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최근 한 중학교에서 진로 시간에 노동인권 교육을 진행하게 됐다. 키오스크,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드론 택배 등을 주제로 소비자로서 누리는 ‘무인 서비스의 편리함’ 그리고 사장님으로서 ‘일하는 사람이 두지 않을 때 늘어나는 소득’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그 후, 자신을 소비자나 사장님이 아니라 ‘일이 필요한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무인 서비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그런 일”이 필요한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가정하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그러다 “일자리가 줄어들긴 하겠네요..”라는 말이 나오긴 했으나, 교육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자신을 패스트푸드점에서 노동을 하거나 택배 노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 두고 생각하는 것을 쉽게 하지 못했다. 노동자 보다는 소비자나 자본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훨씬 더 수월하게 했다.

그리곤 청소년들의 직업 선호도가 공무원, 건물주, 유튜버 순이라는 내용의 자료 화면을 보며 “이 셋 중에 자신이 원하는 직업이 있나요?” 질문을 던졌다. 스무명 한 반인 교실이었는데 열 일곱 명이 건물주, 세 명이 유튜버를 하고 싶다고 했다. 와… 이 질문을 하며 내가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무엇을 기대했던 기대 이상이었나보다. 3초 정도 멍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건물주의 위상은 높다. 건물주는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성인)이든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상태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건물주의 삶이란 무엇일까? 과도한 장시간 노동이나 위험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상태 그리고 자기 시간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어찌보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바람을 가지는 것이 나쁜가?

오히려 한국 사회의 “노동의 위치”를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을 하면 어떤 상태가 될까? 돈은 많이 버는데 시간이 없거나 일이 없어서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거나 일은 많이 하는데 너무 저임금노동이라 시간과 돈이 둘 다 없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으려면 재벌 2세 정도 되든지 최소 건물주는 돼야 한다. 부모뽑기(일본의 수저론(금수저, 흙수저))에 실패해서 이제와서 재벌 2세가 될 수는 없으니 건물주가 되고 싶은거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고쳐야 할까? 건물주가 되기를 바란다는 사람들에게 ‘왜이리 게으르고 나태하냐’며 다그치면 될까? ‘건물은 무슨 돈으로 살 거냐’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면 될까? 나는 노동의 위치를, 노동자의 처우를 고치고 싶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주거를 포함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어떨까? 건물이 아니라 사회가 건물을 가진 일부의 사람만이 아닌 모두에게 그런 삶을 보장할 수 있다면 어떨까?

점점 더 완벽히 무인화 될 시대에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모든 시민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그저 사회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런 사회는 어떻게 만들까?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하게 만들자. 단지 건물주가 되기를(건물주의 상태를) 꿈꾸는 세상이 아니라, 건물이 아닌 국가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자.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지 상상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나아가자.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이사장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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