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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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지방소멸’은 더 정확히 말하면 ‘농어촌 소멸’을 뜻한다. 시청소재지, 군청소재지를 벗어나 읍·면사무소 소재지를 가면 황량한 거리와 낡은 건물들이 지역의 쇠락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적잖은 농어촌지역에서 농협 본점과 하나로마트만은 대도시에서 볼만한 최신식 건물로 지어져 있다. 쇠락해가는 거리의 모습과 동떨어져 통유리로 그럴듯하게 세워진 농협건물을 보면 그만큼 농심(農心)과 멀어지는 지역농협의 단면을 보는듯해 씁쓸했다.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도 ‘깜깜이 선거’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이하 위탁선거법) 개정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부터 위탁선거법에 따라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치른 이유는 조합장선거에 만연한 ‘돈선거’를 근절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위탁선거법은 막상 ‘돈선거’를 더욱 조장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나친 선거운동 제한으로 정책선거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선거가 사라진 선거현장은 ‘돈봉투’가 메꾸기 마련이다. 

경찰청이 지난 2019년 3월 밝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선거사범 단속현황을 보면 제1회 선거에서는 총 671건, 878명을 단속했으며 제2회 선거는 436건, 725명을 단속했다. 제2회 선거는 1회와 비교해 단속건수는 35%, 단속인원은 17.4% 감소했다.

그러나 단속유형별로 보면 금품선거는 제1회 선거는 483명, 제2회 선거는 472명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경찰청은 “선거인 규모가 작고 조합원 중심으로 치러지는 조합장 선거의 특성상 이번 제2회 조합장 선거에서도 전체 선거사범 중 금품선거가 차지하는 비율이 여전히 높다”고 분석했다.

당시 경찰청은 명절선물을 빙자해서 선물세트를 보내거나 현금과 영양제를 함께 제공하는 등 다양한 사례를 공개했다. 경북지역의 한 축협에서는 조합장 입후보예정자와 선거운동원 5명이 공모해 조합원들에게 5000만원 상당을 제공해 110명이 수사대상에 올렸다.

이뿐 아니다. 충남 논산시의 한 지역농협에서는 2015년 1월경 조합장선거 출마 예정자가 어림잡아 150여명에게 돈봉투를 살포하다 적발돼 지역이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두 6000여만원의 금품을 돌린 이 출마 예정자는 조합원이나 그 가족들에게 1인당 2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금품을 제공받은 사람도 최대 50배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어 만약 법에 따라 처벌하면 과태료만 무려 30억원에 달하게 된다. 당시 해당농협의 조합원 수가 1600여명, 지역 전체 성인 인구수가 380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지역사회 전체가 큰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급기야 해당지역 선관위가 “금품·향응을 제공받은 조합원(가족)이 자수할 경우 최대한 선처하겠다”는 방송차량까지 지역에 돌려야 했다.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선거때마다 엄정한 단속을 강조하지만 전국 곳곳의 농어촌마을 전체를 완벽히 단속한다는 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5억 쓰면 당선, 4억 쓰면 낙선’이란 말이 공공연히 돌아다니는 이유다.

돈선거를 없애려면 공명선거 퍼포먼스나 ‘강력처벌’을 강조하는 관계기관의 엄포를 넘어 근본적으로 정책선거를 유도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당장의 돈봉투보다 제대로 만든 정책과 이를 실행할 준비가 된 후보를 조합장으로 선출하는 게 낫다고 인식하면 돈선거는 사라진다. 더 나아가 조합원들이 스스로 고민해 ‘이런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후보들에게 요구하기 시작하면 선거풍토는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것이다. 그러려면 선거와 함께 조합원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

지역농협·수협·산림조합은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해야할 최일선 현장에 있는 경제조직이다. 또한, ‘생산비 상승·가격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처한 농어민들이 협동으로 어려움을 해소하는 협동조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 조합장선거는 그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장이 돼야 한다.

문제는 국회가 위탁선거법 개정이란 숙제를 8년 가까이 묵혀두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3월 선거 전 개정안 통과 여부도 매우 불투명한 모습이다.

현재 위탁선거법 개정안은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이다. 지난 정개특위에서 이 개정안을 다뤘으나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새로 구성한 이번 정개특위에 해당 개정안이 넘어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 정개특위 내 협의가 있었는데 위탁선거법은 주논의대상이 아니었다”라고 사정을 귀띔했다. 또다른 의원실 관계자도 “위탁선거법 개정안이 어디에서 다뤄질지 확정되지 않았다. 현안이 많아 뒤로 미뤄진 듯하다”고 전했다.

위탁선거법 개정은 정책선거를 뿌리내리는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내년 3월 선거가 다가오며 ‘깜깜이 선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국회는 그 한 발자국조차 8년을 끌고 있다. 이번 선거가 지나면 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한다. 모쪼록 국회가 200만 조합원들에게 떳떳한 결과를 내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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