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2022년 3월 16일 성공회대학교에 ‘모두의 화장실’ 준공식이 있습니다. 2017년에 성공회대 학생회의 공약으로 논의를 시작한 이후 6년만입니다. 성공회대가 드디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한 국내 1호 대학이 됩니다.

2015년부터 모두를 위한 화장실 캠페인을 해온 한국다양성연구소는 2021년 한 해동안 성공회대 비상대책위원회 분들과 함께 회의하고, 자문하고, 학생들을 위해 교육을 진행하고, 학교와 재단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도 함께 내왔기 때문에 의미가 남다릅니다.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물론 이것은 시작일 뿐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모든 대학으로 뻗어나가야 하며 성공회대 내에서도 모든 건물로 뻗어가야 합니다. 모든 건물의 1층에 모두의 화장실을 한 칸 이상씩 만들어야 합니다. 영미와 유럽 등지에는 성별이분법, 비장애인 성인 중심주의를 벗어난 ‘유니버셜 디자인’, ‘베어리어 프리’ 등의 이름으로 모두를 포함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장애인에게 시혜적인 ‘유니버셜 하지 않은 유니버셜 디자인’을 논의하고 있기는 합니다. 장애와 성별정체성을 포함해서 그 어떤 정체성으로도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비장애인 시스젠더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캠페인은 시스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편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가 여성이 안전한 화장실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입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습니다. 여전히 배제가 포함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키즈존을 시작으로 노OO존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지난 해 한 시장조사전문기업에 따르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약 70%가 노OO존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주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식이 나에게 안락함, 유리함, 편안함을 줄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끄럽다고 어린이를 오지 못하게 하고 불편하다고 노인을 오지 못하게 하고 매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장애인을 오지 못하게 하고 익숙하지 않다고 성소수자와 이주민을 오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서 나는 과연 언제까지 포함될 수 있을까요? 경제력으로 차별하고 학력과 학벌로 차별하고 외모로 차별하는 사회에서 과연 나는 언제까지 존엄한 존재로 살 수 있을까요? 노OO존의 확산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공간, 모두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세이프존이 확산되어야 합니다.

세이프존을 만드는 것은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화장실에서부터 시작돼야 하며, 제도적으로 성별이분법, 비장애인 성인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진짜 유니버셜 디자인이 구현된 사회를 고민하고 구축해야 합니다.

이번 20대 대선에서는 대통령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가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 포함됐습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학교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를 공약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대를 지나, 그리고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의 시대를 지나, 모든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 마땅히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오늘날 성별이분법적이고 비장애인 성인중심의 화장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현대사회는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자격을 갖춘 사람만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차별과 배제의 사회입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이런 틀을 부수는 공간의 변화, 인식의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도의 변화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를 포함되는, 모두가 평등하게,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이사장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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