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지난 3월 16일 성공회대학교 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생긴 후 또다시 가짜뉴스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퍼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첫째로 여성을 앞세워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LGBT 단체, 국가인권위원회, 페미니즘 단체들 그리고 여성가족부까지 모두 성소수자들의 권리만 우선시하느라 여성의 권리는 뒷전’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 인권은 결코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화장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집 밖에는 남자 화장실밖에 없었습니다. “바깥 일”은 남자만 하고 여성들은 집에만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자 화장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또 공공화장실은 비장애인들만의 화장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장애인 화장실 설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장애인 화장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영유아와 함께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영유아와 화장실을 사용하기 힘들다’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가족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영유아 변기와 기저귀 교환대 등을 갖춘 화장실이 생겨나고 있기도 합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 논의와 실행도 이런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화장실은 일상생활을 위해서 누구나 사용해야 하는 필수적인 공간입니다.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으면 학교, 직장, 대중교통 그 어떤 공간에서도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성중립화장실’을 넘어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불리기 위해서는 휠체어 이용인을 포함해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훨씬 더 많은 부분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성중립화장실’이든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든 남녀공용화장실과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전부 다 막혀있는 독립된 공간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우리는 이런 공간을 집에서 하나쯤 갖고 있습니다. 가정집 화장실도 혼자 들어가서 혼자 문 잠그고 사용하는 것처럼 ‘성중립 화장실’은 독립된 1인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조력자(들)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 명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더 넓은 공간(역시 독립된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생기면 화장실 사용이 편리해지는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자신과 성별이 다른 어린이와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양육자도 있고, 성별이 다른 두 자녀와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양육자들도 있고, 성별이 다른 부모님을 모시고 화장실 사용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 그리고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성별이 다를 경우도 많고요, 성별 이분법이 불편한 사람들(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논바이너리)도 있습니다.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이기 때문에 성범죄나 불법촬영 등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성별로 구분된 화장실과 여성이 안전할 권리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성별로 구분돼 있는 여성 화장실이 여성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가?’ 이 점을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 여성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공간은 ‘성별로 구분돼 있는 여성 화장실’입니다. 그렇다면 성별 분리가 여성에게 안전을 담보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왜 여성들이 용변을 보는 것을 촬영하는가? 왜 그게 돈이 되는가? 왜 그것을 막지 못하는가/않는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사회를 뜯어고쳐야 하는 것이 답이 돼야 합니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가 돼야 여성이 화장실에서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성교육, 성평등교육, 인권교육이 필요합니다. 가해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아직 얼마 있지도 않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여성의 안전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필요한 사람들의 권리가 여성의 안전할 권리와 충돌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영유아 등 정말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자기 자신 모습 그대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담론만으로도 여성의 안전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 논의에 당연히 포함됩니다.

영미, 유럽, 일본에서는 이미 유니버셜 디자인, 베어리어프리 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시행되고 있습니다. 대만에서도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법으로 공공기관이나 학교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고 정한 주도 있습니다. 많은 대학들에서 모든 건물 1층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을 기본적인 문화로 정착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등 유명한 학교들에는 캠퍼스 내 성중립화장실 및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수 십 개가 있어서 지도가 있을 정도입니다. 유럽은 공공기관 화장실이 대부분이 성중립화장실입니다. 성범죄나 청결문제에 대한 걱정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성에 대한 범죄가 용납되지 않고 모두가 앉아서 소변을 봅니다. 그만큼 안전과 청결, 두 가지에 대한 교육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공회대학교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오직 딱 한 건물 그리고 그 중에서도 오직 딱 한 개 층에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했습니다. 성별로 구분돼 있는 비장애인들만을 위한 화장실은 많이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사용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충분한 자유와 선택지가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는 그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선택지 하나가 생기는 것입니다.

건축법을 근거로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지 않으면 불법이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는 법을 보면 “업무시설, 업무시설+근린시설, 근린시설은 2000㎡(600평)이상, 의료·교육시설 등은 공중의 사용이 많음을 감안해 1000(300평)㎡이상일 경우 의무적으로 남녀 분리 화장실을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성별로 구분돼 있는 화장실을 설치하도록 했지 성별로 구분돼 있는 화장실만 설치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별 구분이나 장애여부 등에 의해서 기존의 화장실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추가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이 이 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 법은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의 원인을 ‘미소지니(Misogyny)’로 인한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로 분명하게 명명하지 않았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경찰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범인이 조현병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화장실이 남녀공용이었던 점을 범죄의 원인으로 발표했습니다. 당시 범인은 CCTV 확인 결과 화장실을 먼저 이용한 여섯 명의 남성은 보내고 일곱 번째로 화장실을 찾아 온 여성을 따라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화장실이 남녀로 구분되어진 성별 분리 화장실이었어도 여성 화장실을 따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즉 근본문제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 만연한 사회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범죄 실행까지 연결되는 사회라는 점에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분명하게 인지할 때 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근본적인 문제를 계속해 외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성과 성소수자 그리고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깨끗한 화장실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소수자들의 인권은 상충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의 논리와 폭력을 몰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메인 캠페인 중 하나입니다. 해외자료, 설계도면, 체크리스트, 당사자 인터뷰 등의 자료가 연구소 홈페이지에 업로드돼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를 계기로 누군가를 끊임없이 배제하는 방식의 사회구조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사회의 모습을 직시하고 고찰하면서, 조금씩 모두를 위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이사장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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