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음주 범행’ 이유로 3년 감형
검찰, 법 적용 잘못 인정...판결 영향
이용구 전 법무차관도 ‘심신미약’ 꼼수
지속적 폐지시도, 법사위 문턱서 좌절
폐지 여론 도화선...국민 80%↑ 찬성
조국 전 민정수석, “신중한 논의 필요”
尹 대통령, “음주 범죄 무관용 원칙”

지난 2020년 12월 12일 오전, 아동 성폭행 혐의로 징역 12년을 복역한 후 출소한 조두순이 경기도 안산준법지원센터에서 행정절차를 마치고 이동하는 과정 중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20년 12월 12일 오전, 아동 성폭행 혐의로 징역 12년을 복역한 후 출소한 조두순이 경기도 안산준법지원센터에서 행정절차를 마치고 이동하는 과정 중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사형에 처하라!”, “교도소로 다시 돌려보내라!”

2020년 12월 12일 이른 아침 서울 남부교도소 앞. 전날 밤을 꼬박 샌 보수단체 회원과 유튜버 등 100여명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교도소를 빠져나오는 호송차량을 에워쌌다. 교도소 앞 일대는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들은 2008년 12월 8세 여아를 납치·성폭행하고 신체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던 조두순(69)이 형기를 채우고 만기 출소하는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생중계했다.

일부는 조두순의 출소를 막기 위해 교도소 앞 도로에 드러누웠고, 조두순을 태운 관용 차량을 향해 욕설과 함께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조두순의 끔찍한 범행은 당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극악한 범죄에도 법원이 징역 12년을 선고하면서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기도 했다.

당초 검찰은 범행의 잔혹성과 전과(17범)가 있음을 이유로 조두순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은 조두순이 사건 당시 ‘술에 취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인정해 이 같은 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심신미약(주취 감형) 제도 폐지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숱한 법 개정 시도는 번번이 좌절,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19년 10월 17일 오전.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19년 10월 17일 오전.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조두순은 어떻게 무기징역을 피했나

우리 형법 제10조 제2항엔 ‘심신미약자’에 대해 형을 감경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술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심신장애상태가 돼 의사 결정이나 책임능력이 떨어진다고 봐 형벌을 줄여주는 제도다.

조두순은 재판 내내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로 일관했고, 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국민들은 죄질에 비해 너무 낮은 형량을 선고한 법원에 분노했다.

그러나 조두순 사건의 1심 담당 판사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표창원 전 국회의원은 2016년 한 종편 방송에 출연해 “1심 담당 판사가 여론의 비난이 자신에게만 쏟아지는 것에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그가 억울함을 토로한 이유는 형법 제10조 2항의 ‘심신미약’ 규정이 ‘강행규정’이라 자신의 뜻과 무관하기 때문이란 얘기다. 즉,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반드시 감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행 당시 조두순이 만취했다는 명확한 증거자료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 분노는 검찰을 향했다. 표 전 의원은 “1심 판사가 ‘검찰 측에서 조두순 측의 만취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실제 검찰은 해당 판결이 내려진 이후 항소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며 직접적 비난 대상이 됐다. 오히려 항소는 조두순 측이 제기했다.

이 때문에 2심 재판부는 검찰이 항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황 반전을 시도해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고 강변했다. 항소한 게 정부(검찰) 측이 아니라 가해자(피의자) 측이면 1심보다 더 높은 형을 내릴 수 없다.

결국 검찰이 1심에서 구형한 무기징역은 유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당시 유기징역 상한이 15년이었던 점을 고려한 법원이 최종 12년형을 선고했다는 게 표 전 의원의 설명이다.

2009년 9월 24일 대법원은 조두순 측의 상고를 기각해 징역 12년형과 전자발찌 7년, 신상 공개 5년형을 확정지었다. ‘불이익변경 금지의 원칙’상 원심 이상을 선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당시 15년이던 유기징역 상한선은 30년으로 늘었고, 심신미약 감경규정도 ‘강행규정’에서 ‘임의규정’으로 바뀌었다.

