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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책짓는 아재]

▪ 11월 30일 수요일

방금 불편하지만 동시에 매력적인 소설 한 편을 읽었다. 막상스 페르민의 『눈』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대상은 우리의 시각기관(眼)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눈(雪, 英-snow, 佛-neige)이다. 소설도 눈처럼 새하얗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소설 『다다를 수 없는 나라』처럼 여백이 넘치고,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시의 여운, 소설의 여운

『눈』은 소설이지만 시집 같다. 판형(size)부터가 통상 시집 사이즈로 활용되는 46판이고, 분량도 128쪽이다. 심지어 –총 54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여백도 많다. 덕분에 단숨에 읽히지만 읽고 나면 그 몽환적인 언어가 마음속에 오래 맴돈다. 구성도 어딘가 몽환적이다. 하이쿠는 열일곱 음절로 구성되는데(5-7-5), 유코가 시인의 길에 들어설 때가 열일곱 살이다.

“아버지, 저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시는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흘러가는 물이다. 이 강물처럼 말이야.” […]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11쪽)

아버지는 아들 유코가 승려 혹은 군인이 되길 바랬다. 유코는 결국 타협책으로 매해 겨울에만 시를 쓰기로 한다. 눈에 매료되었기에 겨울에 쓰고자 한 것이며, 7을 숭배하는 시인이기에 매해 77편을 쓰기로 정한 것이다. 하지만 유코의 작업은 곧 외부의 주목을 받고, 심지어 궁정 시인이 방문하기에 이른다. 궁정 시인은 시에 색이 결여된 것을 지적한다.

사랑이 구원이다

유코는 궁정시인의 제안을 따라 소세키 선생에게 배움을 받고자 길을 나선다. 그 여정 가운데 죽을 뻔하다가 간신히 살아남는데 그때 접한 여인의 시신이 하나의 분기점이다. 주인공 유코와 스승 소세키의 삶이 이 여인을 매개로 엮인다. 그렇기에 사제가 겪었던 죽음의 위기와 구원을 묘사하는 언어가 일치한다.

“[…]추위에 위축되고 진이 빠진 채 어둠의 두께 속에서 눈의 깊이 속에서 외로움의 현기증 속에서 침묵 속에서 현재였다. 추위와 배고픔, 피곤과 원망과 무기력으로 백번이고 죽을 상황이었지만 살아남았다.

유코를 구원한 것은 이미지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미지, 그것 역시 현실 저편에서 온 눈부신 것이었다. 그의 평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숭고한 이미지가 밤에 나타나 그를 살렸다.”(42쪽)

“추위에 위축되고 진이 빠진 채, 얼마 전 겪은 비극과 어둠의 두께 속에서 겨울의 깊이 속에서 외로움의 현기증 속에서 침묵 속에서 그는 혼자였다. […] 추위와 배고픔, 피곤과 원망과 무기력으로 백번이고 죽을 상황이었지만 살아남았다.

무사 소세키를 구원한 것은 이미지였다. 그것 역시 현실 저편에서 온 눈부신 것이었다. […] 그의 평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숭고한 이미지가 그를 살렸다.”(66-67쪽)

구원과 균형

두 시인-유코와 소세키-의 구원은 균형 가운데 경험된다. 대표적인 균형 잡기로 -네에주가 추구하는- 줄타기 곡예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소설은 균형을 추구하는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시(詩)와 사랑을 제시한다. 유코는 시로 시작해 사랑으로 나아가고, 소세키는 사랑으로 시작해 시로 나아간다(“그렇게 그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시인이 […] 되었다”, 88쪽). 소세키의 사랑은 네에주(Neige, 눈[雪])이고, 유코의 사랑은 네에주의 딸 봄눈송이다.

소세키는 네에주 옆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반면 유코는 봄눈송이와 혼인한다. 유코는 궁정 시인의 길을 포기하고, 봄눈송이는 곡예사가 되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둘은 사랑한다. “그리고 서로 사랑했다. 줄 위에 머물러 있었다. 눈으로 지어진.”(124쪽) 둘은 연인이고, 시인이며, 곡예사다. “삶의 줄 위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들”이다(122쪽)

불편하나 매력적인

끝으로 불편한 지점 두 가지만 다루어 보자. 첫째는 작품의 소재와 관련된다. 이 소설은 프랑스 작가가 프랑스어로 집필한 소설인데, 내용은 19세기의 하이쿠 시인의 구도적 과정을 다룬다. 『눈』을 읽는 내내 프랑스의 한결같은 일본 사랑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눈』은 시(詩) 일반을 다룬다기보다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俳句)를 중심으로 다룬다. 일본에 대한 욕망이랄까, 일본 예술에 대한 동경이랄까. 하여간 일본에 매혹된 저자의 시선은 의문을 남긴다. 왜 일본일까? 나는 저자의 일본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 불편하다

둘째는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시선이다. 주인공 유코가 섹스를 원하면 여자들은 응한다. 반면 그가 원치 않으면 여자의 욕망은 거부된다. 문자 그대로 일방적이다.

주인공은 우물가에서 만난 여자와 첫 경험을 한다. 이후 궁정 시인과 함께 온 아름다운 여성에 지독한 미움과 거대한 사랑을 함께 느끼던 날 밤에 그 우물가 여성과 다시 섹스한다. 그 아름다운 온 여성을 향한 욕망(네에주의 딸 눈꽃송이)을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 그가 이때 그녀와 섹스하는 횟수는 그가 숭배하는 숫자(7)와 일치한다. 그 아름다운 여성을 향한 넘치는 욕망을 뜻하는 것이리라.

유코가 스승과 사별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다시 섹스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는 거절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여성이 다시 찾아오자 그날 밤에 둘은 섹스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여성이 그의 뜻을 따른다.

<strong>바벨 도서관의 사서</strong><br>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br>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br>나 역시 마찬가지다.<br>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br>
바벨 도서관의 사서
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
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일본에 매혹된 시선이나 여성을 대하는 접근 모두 일방적이다. 어쩌면 폭력적이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방적이기에 명료하고 나아가 아름답다. 유코와 소세키의 구도 여정을 다루는 언어는 몽환적이고도 명료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사유 세계 속에서 구축된 일본이고, 예술이며, 하이쿠일 뿐이다. 하지만 그 재구성은 아름답고 명료하다.

덧붙여서 『눈』을 읽고 혹시 하이쿠에 관심이 생겨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면, 류시화 작가가 엮어 옮기고 간결한 설명을 덧붙인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를 추천한다. 하이쿠에 대한 그의 소개글의 후반부를 여기에 인용하겠다.

“하이쿠는 생략의 시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여백과 침묵으로 마음을 전한다. 하이쿠는 영원 속의 순간을 포착하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문학이다. 꽃과 돌의 얼굴에서 심연을 보고 숨 한 번의 길이에 깨달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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