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 변경 검토...오 시장 의중?
정 의장, “이미 결론 난 것...계획대로”
“최 구청장, ‘신속 건립’까지 약속해”
공약 불신 우려 확산...넘어야 할 산多
도림천 육교 사고, 총체적 부실 현장
순환보직 인사시스템, 짚어봐야 할 때

정선희 영등포구의회 의장. ⓒ투데이신문
정선희 영등포구의회 의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옛 ‘방림방적’ 터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제2세종문화회관’이 최근 여의도로 옮겨갈 조짐을 보이면서 지역민들의 ‘공약(公約)’ 불신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0년 가까이 문제없이 추진돼오던 사업이 신임 구청장 취임 반년도 안 돼 갑자기 방향을 틀게 된 이유는 뭘까. 영등포 지역에서 내리 4선을 기록하며 제9대 전반기 영등포구의회를 이끌고 있는 정선희 의장을 만나 그 연유를 들어봤다.

제2세종문화회관 사업은 2025년 개관을 목표로 문래동3가(55-6) 일대 1만2947㎡ 대지에 2000여석 규모의 대·소공연장과 각종 문화시설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다. 2021년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거쳐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서울시 재정사업인 제2세종문화회관은 서울 서남권 7개구 지역 300만 시민의 문화 향유권 제고와 지역 균형 발전을 목적으로, 최근까지 관련 행정절차를 모두 마치며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영등포구청장 후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제2세종문화회관을 문래동 기존 부지에 짓겠다며 앞 다퉈 공약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최호권 현 구청장은 ‘신속 건립’까지 약속했다.

최 구청장은 취임사를 통해서도 해당 부지 내 건립을 ‘문화공약 1호’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장소가 협소하고, 구 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면 임대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여의도 이전을 공론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선희 의장은 “이 문제는 이미 결론이 난 사안으로, 기존 문래동 부지 건립 계획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며 “최 구청장이 자신의 공약을 너무 쉽게 뒤집는다”고 비판했다.

2025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들어설 제2세종문화회관. [자료제공=서울시]
2025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들어설 제2세종문화회관. [자료제공=서울시]

◆◆최 구청장, ‘신속 건립’→‘적절성 검토’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부지 변경 문제가 지역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이 사업은 지난 9년 동안 차질 없이 추진돼온 계획에 따라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다. 본 사업 유치를 위해 서울 서남권 주민 대상으로 여론조사도 실시했었고, 80% 가까운 찬성 결과가 나오면서 당시 서남권 건립에 미온적이었던 박원순 시장도 2019년 12월 오케이 하게 됐다.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왜 이전 얘기가 나오나.

“신임 최호권 구청장이 자신의 공약을 뒤집겠다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최 구청장은 지난 지방선거 후보 당시 제2세종문화회관을 기존 문래동 예정지에 짓겠다고 공약했었다. 특히, 최 후보는 신속 건립까지 약속했다. 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다른 후보들 역시 정당을 떠나 다 같은 공약을 내세웠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정치적 입장과 무관한 사안이다. 그런데 이걸 지금 엎겠다는 거다.”

이와 관련, 최 구청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민 이익”이라며 “제2세종문화회관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문화시설인 만큼 접근성이 좋고 전망이 우수하며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곳에 건립하는 게 적합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구청장은 “문래동 예정지가 적절한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는 만큼, 시유지 활용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구민들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관련 예산도 꽤 들어갔을 것 같은데.

“국제현상설계공모 등에 필요한 서울시 예산이 현재 12억원 이상 잡혀 있는 상태다. 예산도 그렇지만, 작년 2월 서울시의회가 공유재산 관리계획(신규 취득 신축)까지 의결했다. 설계비 등 시 관련 예산도 5억원이나 편성됐고. 그런데, 갑자기 꼬이고 있다. 지난해 2월과 8월 두 번에 걸쳐 서울시가 부지 무상사용 MOU 공문을 영등포구에 보냈는데, 구청은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최 구청장이 공약을 뒤집으려는 이유가 뭔가.

“그게 참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조기완공 하겠다고 한 주민과의 약속이 거짓말이었냐’고. 그랬더니, ‘공약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고 한다.”

-어디로 이전하고, 그 이유는 또 뭔가.