아동 성범죄자 김근식(54)에 대한 구속영장 심문기일인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으로 김씨가 탑승한 호송버스가 들어가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아동 성범죄자 김근식(54)에 대한 구속영장 심문기일인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으로 김씨가 탑승한 호송버스가 들어가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불가피했던’ 재판부 선고

일단 감경사유가 인정되면 유기징역형의 경우 무조건 법정형을 1/2로 감경해야 하고, 사형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유기징역, 무기징역은 7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만 선고할 수 있다.

이렇게 형의 범위가 정해진 상태에서 법관은 그 범위 내에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형량을 정할 권한만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법률상 감경사유가 있긴 하지만 ‘조금만 감경’하는 식의 양형은 한국 법체계에선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법정 최고형이 무기징역이었던 조두순 사건(아동에 대한 강간상해)은 심신미약이라는 감경사유가 인정되면서 당시 법제 기준인 7~15년의 양형 내에서만 선고가 가능했던 것이다.

게다가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근거해도 담당 판사는 자신이 가진 권한 범위에서 조두순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형량을 내렸다. 당시, 해당 사건에 해당하는 권고형량은 최대 11년까지였다.

문제는 하급심에서 심신미약을 인정했어야만 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 형사절차는 ‘당사자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즉, 판사는 피고인과 검사가 서로 다투는 걸 지켜보는 입장이기에 검사가 피고인의 심신미약 주장을 방어하지 않는다면 이 주장이 그대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라는 ‘무죄추정의 원칙(in dubio pro reo)’이 형사법의 근본정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이 사건의 판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판사는 양형기준보다 높은 형을 선고하면서까지 최대한 처벌했다.

◆검찰은 왜, 상고하지 않았을까

사실 조두순에게 내려진 12년형은 당시 성범죄자에겐 상당한 중형이었다. 국민정서에 비하면 가볍게 느껴질 법 하지만, 판사 입장에선 상당히 무거운 형을 선고한 셈이기 때문에 검찰 측에서도 상소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당시 국회 대정부질문에선 상고하지 않은 검사를 질타하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실상은 상고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다는 게 법률적 판단이다.

판례에 따르면, 검사가 징역 10년 이상을 선고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관계상 오류를 제외하고는 피고인에게 불이익이 가는 이유로 상고할 수 없다.

검찰은 이 사건 이후 기각을 각오하고서라도 10년 이상 징역이나 무기징역에 대해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하고 있지만, 순수 양형부당만으로 검찰의 상고를 받아준 사례는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조두순 사건에서 검찰 측의 잘못이 있다면 법 적용 문제라고 봐야 한다. 검찰은 조두순을 기소하며 13세 미만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을 규정한 성폭력특별법이 아닌 형법상 강간상해죄를 적용했다.

2008년 시행된 성폭력특별법 해당 조항의 경우 ‘무기나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해 ‘무기나 5년 이상의 징역’인 형법에 비해 형량이 높다. 피해자는 사건 당시 8세였으니 성폭력특별법을 적용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국정감사에서도 여야는 한 목소리로 ‘검찰이 당초 잘못된 법을 적용해 사건을 다뤘다’고 비판했다. 만일 검찰이 항소 후 공소장 변경 신청을 통해 형법이 아닌 성폭력특별법을 적용했더라면, 조두순에겐 훨씬 무거운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었던 셈이다.

검찰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실책’을 인정했다. 당시 안산지청장은 “성폭력특별법 개정 전에는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상해 법정형에 무기징역이 빠져있어 오히려 해당 형법을 적용하는 게 더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었다”며 “이전 관례에 따라 처리하다 보니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8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택시기사 폭행 혐의’ 관련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8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택시기사 폭행 혐의’ 관련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용구 전 법무차관도...끝없는 주취 감형 시도

조두순 사건 이후 관련 법 개정이 수없이 시도되며 일부 진전된 개정안이 나오는 등 주취 감형 적용 결과가 줄긴 했지만, 음주가 심신미약으로 인정될 수 있는 범위에서 완전히 배제된 건 아니다.

이러다보니, 여전히 형사 법정에선 피고인들의 주취감경을 위한 심신미약 주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조두순 사건 14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받아 감형 된 사례는 많다.

지난 2015년 9월엔 술에 취해 아내를 흉기로 협박하고 성폭행한 40대 남성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참작했다”며 40시간의 알코올 치료 수강을 명령했다.

