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선생님, 왜 여자 편만 드시나요? 여자들 편만 들고 남자들이 힘든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네요. 선생님도 페미에요? 이러니 남자들이 오히려 더 차별받는다는 말이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성평등 교육 현장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살기 힘들다’는 주장하는 남성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전에도 있었지만, 더 심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학생들이 있으면, 주변 학생들이 “선생님 신경 쓰지 마세요. 얘 남초사이트 해서 그래요” 이런 반응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남초사이트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는 뜻이죠. 그런데 지금은 남초사이트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유튜브에서 한 번 더 접하고 과거에는 온라인에서만 들던 이야기를 이제는 2030 남성청년을 대표한다는 정치인의 입을 통해서도 듣습니다. 공중파 TV 채널들의 뉴스에서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언론사들은 그 이야기를 받아씁니다. 그 소식은 또다시 남초사이트와 1인 방송들에서 다뤄집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정치인과 언론을 통해 “이게 청년들의 뜻이다”라고 과대 대표되어 대중들에게 전해집니다.

자신의 신념이 맞다고 증명하기 위해서 그것이 맞다는 증거를 찾는데 몰입하는 경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하는데, 이런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아도 또래 그룹부터 이 사회 전체가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 군대에 강제로 끌려간다는 것, 군대에 가서 내가 죽을 수도 있고 누구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데 최소한의 기준인 최저임금과 같은 대가도 받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맞습니다. 오래 일한다는 것, 전 세계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이 가장 긴 편입니다. 산재로 많이 죽는다, 산재로 인한 사망률 전 세계 1위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심각한 문제’가 맞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들 앞에 ‘남자만’ 혹은 ‘남자가 여자보다’ 이런 수식어를 넣어서 우리에게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젠더갈등 프레임’의 핵심입니다. 남성들이 자신이 경험하는 군대 문제와 노동문제를 ‘여성과의 비교’로 접근하게 프레임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할 수 있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짜 문제’를 봐야 합니다. 나를 착취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첫째,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지금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크게 어렵거나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선생님 남자가 여자보다 더 힘든데 왜 자꾸 여자 이야기만 하세요? 남자는 군대 가잖아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이어갑니다. “저도 군대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군대 문제 해결하고 싶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함께 이야기 해볼까요?” “군대,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질문에 답변은 “남자만 가는 거요”, “억지로 가는 거요” 거의 100%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면, “좋아요, 남자만 가는 것부터 해결해 봅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자도 가요!” “여성 징병제요” 이 답변이 항상 나옵니다. 그러면, “좋아요, 여자도 군대 가게 됐다고 해봅시다. 그럼 여러분들은 안 갈까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가요..” 그러면 “그러면 이 방법은 해결책이 아니네요” “엑스” “그러면 다음으로 넘어가서, 억지로 가는 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억지로 가는 거, 강제로 끌려가는 거 뭐라고 부르죠?” “징병제요!” “그렇죠” “그러면 모든 사람이 강제로 다 끌려가는 게 아니라 원하는 사람만 지원해서 직업군인으로 가는 것을 뭐라고 하죠?” “모병제요!” “그렇죠” “모병제를 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우리가 아직 전쟁 중이라는 거에요. 전쟁을 잠시 쉬고 있다는 뜻, 뭐죠?” “휴전” “그렇죠. 휴전입니다” “그러면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것을 뭐라고 하죠?” “종전” “그렇죠. 그럼 종전선언은 누가 할 수 있죠?” “우리 반 여학생들이 할까요? 여성가족부가 할까요?” “대통령이랑 김정은이랑 만나야 돼요”

이렇게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서 직접 대답하며 답을 찾아갈 수 있게끔 돕기만 하면 됩니다. 노동문제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동일하게 질문하고 대답할 기회를 주시면 됩니다.

“남자가 더 힘들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아니야, 여자가 더 힘들어”라고 말하며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을 사례와 통계 등과 함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효과적이지 않더라고요.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듣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정체성에 의해서 차별과 착취를 경험할 수 있는지 먼저 깨닫게 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정체성에 의해서는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를 차별할 수도 있는 특권 그룹에 속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을 훨씬 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둘째, 교육을 바꿔야 합니다. 장기적 접근이지만 더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우리는 교육은 없고 입시만 남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지금 인권과 성평등을 ‘내 것’으로 여기고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 인권교육과 성교육이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양적으로는 증가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권과 성평등을 접하게 되는 방식은 ‘인권침해 하지 마라’, ‘성희롱, 성폭력 하지 마라’와 같은 폭력 예방 교육의 방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권과 성평등은 내가 누려야 할 ‘내 것’,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 되지 말라’는 잔소리 듣는 시간 정도로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노동교육, 정치교육, 인권교육, 시민교육, 성평등 교육을 통해서 인권과 성평등을 ‘내 것’으로 여기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를 통해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가 여성에게만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게 아니라 왜 남성에게도 해로운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성평등이 왜 남성에게도 이로운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는 임금노동이 돌봄노동(가사노동, 육아 노동)보다 더 중요하고 더 필수적인 일로 여겨지게 만들고 돌봄노동을 부수적인 일로 만듭니다. 그리곤 돌봄노동을 여성의 일로 만듭니다. 그리고 이를 여성이 좋아서 하는 것으로,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성에게는 선천적으로 유전적으로 000이 있어서 돌봄노동을 잘한다”고 합니다. 000이 뭐죠? 그렇죠. 모성애입니다. 모성애는 신화입니다. 그렇게 믿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돌봄노동이 힘들다, 답답하다고 느껴져도 ‘이것이 사회구조의 문제구나!’라는 것을 발견할 수 없고 ‘모성애가 부족한 내 탓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 남성에게는 가장, 아빠, 남자라는 이름으로 ‘돈을 벌어올 것’이라는 임무가 주어집니다. 한국은 전 세계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편입니다. 가장 짧은 나라들과 비교하면 약 700시간에서 1000시간까지 차이가 나곤 합니다. 하루로 따지면 4시간씩 일을 더 많이 해야 일 년에 1000시간이 채워집니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격차가 작은 나라들 즉 성적으로 평등한 나라들은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이 짧습니다. 반대로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이 길면 성평등 지수가 나빠집니다. 한국 역시 이 상관관계에 딱 들어맞습니다.

