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인기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주요 주제로 다룬 10화를 본 뒤 ‘성적자기결정권의 개념이 예전보다 더 혼란스러워졌다’며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고 요청한 분들이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가 성적자기결정권을 모든 사람이 보장받고 존중받아야 할 “권리”로써 이해하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이다. 드라마는 작품 속 여러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성적자기결정권이 자신을 지키며 안전하게 성적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마치 현실의 사람들처럼 맞는 말도 하고 틀린 말도 하는데 첫째로 주목할만한 발언은 법정에 증인으로 등장하는 의사의 발언이다. 의사는 자신의 소견을 말하며 피해자의 증언인 ‘성관계를 시작했더니 기분이 나빠졌다. 무서웠어요. 엄마한테 혼날 거 같아서 싫었어. 아파서 싫다고 했더니 삐졌다. 울먹였다. 성관계를 거절하면 찐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찐사랑이라서 지금 하고 싶다고 했다’는 내용을 읽는다. 그리곤 이는 상대방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두고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성착취이자 성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정확한 판단이다.

그루밍(길들이기)이 이뤄진 후 성착취를 하는 성폭력은 상대방에 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적 우위를 이용하는 성범죄로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특히 지적장애인에게), 비청소년(성인)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그리고 교사, 상담사, 종교인들(목사 등)이 자신들의 학생, 내담자, 교인(성도)들처럼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가해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남성이 여성을 그루밍해 성착취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증인으로 나선 의사는 ‘제대로 거절하는 방법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도 높다’는 말도 한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을 포함한 모두에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묻고 탐구하는 그리고 상대방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상대방에게 묻고 경청하고 존중하게 하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하지 않는다. 비장애인들도 존중받는 경험 그리고 거절하고 거절당하는 연습을 해 볼 기회가 적지만 장애인들은 훨씬 더 심하다.

이어지는 발언이 문제적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이는 지적장애인도 동일합니다. 그 욕구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접근도 자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정상적인 관계와 부당한 관계를 구분하는 힘이 약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런 의미에서 신혜영씨에게 온전한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지키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신체부터 시작해서 젠더, 섹슈얼리티, 재생산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약속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권리가 있는 만큼 상대방에게도 동일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4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3년 6개월 형을 마치고 만기출소했다.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된 것은 다행이지만 1심에서는 무죄를 받았다.

당시 재판부나 안희정의 지지자들은 ‘도지사가 수행비서를 강간했다는 게 말이 되냐?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면 되지, 지적장애인도 아니고 청소년도 아닌데 왜 성적자기결정권을 발휘하지 않았느냐’, ‘성폭행이 아니라 불륜이었던 것 아니냐’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성적자기결정권은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 하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중요하지 않다. 찐사랑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성관계를 포함한 성적행동을 할 때 정확한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맞춰가는 적극적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드라마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며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이준호와 데이트를 시작하게 된 우영우는 데이트 시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왔다. 목록에 적혀있는 것들이 ‘획일적인 연애 각본’과 달라서 좋았다. 이준호는 우영우에게 ‘집에 데려다 주기’는 없냐고 물어본다. 우영우가 ‘그런 건 없다’고 하자, 그럼 ‘집에 데려다 주는 길에 손잡기’도 없냐고 물어본다. 우영우는 자신은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있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말하고 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적극적인 표현하고 제안하는 모습이다. 또한 그에 대해 정확히 답변하는 모습이다. 우영우는 ‘아빠와 손잡기도 57초까지만 가능했다’며 ‘57초라도 손잡아 보겠냐’고 물어본다. 이렇게 서로 합의하고 시도한다. 우영우는 타이머까지 동원해서 57초까지는 버텨보려고 했으나 중간에 ‘안 되겠다’며 중단한다. 이준호도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긍한다. 그러면서, ‘손잡기는 다음에!’라고 말한다. 이게 10화의 제목이다. 이게 성적자기결정권이다. 서로를 존중하며 물어보고 경청하고 인정하는 모습이다.