“여의도 시유지로 이전하겠다고 한다. 이유는, ‘왜, 구유지에 서울시 시설을 짓느냐’는 거다. 또 ‘왜, 구민이 돈을 내고 그 시설을 이용해야 하냐’고 한다.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하나도 없다면서..”

서울시는 현재 영등포구가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부지를 새롭게 제안하면 재검토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 관계자는 “공유재산관리계획 심의 시 서울시의회가 구유지에 시립시설을 짓는 방안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낸 바 있다”며 “영등포구가 해당(문래동) 부지 활용방안을 마련해 구체적으로 제안해오면, 시도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선희 영등포구의회 의장. ⓒ투데이신문
정선희 영등포구의회 의장. ⓒ투데이신문

◆“최 구청장, 영등포구 실상 잘 모르는 사람”

-최 구청장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서 최 구청장에게 ‘왜, 혜택이 없냐.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효과가 상당하고, 임대료도 많이 나오고 지방세 수입도 적지 않다’고 따지기도 했다. 또 구유지 무상 제공 문제를 거론하길래 ‘그렇게 걱정되면 의회 옆 시유지 주차장 2천평과 문래동 부지를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까지 했다. 그런데 최 구청장은 이 땅(주차장 2천평)이 시유지인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만큼 영등포구 실상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주민들 입장은 뭔가.

“당연히 이전하면 안 된다고 한다. 특히, 인근 주민들 반발이 심하다. 이 사업은 현재 최 구청장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미 구의회에서 의결됐고, 서울시의회도 오케이 했는데 지금 와서 안 하겠다 그러면 시·구의회 모두 재의결 과정을 거쳐 뒤집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겠나. 말이 안 된다.”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사업은 지난 2021년 11월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하면서 이후 시·구의회 의결까지 모두 마쳤다. 사업 초기 단계라고는 하지만, 전면 백지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문래동 주민 반발은 물론, 균형발전 지적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서울시 입장은 어떤가.

“사실 제2세종문화회관은 영등포구가 토지를 제공하고 서울시 예산으로 지어서 운영도 시(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가 직접 하는 걸로 돼 있다. 영등포(구)는 이 시설을 운영할 능력도 없다. 때문에 이 문제는 최 구청장이 공약을 뒤집으려고 한기다보다 오세훈 시장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영주 국회 부의장(영등포 을)이 오 시장을 만나 이 문제를 의논해봤는데, 오 시장이 ‘이정도 추진됐는지 몰랐다’면서도 ‘(제2세종문화회관을) 두 군데 만들면 더 좋지 않겠냐’고 얘길 했다고 하더라.”

-무슨 의미인가.

“아시다시피 ‘큰 꿈(대권)’을 꾸는 오 시장이 여의도에 대한, 한강 변에 대한 애착이 크니까 나름대로 그런 차원에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려는 게 아닌가 그런 얘기다. 그런데, 사실 이게 쉽지 않다. 여의도공원 인근에 짓겠다는 건데,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다. 결국,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제2세종문화회관 부지 문제가 표류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 성과로 비춰지면 안 되니까. 본인(최호권)도 구청장에 당선 됐고, 아무리 생각해도 반대할 다른 이유를 못 찾겠다.”

최근 신도림역 인근에 위치한 ‘도림천 보도 육교’가 개통 6년 만에 주저앉았다. 도림보도육교는 도림천을 사이로 도림동과 신도림역을 잇는 폭 2.5m 연장 104.6m의 보행교로, 철강재를 엮어 육교 가운데가 솟아오른 아치형태로 제작됐다. 지난 2015년 28억원의 공사비를 들인 이 육교가 지난 연말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내려앉은 것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안전 문제가 부각됨에 따라 도림천육교 ‘사고’에 대한 입장도 들어봤다.

-얼마 전 도림천 육교가 내려앉아 현재 폐쇄조치 됐다.

“이게 서울시 예산 28억원을 끌어와 만든 건데, 당시 시공업체가 공사 도중 추가 비용을 요구 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시공업체 요구가 무시됐고, 공사는 그렇게 마무리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한 마디로 부실시공 됐다는 얘기다.”