하루 전엔 사실혼 배우자의 얼굴과 배 등을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중국 국적의 40대 남성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18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며 감형 판결했다.

같은 해 6월 옛 직장동료의 여자 친구를 성폭행한 30대 남성도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 남성은 술을 마신 뒤 모텔 옆방에서 자고 있던 직장동료의 여자 친구를 자신의 객실로 유인해 성폭행했지만, 당시 재판부가 ‘술에 취한 상태였고, 후회하고 있다는 점’을 참작해 실형을 면했다.

또 이보다 앞선 2014년 12월엔 음주 상태에서 애인의 딸을 10시간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한 남성이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초등학생을 납치·성폭행한 김수철과 여중생 성폭행 살해범 김길태, 수원 20대 여성 성폭행 미수 살인범 오원춘 등도 ‘범행 당시 음주’를 주장했다.

피의자들의 주취감형 요구는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친구 부인을 성폭행한 피의자 역시 법정에서 주취감형을 요구했다. 이 피의자는 지난 1월 새벽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은 채 잠이 든 친구 부인의 신체를 만지는 등 유사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재판에서 “술에 취한 점을 고려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사람들에게 공분을 샀다. 그러나 이 재판을 담당한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합의1부는 심신미약에 의한 주취감형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징역 2년과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3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지난 3월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 첫 공판에선 이 전 차관 측이 혐의를 부인하며 “만취 상태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극히 미약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 전 차관 변호인은 “피고인(이 전 차관)은 자신이 어디 있었는지, 상대방이 누구인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차량이 운행 중이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항변했다.

이 사건은 ‘전직 법무차관까지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받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주취감경 논란을 재점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주취 감경 폐지 개정안, 법사위 문턱서 좌절

2009년 대법원 판결로 조두순의 최종 형량이 확정되면서 여론은 들끓었고, 당시 시민들은 ‘음주 상태에서 성 범죄를 저지를 경우 가중 처벌하라’며 서울 시청 광장 등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같은 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주취감경 폐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국회와 정부 등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듬해인 2010년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강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의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이 제정돼 시행에 들어갔다.

같은 해 대법원 양형위도 13세 미만 강간상해 범죄에 대해 무기징역을 구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양형기준을 높였다. 2012년엔 강간, 주취 폭력, 살인, 절도 등 취중상태 범죄에 대한 감형 기준을 강화했다.

국회는 또 2013년 성범죄처벌법 개정을 통해 음주감경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범죄를 한 경우 형법상 감경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재판부 재량에 맡기는 형식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해서 지난 20대 국회 당시, 주취감경 폐지 관련 개정안은 10건 이상 발의됐지만 모두 법사위 벽을 넘지 못했다.

술 취한 자의 성범죄 형벌을 ‘심신미약’으로 인정하지 말자는 데 뭐가 이렇게 어려울까.

가장 큰 이유는 법조계 입장이다. 국민 정서와 달리 법조계에선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음주로 인한 범죄 예방이 먼저’라는 주장이 부딪힌다. 특히 국회 법사위는 ‘책임주의 원칙 위배’를 들며 개정안 처리에 소극적이다.

음주는 약물·정신장애 등과 함께 심신장애를 야기하는 한 원인인데 음주 관련 사항만 일률적으로 배재하는 식으로 법이 개정되면 정신장애는 감경이 되고 음주는 안 되는 법적 일관성이 결여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현재 프랑스와 영국 등은 음주 후 성범죄를 가중 처벌 사유로 정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술이나 약물 등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더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스스로 만취해 저지른 범행은 원칙적으로 감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나라는 판례상으로도 ‘주취는 범죄의 변명이 될 수 없다(Drunkness is no excuse for crime)’는 원칙이 있을 정도다.

지난 2017년 12월 6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생방송으로 진행된 청와대 소셜라이브에 출연, 조두순 출소 반대 국민 청원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17년 12월 6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생방송으로 진행된 청와대 소셜라이브에 출연, 조두순 출소 반대 국민 청원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尹 대통령, “음주 범죄 무관용 원칙” 강조

2017년 12월 8~9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47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을 실시한 결과, ‘음주감형제도 폐지’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은 85.0%였다. 폐지 반대는 13.8%, 모름·무응답은 1.2%였다.

