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이 구로구에 왔을 때 이주민 2세인 한 청소년이 트럭에 올라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미디어에서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넘치고 차별을 조장합니다. 이주민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라며 구로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차별을 끝내기 위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주민이 많은 도시인 구로에서 이 청소년은 중국어로도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담담하지만 절실했습니다.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차별을 익숙한 듯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별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이주민이라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주민 정체성을 숨기고자 하는 청소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존에 유리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별과 억압이 공고한 사회는 자신을 긍정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모든 차별받는 정체성에서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특정한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의 대상이 될 때, 이들을 사회적 소수자라고 부릅니다.

한국계 중국인을 공포스러운 타자로 재현했던 영화 <범죄도시>의 2편이 최근 개봉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긴 소송과정에서 얻은 배움을 토대로 2편에서는 불필요하게 한국계 중국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는 내용은 모두 삭제됐고, 동시에 이러한 혐오를 조장하는 내용 없이도 흥행요소를 갖춘 작품으로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변화와는 달리, 언론은 여전히 ‘혐오팔이’에 한창입니다.

반복해 말하기도 지겨운 한국계 중국인을 잠재적 ‘코로나19 전파자’ 쯤으로 여기며 매우 잘못된 관점과 분석으로 고정관념과 편견을 재생산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라는 이유로 국내에 중국인이 많은 동네에 와서 ‘중국인=바이러스’와 같은 잘못된 관점을 드러낸 매우 부적절한 차별적인 보도였습니다. 최근에도 한국계 중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범죄의 분류라도 되는 듯 꼬리표붙이기식의 보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한국계 중국인이라는 점을 두고 이 사건의 원인이 가해자의 민족성(ethnicity)에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도 있습니다. 한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은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개인주의적 문화가 강해 이런 특성이 반영됐을 수도 있다"며 기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어떠한 사건이든 사회적인 맥락과 구조, 차별과 폭력의 경험, 경제력 등의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야 합니다.

납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사건은 많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민족성이 문제라고 해버리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회/구조/문화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면 그저 ‘문제적인 인간’을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식의 맥락을 삭제한 납작한 관점의 주장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누구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정체성 가운데에는 사회적으로 억압을 받는 정체성이 있기도 합니다. 정체성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시간과 장소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곳에서는 선주민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방인 또는 이주민이 되기도 합니다.

가해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 중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체성은 오로지 한국계 중국인이라는 민족성 뿐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가해자는 남성이기도 하지만 남성이라는 정체성이 문제의 원인으로 거론되지 않습니다. 기사 내용들을 보면 가해자는 아마도 비장애인으로 보이는데 비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은 문제의 원인으로 거론되지 않습니다.

어린이, 청소년으로 나이차별을 당하기도 하지만 이들도 비청소년(성인)이 되고, 더 나이가 들면 노인이 돼 다시 나이차별을 받는 정체성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비장애인이기도 했다가 일시적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장애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차별을 당합니다. 누군가의 차별은 나의 차별과 연결돼 있습니다하지만, 소수자 정체성일수록 미디어에 의해 무책임하게 타자로서 소비됩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트럭에 올라타 마이크를 들었던 이주민 2세 청소년의 호소와 연결됩니다. 수익창출에만 집중하는 철저하게 자본 중심의 논리에 따른 무책임한 미디어의 행태는 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특권에 해당하는 정체성에는 결코 따라붙지 않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가령 ‘조선족이라 그래’, ‘장애인이라 그래’, ‘어려서 그래’와 같이 문제의 원인으로 소수자 정체성을 지목합니다.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체성과 그렇지 않은 정체성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특성으로 여겨지지만, 사회적 억압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특성으로 여겨지는 현상이 있습니다. 2018년에 경기도 고양시에서 있었던 저유소 화재사건을 기억하시나요? 행운을 비는 마음으로 날려보낸 풍등이 우연히 저유소까지 날아가서 큰 화제가 됐었던 사건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작은 불씨가 어떻게 이렇게 큰 화재로 이어졌는지 철저히 조사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이나 본질이 풍등을 날린 사람의 국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외국인, 이주노동자, 스리랑카인’과 같은 단어들을 핵심 키워드로 보도한 언론들이 많았습니다. 조사 결과 기름탱크 주변에 화재감지기도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화염방지기 미설치,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났습니다. 사고 당일은 일요일이었고 일을 하고 있었던 사람은 총 4명이었습니다. CCTV가 설치돼 있는 통제실에는 한 명이 혼자 일했는데 화재 당시에는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상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감시 시스템은 아예 없거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풍등을 날렸던 이주노동자는 벌금형을 받았고 강제 출국 명령까지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결과론 적으로는 풍등을 날린 게 잘한 건 아니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과연 이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또 사건을 막는 것과는 얼마나 관련있는 일일까요?

사회적 소수자들 탓하고 비난하게 만드는 문화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앞서 언급한 <범죄도시>를 비롯해 한국계 중국인 비하 문제로 법정까지 갔던 영화 <청년경찰> 등 많은 미디어에서 문제의식 없이 손쉽게 한국계 중국인을 공포스러운 타자로서 설정하고 소비했습니다. 팔리는 혐오에 자유롭지 않은 창작자들은 무책임했고, 이는 반성없는 언론의 행태와 함께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는 문화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자료(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 2020)에 따르면 한국계 중국인의 인구대비 범죄 비율은 선주민의 인구대비 범죄율 보다 현저히 적으며 이주민의 국적별 비율로 보더라도 평균 이하의 순위에 있습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체성을 부각하는 방식의 보도는, 수많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특정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게 만듭니다. 이러한 저급한 보도에 대한 언론계의 내부적인 강력한 비판과 반성이 필요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에 누가 왜 그랬는지 알아보는 것은 때때로 소용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누가 왜 그랬는지 알아보는 일은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예방하기 위해서 중요합니다. 1차적으로는 가해자 개인의 잘못이지만 사회적인 원인, 구조적인 원인, 문화적인 원인은 없었는지 파악하고 또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이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이사장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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