-사고 전 ‘시그널’이 수차례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연말 저녁에 처음 민원이 접수됐던 걸로 나온다. 그런데, 이날이 토요일이었다. 1월1일은 연휴였고. 그러다보니, 담당 공무원이 2일 날 출근해서 보고하려고 했던 거 같다. 처음 민원이 접수됐을 때 담당 공무원이 현장을 가봤어야 했는데, 안 가고 사고 때까지 방치한 거 같다. 나중에 육교가 엿가락처럼 늘어진 후에 민원이 다시 제기되면서 대대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지난 연말, 행정안전부 신문고엔 ‘육교 외형에 변형이 생겼다’는 내용의 민원이 접수됐다. 이틀 후에는 ‘다리가 내려 앉았다’는 신고도 두 차례나 들어왔다. 그러나 영등포구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구청 담당자는 안전신문고 내용을 사고 전날인 2일 오후 확인했지만, 적극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과 신도림역을 잇는 도림보도육교가 휘어져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과 신도림역을 잇는 도림보도육교가 휘어져 있다. ⓒ투데이신문

◆시설물 안전점검 등급, 육안으로 판단 ‘황당’

-시공사는 어떤 입장인가.

“당시 공사를 맡았던 시공사는 현재 폐업 상태다. 관급 공사 A/S 기간이 10년이라는데, 그나마 시공사가 부도났으니 그동안 A/S마저도 안 됐던 거다. 하청, 재하청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고 안전 점검도 문제라는 주장이 나온다. 1년에 두 번 안전점검을 하는데 최근까지 A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사달이 났다. 그래서 이게(A등급)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 봤더니, (안전점검 관계자가) 육안으로 보고 판단한다고 그런다. 말도 안 되는 얘길 하고 있는 거다.”

-현재 어떻게 처리되고 있나.

“며칠 전 우리 구의원 두 명이 포함된 사고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안전, 건축, 토목 관련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가 현재 정밀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게 끝나야 보수를 하든 뭘 하든 할 것 같다.”

취재 결과, 최근 해당 육교는 영등포구가 연 2회 정기안전점검을 받는 제3종 시설물로 지정해 유지·관리 중이다. 지난해 하반기 안전점검에서 이 육교는 A등급(이상 없음)을 받았다. 부실검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영등포구청 도로과는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만 답하고 있다.

-구청 관리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공무원들은 보직 순환으로 1~2년 간격을 두고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보직이 바뀌면 자기가 해오던 일과 상관없다고 여기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이게(순환보직) 부정부패 문제 때문에 생긴 건데, 모든 제도가 그렇지만 꼭 좋은 방식이라 할 수만도 없다. 구청장 바뀌었다고 구민에게 필요한 공무원을 입맛대로 갈아치우는 건 문제가 있다. 특히 구의원 12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인사(人事)가 이번 구청장 들어 단행됐다.”

-인사는 신임 단체장이 새로운 구정을 펼치기 위한 차원 아니겠나.

“문제는 전임 구청장과 가까웠던 사람을 전부 인사조치 했다는 거다. 개중엔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원칙이나 기준 없이 인사조치 했다는 게 문제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 분노가 크다. 인사권이 있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처음 봤다. 전임 구청장들은 대부분 안고 갔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순환보직이 길어야 2년이고, 그나마 단체장이 바뀌면 또 인사이동 조치 한다. 이러면, 인수인계 받은지 몇 개월 안 돼 또 발령이 나 업무파악을 제대로 못한다. 직무 연속성이 떨어지는 거다. 업무파악하려면 적어도 6~7개월은 걸리는데,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나. 이런 게 전부 구민 피해로 돌아간다. 그래서 보통 한 사람 정도는 부서에 남기는데, 영등포구는 그런 것도  없다.”

-‘공무원 인허가 실명제’ 도입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례 제정을 검토해볼만하다고 본다.”

정 의장은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 공약은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물론, 행정의 연속성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크다고 말한다. 특히,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규모 큰 사업은 지자체장 임기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아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문래동은 지하철 1, 2, 5호선이 인접해 여의도보다 교통편의성도 뛰어나다”며 “까다로운 타당성 조사와 투자심사 등을 모두 마친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은 당초 계획대로 문래동에 들어서야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영등포 지역의 당면 현안으로 떠오른 제2세종문화회관 이전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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