드라마 속 성폭력 피해자 지적장애인 여성인 신혜원은 자신은 그 남성을 사랑하고 있다며 우영우에게 “사랑해요. 감옥에 가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우영우가 ‘그러면 왜 성폭력을 당했다고 진술했어요?’라고 묻자, “엄마가 시켰어요. 그렇게 말하라고. 엄마는 남자 싫어해요. 제비같은 새끼라고 싫어해요”라고 답한다.

우리는 “장애인에게 사랑할 권리”가 있냐며 “지금 감히 누구 앞에서 자폐 타령, 장애 타령을 합니까? 우리애 장애랑 당신 장애랑 같아요? 제발 어쭙잖게 공감대 형성하는 척하지 마요. 보기 역하니까, 아시겠어요?”라고 우영우를 다그치고 몰아세우는 신혜원의 엄마의 입장(어떤 우려를 가지고 무엇을 걱정하는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사랑할 권리’가 없는 게 아니다. ‘장애인에게 성적자기결정권’이 없는 게 아니다.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장애인은 누리지 못하는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장애인, 청소년, 여성 등 자신보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착취하는 사람들의 폭력이 문제인 것이다.

현실에도 우영우 10화의 사례는 많다. 성폭력 피해 장애여성 중에 지적장애여성이 약 7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가해자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적장애인이 성적자기결정권를 행사할 수 있는지” 묻는다. 우리들의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왜 이렇게 지적장애인의(그리고 청소년의, 그리고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이 많냐”고 말이다.

드라마에서 가해자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후 신혜원은 울음을 터뜨린다. 찐사랑이었는데 판결이 잘못된걸까? 내가 판사였다고 하더라도 가해자에게 징역형을 선고할 것이다. 피해자에겐 사랑이었지만 가해자에겐 성폭력이었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였기 때문도 아니고 찐사랑이 아니었기 때문도 아니다. 동의(적극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가해자가 징역형을 받았다는 것이 지적장애인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에겐 그런 묘사로 읽히진 않았다. 장애 여부(그리고 나이와 성별 등 그 어떤 것)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사를 존중받아야 한다.

상대방이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존중받아 본 경험이 적은 사람이면 더 오랜 시간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친밀한 관계(상대방이 나를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다)라는 점을 이용해서 상대방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때 성적인 행동을 밀어붙이는 것은 폭력이다.

우영우와 이준호의 키스신은 성적행동을 하는 중에도 언어적/비언어적인 소통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준호가 우영우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했을 때 우영우가 멈칫했고 이준호는 그것을 느끼고 멈추었다. 그리곤 우영우는 생각할 시간을 가졌고 결심이 선 우영우가 이번엔 먼저 다가갔다. 키스를 하다가 우영우가 질문했다. ‘키스를 하면 원래 이렇게 서로의 이가 부딪히나요?’ 성적인 행동은 시작할 때 동의를 했더라도 언제든지 중간에 멈출 수 있고 다시 소통하고 재개할 수도 있다.

아무리 “자폐 스펙트럼”이 넓고 우영우를 스펙트럼 안에 있다고 표현하더라도 우영우와 같은 장애인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서번트 신드롬’을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다른 모든 기능들도 매우 고기능이다. 그런데 우영우의 장애 유형이나 기능 정도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은 주변인들로 보이기도 한다. 현실의 자페인들에게는 법무법인 ‘한바다’의 시니어 변호사로 우영우를 챙겨주는 정명석, 우영우를 아무런 편견 없이 대하는 친구 동그라미, 우영우의 로스쿨 동기로 질투와 애정을 동시에 보이는 최수연 같은 사람들이 없다(희박하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판타지다”라고 말하고 싶은거냐?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나는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자’ 그리고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자’고 말하고 싶다. 너무 희망적인 말이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것은 비장애인중심의 사회다. 어떤 유형의 장애든 장애를 가지고(어떤 질병이나 통증을 가지고도) 있어도 살아갈 수 있는, 인간다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의 목표여야 한다. 성장중심, 돈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인간중심 생명중심의 사회로 완전히 체제전환을 이뤄내야 가능한 이야기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이사장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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