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br>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탈시설이 장애인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장애 인권단체들의 돈벌이 수단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산하 향유의집 폐지 과정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물리치료사 박씨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이하 호칭 생략)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탈시설은 세계적인 흐름이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항입니다. 지난 해 8월 정부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탈시설 로드맵’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탈시설 로드맵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억지 주장을 문재인 정부가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은 채 수용하고 엉터리로 발표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박씨와 이준석과 같은 류의 사람들은 전장연 뿐만 아니라 탈시설 운동을 가장 앞장서서 하고 있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발바닥행동)’과 ‘사회복지법인 프리웰(프리웰)’도 함께 공격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시에 있는 사회복지법인들의 이사회에 사외이사가 들어가서 함께 활동하며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하게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복수의 후보자를 법인에 추천하면 법인에서 그 중 1인을 선택을 하는 시스템입니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등 몇 군데 추천을 받았지만 그 쪽에서 저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인권활동가가 이사회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서울시가 저를 프리웰이라는 곳에 사외이사로 추천을 했는데 그 쪽에서 저를 선택했습니다. 인권활동가를 사외이사로 선택하는 법인이 신기하기도 해서 저는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프리웰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습니다.

프리웰이 현재의 모습처럼 탈시설운동의 최전선에 서있게 되기 전에 (구)석암재단이라는 부정부패비리재단이 있었습니다. 석암재단은 서울시 감사에서 회계부정이 발각됐습니다. 국가보조금 횡령, 장애수당 횡령, 거주 장애인 인권침해 등이 발각되어 이사진 전원이 쫓겨나게 되고 이사회가 해산됐습니다. 그 때 장애인 인권활동가들이 새롭게 꾸린 이사회는 법인의 빚과 소송 등의 문제를 정비하고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을 서울시 탈시설 로드맵에 발맞춰 탈시설하며 산하 시설에 거주하고 있었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박숙경 교수가 초대 이사장을 했고 전장연 박경석 대표도 이사회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탈시설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한 발바닥행동의 김정하 활동가가 이사장을 하고 있습니다.

프리웰재단은 한국 사회에서 탈시설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견인하는 법인이 되었습니다. 산하 시설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탈시설 할 수 있도록 도우며 시설들을 없애는 과정 중에 있으며, 향유의집도 이 중 하나입니다. 향유의집은 비리재단이었던 석암재단 시절부터 있었던 시설이고 이름은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었습니다. 1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살았습니다. 사람을 묶어 놓기도 하는 등의 학대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장애인을 향한 폭력과 회계부정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비리법인을 해체하고 재구조화 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석암재단에서 있었던 일을 프리웰재단에서 한 일인 것처럼 호도하여 탈시설의 방향성 왜곡하려는 시도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탈시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시설을 없애면서 탈시설 지원금을 착복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수용하는 장애인들의 수만큼 시설이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늘어나고, 그렇기 때문에 수용인원을 늘리는데만 관심이 있는 경영진이 있는 시설들이 존재하고 그런 시설들에서 시설 이용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경영진이 착복하고 있는 현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는(혹은 알면서도 고의로 현실을 왜곡하려는 의도가 있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시설을 만들고 시설을 운영해야 돈을 남기든 착복하든 할 수 있습니다. 시설을 만들지 않고 있는 시설마저 해체시키는데, 지원금을 착복한다는 것은 사실관계가 전혀 맞지 않는 허위 주장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온 정신장애인시설인 청도대남병원을 기억하시나요? 시설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 정부의 지원금을 다달이 꼬박꼬박 받는 곳이었기 때문에 시설에 사는 사람들의 인권, 행복, 건강, 만족 그런 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받기 위해 침대도 매트리스도 없이 바닥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도 있는 외출시간, 야외 운동시간도 없었습니다. 정신장애인수용시설, 중증장애인시설 등 인건비와 운영비는 정부 지원금으로 나가는데 사람을 뽑는 등 운영 전반에 대한 권한은 이사장 등의 관리자가 가지고 있고 정부는 제대로 관리할 역량이나 시스템이 부족할 때 부패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한 종교계에서는 지난 2021년 8월 정부에서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했을 때 ‘탈시설은 장애인이 거주 시설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매우 기만적인 언어입니다. 장애인이 스스로 원하는 곳에 거주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시설입니다. 그 종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돈 때문에 뻔뻔한 얼굴과 기만적인 언어로 거짓말을 일삼는 모습은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종교에 기대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프리웰재단은 산하에 모든 시설을 없애고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지원주택에 살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재단이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난 뒤에 최종적으로 없어지는 게 목표이며, 돈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는커녕 사무국에 직원으로 일할 사람을 한 명 뽑을 돈도 없어서 이사장이 무급으로 사무국 일까지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시설을 없앨 때 시설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지원주택에서도 계속 일하실 수 있도록 직업 연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센터와 새롭게 생긴 지원주택이 멀 수도 있습니다. 이전에 하던 일이 아닌 새로운 일을 새롭게 배워가며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어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분들 발생하기도 하곤 합니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물리치료사 박씨이고 이준석은 그 사람을 “증인”이라고 불러서 발언시키면서 가짜뉴스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박씨는 ‘장애인들을 억지로 빼내서 위험하게 만든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억지로 빼내는 것도, 그냥 밖에서 혼자 살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장애인의 자립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오해는 장애인을 혼자 살게 하는 게 자립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립”은 혼자 사는 게 아닙니다.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우리는 어느 누구도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혼자 농사도 짓고 옷도 만들고 집도 지어서 사는 사람있습니까? 혼자 도로도 깔고 빌딩도 지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태어나면서 부터 돌봄이 필요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서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서로 도우며 의지하며 사는 게 자립입니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마을에서 계속 함께 사는 것이 탈시설입니다. 탈시설 사회가 되면 나에게도 좋습니다. 노인이 되어도 시설이나 병원에 갇혀 살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노인이 됩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몸이나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장애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장애인에게 좋은 것은 우리 모두에게 좋습니다.