남성들이 가정에서 경제력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야근, 철야를 버티도록 강요당하며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여성들은 성역할 고정관념과 모성애를 근거로 독박 육아와 가사노동을 견디게끔 만들어지면서 ‘사회적 자아’는 사라지고 ‘엄마’라는 정체성만 남게 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성별 간 정치, 경제, 사회적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성적으로 평등한 나라들은 노동시간이 짧은데 성별과 직업 그 어떤 것과 상관없이 보통 오후 4시에 퇴근합니다.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사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한국처럼 9시에 출근해서 9시, 10시까지 12~13시간씩 일해야 했던 사회에서 모두가 다 같이 6시간만 일한다면, 회사가 같은 양의 일을 하고 싶다면 사람을 더 뽑아야겠죠? 고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성별 상관없이 4시에 끝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빠, 엄마가 둘 다 4시에 퇴근합니다. 자녀가 있다면 자녀도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4시에 하원 합니다. 자녀를 돌보기 위해서 누구 한 사람이 휴직하거나 퇴직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력단절이 일어날 이유가 없어집니다. 성별 상관없이 4시에 끝나면 성별 상관없이 고용할 수 있게 됩니다. 더 길게 마음껏 일 시켜도 되는 성별이라는 게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성들에게만 좋을까요? 밤 9시, 10시는 돼야 퇴근하는 게 일상인 사람들이 오후 4시에 일을 마친다면 그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스트레스와 과로가 줄어들어서 건강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집니다. 감기와 독감 같은 잔병치레가 줄어들고 암, 심근경색, 뇌경색과 같은 한국 사회의 사망원인 최상위권에 있는 스트레스와 과로와 연관 있는 질병에 의한 사망도 줄어듭니다. 가족끼리 대화하는 시간이 증가하고 화목해집니다. 취미생활과 운동을 하는 시간이 증가합니다. 삶의 만족도, 행복 지수가 증가합니다. 남성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표가 좋아집니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가 남성들에게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인내해야 하는 것으로 사고하게 만들며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착취와 차별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성평등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들의 삶에서 건강, 행복, 자유, 만족을 빼앗아 가고 있었던 사람들로부터 나의 삶을 되찾아 오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근본적인 문제를 찾고 그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의 사회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들이 더 억울하고 더 힘들다고 말하는 남성들도 자신들이 이야기하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여성과 연대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자답게’ 같은 것은 없다며 성평등 확산을 위해 목소리 내는 페미니스트의 주장과 ‘남자답게’ 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남성성’이 부담스럽고 억울하다가 말하는 남성들의 주장은 사실상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성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이 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결국 이 사회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들이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대하는 태도, 비 성소수자들이 성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 선주민들이 이주민들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국가가 징병 된 군인들을 대하는 태도,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정확히 일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지금 자본의 관점에 의해서 효율적인 인간을 정상이자 기본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본이 만들고자 하는 가장 효율적인 인간이 되어 자발적으로 착취당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성평등과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뜨겁습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성평등과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한 목소리를 향해 ‘자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 심지어 ‘공산주의다’ 등의 말들로 공격하는 백래시도 심상치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인간의 기본값을 바꾸자고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본 중심, 경쟁 중심, 성장 중심의 사회의 인간인 남성 혹은 남성형 인간이 인간의 기본형으로 여겨지는 세상을 살았습니다. 이제 이런 모습으로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개인의 삶이 무너지고, 공동체가 파괴되었으며, 다른 존재와의 연대가 상실되고, 생태계는 황폐해졌습니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 모두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위태로운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변화가 필요합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을 적절히 하며 자기 삶을 살아가면서도 다른 사람들, 다른 생명들과 서로 돌보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간의 기본형으로 여겨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본, 경쟁, 성장이 아닌 인간, 생명, 돌봄 중심의 사회로 대전환의 시대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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