수 없었다. 더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제부터라도 안정적이고 또 안정적이어야 했다.

그래서 당시 그는 그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하고 싶었던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시작했고, 자신있던 영상 연출 특기를 살려 한 영화 제작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하지만 연기만 10여 년을 하던 그에게 회사 일은 순탄치 않았다. 쉬는 날 없이 매일 같이 일해야만 했고, 야근은 당연시됐다. 회사에 묶여진 몸 마냥 휴식이 없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맞지 않는 옷을 꾸역꾸역 입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몸은 물론 마음까지 지치고 다치며, 결국 공황장애 증상까지 찾아왔다. 그렇게 살기 위해 도망치듯 3개월 만에 회사를 나오게 됐다.

회사를 나오면 다 아물 것 같았던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용현씨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라는 끝도 없는 생각에 골몰했다. 도망치듯 일을 그만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기고,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약 1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는 여전히 그 순간만 생각하면 살이 떨릴 정도로 무섭다.

현재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연출부 일과 각종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연출부 스태프로 밤샘 작업을 하고 나서도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한다. 작은 일이라도 들어오면 잠을 줄여서라도 돈을 버는데만 힘쓰고 있다.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매달 식비, 교통비 등 약 60~70만원 가량의 생활비가 들어간다. 오디션에 합격해 작품이라도 들어가게 되면 불규칙적인 일정에 맞추기 위해 하던 일을 모두 관둬야 하기에 자금을 미리미리 모아둬야 한다. 

분명 꿈을 위해 일을 한다 생각했는데, 용현씨는 과연 자신의 꿈과 가까워지고 있는 건지, 멀어지고 있는 건지 혼란스럽다. 그에게 꿈은 마치 무지개와 같다.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절대 잡히지 않는 것처럼.

이럴 때마다 그는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우울한 노래를 틀어놓은 채 울부짖었다. 잔뜩 쌓아둔 마음 속 힘듦을 비워내기 위해, 더 나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양껏 우는 법을 배웠다.

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재학하던 시절 용현 씨가 연극을 하는 모습. [사진세공=본인]
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재학하던 시절 용현 씨가 연극을 하는 모습. [사진세공=본인]

예술보다 먹고사니즘

배우지망생, 즉 예체능계 취업준비생인 용현씨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할 지 알 수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졸업자의 평균 구직기간은 7개월이다. 교육 전공생이 13개월로 가장 길었고, 인문(10개월), 예체능(9개월)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처럼 전공에 따라 구직기간은 각각 다르며, 예체능 전공은 타평균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이 투여된다. 대학교를 자퇴한 용현씨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긴 시간의 취업 준비기간이 소요될수 밖에 없다.

신한은행이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취업준비생의 월평균 취업 준비 비용은 30만원으로, 이를 연 단위로 추산하면 약 384만원이다. 용현씨가 7월에 벌어들인 141만원(연출부 5회 출근 125만원+일일 아르바이트 16만원)의 수입에서 생활비 70만원과 취업준비 비용 30만원이 차감되면 이달에는 41만원만 수중에 남게 된다.

하지만 그가 배우의 꿈을 이룬다고 해도, 경제적인 상황은 나아지기 어렵다.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개인이 예술활동을 통한 연 수입은 평균 755만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난 2018년(1281만원)보다 526만원(41%) 감소했다.

그 중 용현씨의 꿈인 배우의 평균 연 수입을 살펴보면, 연극계 종사자는 평균 509.4만원의 수입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극계는 해당 통계에 예술인으로 분류된 분야 중 가장 높은 수입을 얻는 만화 분야(2195.8만원)와 약 1295만원 차이가 났으며, 예술인 평균인 755만원에 비해서도 현저히 부족했다.

이런 혹독한 상황에도 청년 예술가에 대한 지원은 기대에 못 미친다. 지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빈곤청년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부나 지자체가 청년들에게 지급하는 청년수당, 청년배당,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등을 수혜 받은 경험이 있냐는 물음에 응답자 중 ‘혜택 받은 적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8.6%, ‘혜택을 받은 적 없다’가 91.4%로 집계됐다. 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을 받은 청년이 10명 중 1명에도 못 치는 셈이다.