향유의집에 갇혀 지낼 때는 아무 할 일이 없어서 만날 때마다 종이학과 학알을 1천 개씩 접어서 선물해 주던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한 후에는 이제 너무 바빠서 만나보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고 직업학교를 다니고 산책을 하고 여행을 다니고 맛집을 다닙니다. 캠프를 하며 ‘불멍’을 하기도 합니다. 무슨 어마어마하게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우리 누구나 원하는 평범한 삶 아닙니까?

시설에서는 사생활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30명 정도가 지내야 하는 시설에 백명, 이백명, 삼백명이 밀집되어 살기도 합니다. 산 속에 고립되어 밖에 나가볼 기회가 전혀 없기도 합니다. 빨래를 다 같이 하기 때문에 자신의 옷이나 속옷을 찾을 수 없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시설이 다 이런 모습인 것도 아니고 모든 시설에서 다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모든 시설을 한 번에 다 없애자는 것도 아닙니다. 시설의 규모를 축소하고 지역사회에 함께 존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프라 자체가 비장애인 중심에서 모든 유형의 장애인이 포함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돌봄, 교육, 의료, 이동, 노동 등 사회의 모든 체계가 모든 유형의 장애인을 포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발달장애인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장애인이 탈시설해서 마을에서 도시에서 함께 살고 있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의 사회가 되려면 경쟁과 성장이 아니라 분배와 공존을 중심으로 하는 ‘돌봄사회’가 돼야 합니다. 이런 사회에는 장애인 24시간 지원, 장애인들의 공공일자리가 기본으로 자리 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장애인에게만 좋을까요? 장애인 지원하는 일자리 등 수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중증장애인을 포함해서 모든 장애인에게 공공노동과 최저임금이 보장된다면 그것이 기본소득으로 작동한다면 이 역시 우리 모두에게 영향 미칠 것입니다. 탈시설은 모두에게 이롭습니다. 탈시설 사회는 우리에게 공동체의 개념과 존재 자체의 목적을 알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시설이 아닌 마을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경쟁 사회와의 결별을 뜻합니다.

박경석 대표와 이준석 대표의 토론 말미에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준석은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 중에서도 33%만 탈시설을 원한다’며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지금처럼 계속 시설에 머물겠다’고 답했다는 자료를 근거로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끼리 다수결 투표를 통해서 탈시설 정책의 방향과 예산의 확대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 표를 누가 그렇게 해석합니까? 33%가 탈시설을 원한다면 그 사람들만이라도 탈시설 할 수 있도록 거주시설과 24시간 활동지원 그리고 원한다면 누구나 교육, 노동, 운동,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될 일입니다. 그 후에 그렇게 사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 시설에 그대로 있고 싶다고 답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변할 수 있습니다.

이준석은 ‘20년 혹은 10년 이내 탈시설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냐’며 윽박지르며 ‘몇 년으로 목표하는 게 적당할 것 같냐’는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이런 말하기 방식은 토론이 아닙니다.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비문명적인 말하기 방식은 “토론”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합니다. 토론을 하는 사람의 최소한의 자세는 자신의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밝히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어느 정도의 속도로 탈시설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의 안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서로 배우려는 태도로 서로의 안을 조율하는 자세여야 합니다.

우리가 GDP를 국가와 사회의 평가 요소로 생각하는 자본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나답게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을 국가와 사회를 평가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억누르고 우리를 계속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고하게 만드는 이들에게 더 이상 속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이사장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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