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br>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집회와 시위를 향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하 호칭 생략)는 “시민들의 출근을 볼모삼는다”, “언더도그마 담론”이라 말하며 ‘소수자가 무조건 선하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시민들끼리는 나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의 발언으로는 매우 부적절할뿐더러 관점뿐만 아니라 내용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몇 가지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장애인들의 집회와 시위가 비장애인들의 출근을 볼모 삼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주의 사회가 장애인들의 불편, 장애인 배제 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의 입장에서 효율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돈이 빠르게 많이 벌리는 것이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사람, 물건, 서비스 이런 것들이 자동차와 여러 이동수단을 통해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필요 없는 사람들”로 배제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시민들이 ‘장애인들은 집이나 병원 또는 시설에 갇혀서 지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끔 만듭니다. 이러한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 있기 때문에 이를 악용해서 ‘저런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회사 나가서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이 늦게 도착하도록 만듦으로써 사회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생각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정치인이 사회시스템에서 배제되는 시민이 없도록 해야 할 제 역할을 하지 않아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문제를, 정치인이 스스로 “시민들의 출근을 볼모 삼는다”라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정치인이 이러한 류의 발언을 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 정치인의 해야 할 일을 숨깁니다. 전장연은 현재 기획재정부에 장애인의 이동권 뿐만 아니라 교육권, 탈시설, 노동권 정책에 대한 예산을 제대로 반영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 또한 시민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고 싶다는 주장에 문제가 있을까요? 학교 다니고 싶다는 주장에 문제가 있을까요? 시설이나 병원에 갇혀 살고 싶지 않고 내가 살던 마을에서 지역에서 도시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주장에 문제가 있을까요? 일하고 싶다는데 문제 있을까요?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시민으로서의 삶이 가능해집니다. 학교도 가고, 일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연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동권은 최소한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2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투쟁하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들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장애인복지예산은 GDP대비 OECD 국가들 중 꼴등 수준입니다. 가장 잘하고 있는 국가들과 비교하면 1/7, OECD국가들의 평균에 1/3밖에 안됩니다. 국가와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을 책임지지 않고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하게 하는 전략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도 같은 전략입니다. 취업이 안되고 삶이 팍팍하다는 남성 청년들의 목소리를 국가의 책임으로써 군대문제와 노동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는 게 아니라, 여성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드는 프레임을 만듭니다. 국가와 정치인은 실제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비난의 대상에서는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게 그들에게는 가장 저비용 고효율의 전략입니다.

또한 “언더도그마 담론”이라며 ‘소수자가 무조건 선하지 않다’고 합니다. 언제 사회적 소수자들이 “착한 사람들”이라고 한 적 있나요? 사회적 소수자라는 뜻은 사회적으로 부, 명예, 네트워크 등의 사회적 자원에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에 제한으로 인해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받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권리 주장을 하면 “소수자 답지 않다”, “나쁘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재수없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태도로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줄 때 베풀어주는 것들에나 고마워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여성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장애인들에게도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도움을 받는 대상으로 여기며 ‘소수자 다운 모습’으로 머물 것을 강요받습니다. 같은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여긴다면 결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 거죠.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가부장제 사회에 순응하는 여성이 아니라 나의 길을 만들어 가며 자유롭게 살겠다는 뜻입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쁜 장애인”으로 불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활동가들이 제도를 바꿔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장애인/비장애인 구분없이 모두가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경사로 등은 휠체어 이용인 뿐만 아니라 노인, 일시적 장애인, 유아차를 이용하는 양육자들, 어린이, 임신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건 알겠는데 “왜 출근길에 시위를 하냐?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동은 잘못된 방식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집회와 시위는 많은 경우 불편함을 초래합니다. 그 중에서도 시민들과 정치인들이 너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문제일수록 불편함을 초래하는 방식을 택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사회운동의 한 가지 방법입니다. 이는 노동자의 파업과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자들이 사측과 협상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본 끝에 물러설 수 없는 사안에서 돌파구가 없다면 자신들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파업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결과로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을 때 모두의 인권이 함께 좋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 시민들은 불편을 함께 감수하고 파업을 한 노동자들을 지지하며 파업을 하게 만든 기업과 국가를 향해 규탄의 목소리를 냅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장애인이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고 장애인 활동가들이 시위하지 않아도 되도록 장애인의 운동을 지지하며 국가와 정치인, 기획재정부를 향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준석은 ‘공권력을 동원해서 불법 집회에 엄정 대응해야 한다’며 적반하장입니다. 이를 장애인들만의 일로 치부하는 접근방식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이준석과 같은 류의 정치인들은 모든 영역의 이슈에도 같은 논리를 내세울 것입니다.

이준석과 국민의힘만 문제인 게 아닙니다. 민주당 역시 문제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한다고 했으나 제대로 하지 않았고 장애인 예산 반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런 식으로 국가와 정치인들은 장애인 인권 사안을 늘 후순위로 미루며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준석이 다른 정치인들보다 ‘끔찍한’ 이유는 이준석은 장애인 시민과 비장애인 시민을 편가르기 하면서 자기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성과 남성을 편갈라 표심으로 이용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준석의 정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차별, 배제, 혐오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해악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효율성으로 사람을 평가하여 누군가를 배제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아무도 나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 서로에게 완벽히 불편을 주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우리 모두가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 돌보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함께 살아가야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이사장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