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성평등과 인권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자신의 억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모순되는 주장을 동시에 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된 말인지도 알지 못한다.

이들은 데이트폭력이나 성범죄 등 젠더기반폭력에 대해서도 ‘가해자 개인의 문제일 뿐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은 아무 상관이 없다’며 ‘젠더뉴트럴(gender-neutral, 성중립)하게 봐야하는데 선거철이 되니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남성을 가해자 취급하는 선동을 한다’고 강변한다.

‘젠더뉴트럴’이라는 표현은 ‘성별이분법(gender binary 젠더 바이너리)’에 조응하는 표현으로 ‘성별을 단순히 여성과 남성 두 가지로 나눌 수 없다’는 뜻이다. 결코 여성과 남성의 권력 차이를 뭉개기 위해 사용하는(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여기서 젠더체제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강조되는 것은 “개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성범죄라는 범죄의 특성상 남성 가해자, 여성 피해자 비율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게 바로 남성이 가지고 있는 ‘젠더권력’, ‘젠더특권’ 때문이다.

젠더기반폭력에서도 젠더권력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을 강조하는 사고방식은 시험주의 정도로 전락한 ‘공정’ 담론과 맥을 같이 한다.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지로 똑같은 시험을 보며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는데 차별이 어디있냐’며 ‘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 차별은 없다’는 접근방식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차별은 이미 지난 시대의 이야기일뿐 다 끝난 이야기라고 말한다. 여성은 고용, 승진, 임금 그리고 안전까지 여전히 ‘성별에 따른 차별과 폭력’이라는 설명 이외에는 어떤 이유로도 설명되지 않는 격차를 경험하고 있다.

여기서 큰 문제는 이러한 ‘아무말’을 거대 야당의 대표와 그 대선후보가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조의 문제를 해결해야할 주체가, 구조의 문제를 숨기고 책무를 방기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여성가족부는 이미 그 역할을 다했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젠더권력, 남성특권은 인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인중심사회에서 백인들 중에는 백인권력, 백인특권을 인식하고 인정하기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비장애인중심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비장애인이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인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가진 사회구조가 당연하다고 배워왔고 현재의 모습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듯 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과 배제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개인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리고 있는 사회적 특권을 직면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 때 어떤 유형의 장애를 가진 장애인도 사회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장애인이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어서 갈 수 있는 실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젠더권력, 남성특권도 마찬가지다.

이를 인지하는 것이 어려울 수는 있으나 한 정당의 대표가 젠더기반폭력을 완전히 부인하며 ‘젠더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은 없다’고 주장하고 ‘이제는 오히려 남성들이 차별받는 사회가 됐다’, ‘남성 청년들의 박탈감을 들어야 한다’며 “젠더특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안티페미니즘을 대통령 선거에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가져가는 것은 인권의 관점에서 너무 해롭다.

첫째로,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지우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남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차별, 폭력, 착취의 경험을 정확히 분석해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 여성을 공격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으로 가장 크게 성토하고 있는 것들은 군대, 일자리, 산업재해, 주거와 관련한 문제들이다. 그 어느 하나 여성이 남성을 차별하거나 폭력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본과 국가에 의한 시민과 노동자 착취, 차별, 폭력에 대한 문제이며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가리기 위해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비난의 대상 만드는 ‘혐오정치’가 문제다.

한국에서 크게 유행을 하고 있는 안티페미니즘 정치는 트럼프식 혐오정치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적인 메시지가 선거운동의 핵심전략이었는데 ‘이주민들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진다’며 백인 남성 노동자들에게 ‘과거의 영광’의 되찾아 주겠다며 ‘미국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들이 회복하고자 하는 과거 ‘위대한 미국’에 학살당한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들, 아프리카 대륙에서 노예로 팔려온 흑인들은 없었다.

회계사, IT업계 종사자, 의사 등 흔히 “좋은 직업”이라고 불리는 직업들은 중국인, 인도인, 한국인 같은 아시아인들이 다 뺏어가고 3D 업종이나 저임금 노동은 남미인들이 다 빼앗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남미에서 사람이 오지 못하게 벽을 세우고 아시아인들이 이민을 오지 못하게 막고 인건비 때문에 해외로 빠져나간 공장들을 미국으로 다시 불러오겠다는 것이 핵심적인 공약이었다. 이 전략은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을 저들이 빼앗아갔다’고 느끼고 있던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저임금 노동에 한해서는 이주민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드는 전략이 유효할 수 있지만 고임금 노동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전략이 필요해진 것이다. ‘여자애들이 초중고 다닐 때 시험 성적이 더 높은데 요즘 시대에 성차별이 어디있어?’, ‘대학교 진학률도 여성이 더 높은데 요즘 시대에 성차별이 어디있어?’, ‘공무원 시험도 여성들 점수가 더 높은데 성차별이 어디있어?’, ‘안그래도 여성들이 시험도 더 잘치는데 남성들이 군대 다녀올 동안 여성들은 시험 공부할 시간이 더 생기네, 남성들만 억울하네’와 같은 말들로 사회 속(가정, 학교, 일터, 미디어 등) 여전히 만연한 성역할 고정관념, 기업 채용 시 성차별(면접 시 성차별적 질문, 면접 점수 조작 등), 자본에 의한 심각한 노동자 착취(OECD 국가들 중 최고수준의 노동시간 등)와 같은 실업문제와 노동문제를 구조적이고 종합적으로 보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정보들은 지우고 자신들이 강조해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편집해서 보여주며 “억울한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남성들에게 심어준다.

원래 내 것(직업, 돈, 권위)이여야 하는 것들을 여성들이 빼앗아 가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수행할 수 없어 억울한 남성들, 다시 남성들의 ‘과거의 영광(돈 잘 벌어오는 가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남성들의 시대)’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략한다. 그들이 회복하고자 하는 과거의 영광에 여성의 안위는 없다. 또한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이 남성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해로운지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이미 대다수의 젊은 남성들은 ‘남자답게, 여자답게’와 같은 성역할 고정관념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은 성차별, 성폭력과 연루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목소리 높이는 페미니스트들도 많다. 모든 젊은 남성들을 “이대남”이라고 묶어서 불러서는 안된다. 문제는 20대 남성들이 아니라 특정 20대 남성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정치인들이다. 극우적인 청년들을 “이대남”이라고 호명하며 자신들(30-40대, 50-60대 남성 정치인들)의 가부장적인 마인드와 일치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청년의 목소리”이자 “청년의 뜻”이라고 규정하고 대표성을 부여한다. 우리는 이런 기만적인 프레임을 깨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의 경제, 정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우매하게 만들고자 하는 기득권 세력은 우리에게 노동교육, 정치교육, 인권교육, 성평등교육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구조적으로 인식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목소리내는 시민이 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에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힘을 되찾아 와야 한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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