지난 3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예술계의 회복을 위해 ‘문화예술인활동지원금’을 지원했는데 대부분의 예술인들이 혜택을 보지 못했다. 신청대상은 소득인정액이 당해 연도 기준 중위소득 120%(1인 가구 233만 3774원) 이내인 예술인이었는데, 기준에 충족했음에도 지원금을 받지 못한 예술인들은 상당했다. 이번 신청에는 6만명 이상이 몰렸는데, 소득인정액이 가장 낮은 순으로 대상자를 선정했기 때문에 약 2만명가량은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선발기준이 소득 58만3444원으로 턱없이 낮은 기준이었기에 용현씨처럼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게 되면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이렇듯 생계 유지를 위해 예술만 할 수 없는 예술인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15년차 현직 예술인 A씨는 “예술인은 그 성공과 실패의 기준치가 모호해서 더 힘든 직종”이라며 “용현씨와 같은 사례는 빈번하고, 입봉 혹은 데뷔 전후와 상관없이 경제적인 문제로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또한 “예술인이 되더라도 보통 적은 페이를 받고 일하거나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일반 직종보다 불안감이 자주 오는 것은 사실”이라며 “주변에 있는 다른 예술인들도 아예 다른 직업을 갖거나 아니면 예술 기획, 경영 등으로 진로를 확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용현 씨의 대본 공부를 한 흔적과 그의 대본들. [사진제공=본인]
용현 씨의 대본 공부를 한 흔적과 그의 대본들. [사진제공=본인]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지금은 더 이상 낭만을 쫓는 피터팬은 아니게 됐습니다.”

열정 하나면 순탄할 줄만 알았던 꿈은 매번 돈 앞에서 멈춰 섰다. 용현씨는 성인이 된 이후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생계 유지를 위해 땀방울을 흘렸다. 건설 현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써가며 일한 적도 많았고, 매일 밤을 새워가며 세트 제작을 한 적도 있다. 어느 날은 패션 모델이 됐다가 어느 날은 술집 종업원이 된 적도 있었다. 여러 영상 공모전을 찾아서 직접 연기, 촬영, 편집해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350만원의 상금으로 생활비를 메꾼 적도 많았다. 

연기를 전공하는 대학생에게 주어지는 정부 지원은 학자금 대출이 전부였다. 용현씨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돈을 빌려야 했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했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연습할 시간을 쪼개야 했다. 직장이 없는 배우지망생에게 제공되는 정부의 지원은 없었고, 있어도 막대한 경쟁률의 벽 앞에 부딪혀야 했다. 거창하게 이름만 내걸었지, 수많은 지원자와 불분명한 지원 범위를 지닌 정부 사업에 감사함보다 불신이 먼저였다. 살기 위해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이 문제가 돼 정부 혹은 지자체 지원 사업 요건에 맞지 않아 지원해도 선발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 세 가족이 같이 살아 가구별 기준으로 지원 기준이 매겨질  때면 더욱 지원 받기는 어려워졌다. 

“빚도 갚고 생활에 안정을 먼저 찾은 뒤, 다시 배우로서 재능을 펼치고 싶어요.”

열정 하나로 시작한 배우라는 길은 기회, 운, 재능 그리고 돈까지 각종 장애물로 가득한 거친 곳이었다. 언덕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찾아왔다. 그래서 용현씨는 목표를 세워 하나씩 이뤄가기로 했다. 먼저 지금은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믿고 의지해준 여자친구와 함께 하기 위해 보금자리 마련을 목표로 잡았다. 현재 생활에 안정을 찾고 싶어서 세운 꿈이기도 하다. 집도 없고 빚만 있는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는 뭐든 제약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심이다. 지금은 현실에 타협해 연기의 길은 잠시 접어뒀지만, 언제든 목표치를 채우면 다시 배우의 길을 달려갈 생각이다.자신에 대한 굳은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김용현이라는 막이 오르고, 박수로 가득 찬 인생의 커튼콜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용현씨가 배우라는 꿈을 꾼 이후 지금까지 지불한 꿈의 가격은 총 1억1834만원. 앞으로 지불할 꿈의 가격은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다. 꿈을 꽃피우기엔 아직 세상은 너무나도 척박하고 혹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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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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