이듬해 10월 12일 리얼미터 조사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CBS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서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80.0%로 집계됐다.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11.8%에 불과했다. ‘잘모름’은 8.2%.(두 조사 모두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난 2020년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검거된 살인범죄자의 37.6%, 방화범죄자의 41.7%가 주취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이보다 앞서 경찰청이 발간한 ‘2016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5년 검거된 살인 및 살인 미수범 995명 가운데 390명(39.2%)이 음주 상태에서 범행했다. 성폭행 범죄는 6427명 중 1858명(28.9%)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

형법 제10조 등의 법리로만 따지고 보면, 음주 범행 가해자 모두 재판부에서 심신미약 상태를 다퉈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주취감형 폐지 논란은 2017년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라 20만명 이상이 서명했었다. 당시 청원자는 “주취 감형으로 조두순이 15년형에서 12년형으로 단축됐다”며 “술을 먹고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봐준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엔 60만명 이상이 동의해 청와대가 답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재심은 유죄 선고를 받은 범죄자가 알고 보니 무죄이거나 죄가 가볍다는 명백한 증거가 발견된 경우에만 청구할 수 있다”며 “무기징역 등 처벌 강화를 위한 재심 청구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조두순의 감형에 대해서도 “현행법상 주취감형이라는 규정은 없지만 때에 따라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로 인한 감경규정이나 작량감경 규정을 적용해 음주를 이유로 형을 감경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 조항은 음주로 인한 감경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일반적인 감경사항에 관한 규정이어서 그 규정 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음주범죄 무관용 원칙’을 강조하며 주취감경 폐지를 약속했다. 주취범죄를 양형 감경요소에서 제외하겠다는 게 윤 대통령의 기본 입장이다.

이에 따라 현 정부는 주취감경 폐지를 12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고, 최근 법무부는 ‘주취범죄 엄정대응을 위한 법제개선방안’이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폐지 방안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음주로 인한 주취감경이 해외 입법례에 있는지 조사하고 폐지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한지 검토하려는 것”이라며 “연구용역 결과를 분석해 법 개정이 필요하면 정부 입법으로 할 지, 의원 입법으로 할 지 그때 가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회의 시작에 앞서 이재명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회의 시작에 앞서 이재명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영교 의원, “주취 감형, 국민정서 반해...가중처벌 해야”

주취감경 폐지 논의는 형법 제10조 제2항이 ‘심신장애로 인해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는 필요적 감경규정에서 ‘감경할 수 있다’는 임의적 감경규정으로 개정될 때 함께 다뤄졌었다.

20대 국회 당시 주취 감경 폐지를 골자로 하는 특례법 개정안은 다섯 차례나 발의됐다. 그러나 ‘책임이 없는 자에게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책임주의 위배 사유로 번번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음주나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심신미약으로 감형 받지 못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이런 내용을 형법 제10조 4항에 추가해 형을 감경하지 못하도록 했다.

개정안 발의 당시 서 의원은 “과거 조두순 사건 이후 성범죄에 대한 음주 감경을 제한하고 있고 2018년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 규정을 임의적 감경규정으로 변경했으나 여전히 사법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이 결정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음주나 약물로 인한 범죄의 경우 본인의 의지로 자제가 가능한 점을 감안할 때 이로 인해 형을 감경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것으로 오히려 가중처벌 해야 할 정도로 중한 사항”이라며 “음주나 마약에 취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주취감경이 이뤄지는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8년 5월 박인숙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도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음주 범죄에 대해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을 지워 음주 후 행동에 경계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맞다”며 주취 감경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안 후보는 페이스북 글에서 “음주운전은 강력처벌하면서 음주 범죄를 감형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정부안으로 음주 범죄에 대해 감형 재량권을 둘 수 없도록 두는 형법 제10조를 개정해 주취 감형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했다.

안 후보는 “일각에서 ‘책임이 없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을 거론하지만, 성인의 자발적 음주에 따른 범죄행위를 책임이 없는 행위로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며 “성인은 본인의 의지로 사전에 충분히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주취감경 폐지 문제는 찬·반 논쟁이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결론이 안 나고 있다. 조두순 사건 발생 14년, 조두순 출소 2년이 경과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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