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 작가<br>
ⓒ유영국 작가

유영국(1916~2002)은 1916년 4월 7일 경북 울진에서 4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경성제이고보를 재학 중 규율에 얽매인 교육 방식이 체질에 맞지 않아 중퇴한 후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미술반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진로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 그는 문학보다는 미술이 맞는 것 같아 미술을 택했다고 한다.

1935년 그는 동경문화학원 유화과에 진학했고, 2년 후인 1937년부터 1942년까지 일본 화단에서 활동했다.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했던 문학수, 야수파에 경도한 이중섭 등 문화학원 졸업자들의 대체적인 작품 성향은 전위적인 성격이었던 반면 유영국은 구성주의적 경향의 작품을 했다.

ⓒ 무제 캔버스에 유채, 130×130㎝, 1967년 
 

그는 1930년대 동경 유학 시절 때 추상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미술사에서 한국 제1세대 추상미술 작가와 선구자로 평가됐다.

개괄적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몇 가지의 혼합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1937년 초기에는 기하학적 도형들을 이용한 구상적 세계가 있는가 하면, 철저하게 기하학적 형태를 이용한 흑과 백의 릴리프(relief)적인 차가운 추상계열의 작품도 등장한다.

이들은 대부분 기하학적 패턴으로 구성적인 도형을 이용한 작품들로 타원형과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의 형태를 보여준다. 때로는 유영국은 옵티칼 아트(Optical Art)처럼 시각적인 작품들도 제작했다.

이러한 경향을 보아, 이 시기에는 작품세계가 갖추었다고 보기보다는 작품의 탐색기로 보인다.

ⓒ 산, 유영국, Oil on canvas, 62.5x62cm, 1970년대
 

특히 37, 38년쯤 습작이라 이름 붙여진 오브제 등은 그가 평면 회화에 만족하지 않고 입체성을 염두에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찍부터 프랑스와 유럽의 예술을 받아들였던 영향과 1930년대 일본의 새로운 추상미술 운동의 영향이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 일본에서의 모더니즘 미술은 1920년을 전후로 해서 소개된 미래파와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 1930년대의 초현실주의 및 추상미술의 전개로 이어지면서 해방 후 모던아트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권이었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산, 길, 나무 등처럼 자연적인 소재를 추상화시킨 철저하게 기하학적 구성과 원색적인 색채가 조화된 작품들을 보여준다.

ⓒMountaion, 1972, oil on canvas, 133x133cm
 

1954년 이후 그의 화면은 대단히 제한된 원색을 기조로 하면서 때때로 거울과 같이 투명하게 처리된 표면을 통해 화사하고도 경쾌한 분위기다.

1960년대 말부터는 ‘산’이라는 모티브 아래 선·면의 절제와 다듬어진 색채로 구성된 비구상적인 형태의 회화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그의 회화는 초기에 보여준 기하학적 구성의 추상에 기본조형을 두면서 원색의 색채와 균형감 있는 면 분할로 일관했다. 화면 구성 또한 가장 기본적인 기하학적 패턴을 유지하면서 삼각과 원, 그리고 일정한 직선의 띠들이 교차하면서 탁월한 조형미를 연출했다.

평생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의 예술의 모든 것은 자연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이룩하고 있는 작품세계는 자연의 근원이 형과 색으로 조형화돼 드러나면서 또 하나의 자연을 창조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자연주의적인 태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재현보다 구성의 양식을 독창적으로 성취했다.

ⓒMountain, 1982, oil on canvas, 80x100cm
 

이처럼 초기 유학 시절을 제외하고는 그의 작품은 표현에 있어 자연을 떠난 적이 없고 생활 주변에서 체험하는 산, 바다 등 자연 공간의 형상이 추상적 기호면서도 동시에 자연의 흔적을 여전히 일관하고 있다.

당시 유영국이 가장 존경하던 작가가 몬드리안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군더더기 없는 구성, 수직·수평의 절제된 균형 감각의 몬드리안 작품에 “말이 없어서 좋았다”라는 유영국의 말은 그의 과묵한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1·4후퇴 시 그가 고향 울진으로 피난해 생활하는 동안 자연과의 교감이 특별히 일어났으며, 이것이 작품구상에 새로운 변환을 일으키게 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Work, 1988, oil on canvas, 130x194cm<br><br>
ⓒWork, 1988, oil on canvas, 130x194cm
 

일본에 유학하던 시절에도 그는 방학 때면 근처의 해변에 나가 하루 종일 먼 산을 쳐다보거나 수영을 하는 것으로 소일하곤 했다고 한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의 생활과 체험은 유영국이 전개하는 화풍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해방 이후 유영국의 작품은 명확하고 단순한 구성주의적 경향에서 자연에 대한 깊은 감동을 전하는 비구상적 경향으로 구체적으로 전환됐다.

유영국의 단체 활동은 막을 내리고 그 후로는 주로 개인전을 통해 작품성의 심화에 주력했다.

ⓒWork, 1995, oil on canvas, 100x80cm<br>
ⓒWork, 1995, oil on canvas, 100x80cm

그는 말했다. “내가 대상으로 한 것은 자연이었고, 탐구해온 형태는 비구상을 바탕으로 한, 즉 추상이었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물로서의 자연이 아니고 선이나 면이나 색채 그리고 그런 선과 면과 색채들로 구성된 비구상적인 형태로서의 자연이다…그런 자연의 형태를 떠나서 선과 면과 색채로써 화면에 더 주관적으로 탐구되는 나의 자연, 나의 자연의 형태에의 탐구다. 나의 선이나 면이 놓이는 자리를 그렇게 찾아가는 것이다. 어떤 때는 직선이나 직선적인 면의 추구도 되고 어떤 때는 두터운 색면의 질감도 탐구하게 되며, 또 어떤 때는 더 기하학적인 색면이나 선과 형태들이 되기도 한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br>(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br>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그의 작품이 궁극적으로 서정성을 내포한다는 것은 주로 산(山)을 모티브로 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지금껏 제작해 온 작품 중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명제 또한 다름 아닌 산이다.

그는 자신의 산 작업 동기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산으로 에워싸인 지방에서 나서 자랐기 때문에 산의 명제가 많노라고 토로한 바 있다.

산을 통해 회화를 말하고, 산을 통해 자신의 모든 예술혼을 지킨 유영국.

이는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며 독창적인 산 풍경을 추상으로 풀어내고 한국의 몬드리안 같은 작가로 명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유영국이란 이름으로 미술관과 미술상을 만들지 말라고 전한 바 있다. 이 점에서 그는 후배작가들에게 작가의 길을 보여주는 동시에 모든 것을 작품으로써 말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산을 그리다보면 그 속에 굽이굽이 길이 있고, 그것이 곧 인생인 것 같아서 내 그림의 산 속에는 여러 모양의 인생이 숨어있다” - 유영국 작가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