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규 지음 주승인 그림·만화 | 120쪽 | 153*200 | 가꿈 | 1만2000원

[사진제공=가꿈]
[사진제공=가꿈]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 “우러러 볼 어른이 없다”는 말이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산다. 사는 게 힘이 들거나 무언가 결정을 하지 못하고 막막할 때 의지할만한 어른이 없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바라는 어른의 상은 저런 것인데 주변의 어른을 보면 젊은 세대를 가르치려고만 하고, 자신의 기준을 들이밀며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고집을 피우는 사람이 많다고 여기는 것이다. 요컨대 ‘요즘 사람’들은 어른에게 ‘가르침’보다는 ‘위로’를 받아서 ‘위안’을 얻고 싶어 한다는 말이다.

『고향은 여전합디까』(가꿈, 2023)는 시조집에 이런 위안거리가 들어 있다. 지은이 박성규 교수는 고려대학교 한문학과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한 교육자이며 학자이고 문장가다. 젊은 학생들에게는 따뜻한 선생님으로 후배 교수들에게는 공평하고 인자한 사람으로 존경받았다. 우러러 볼만한 어른이었다.

이런 어른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척 단순한 데에 있다.

“숟가락이 밥맛 모르듯이, 인생을 좀 살았다고는 해도 제대로 삶의 의미를 모르는 자신의 작품으로 말미암아 읽는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앞선 데다 완미하지 못한 작품을 통해 졸렬한 속마음이 세상에 공개된다는 두려움도 적지 않았다.” <「자서(自序)」 중에서>

이처럼 끊임없이 스스로를 낮추며 굳이 알려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자 속에 감성을 불어넣으며 10년 가까이 공을 들인 만큼,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놓는 것이므로 웃을 일 많지 않은 세상에 사는 지인들이나 친구들에게 하찮은 우스갯거리로도 제공될 수 있었으면 한다.”<「자서(自序)」 중에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상 독자가 지은이의 지인이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실려 있는 시조를 읽으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슬픔을 색깔로도 칠할 수 있다면야

연초록 핏빛 노을 검정색 정도지만

저마다 가슴에 서린 슬픈 빛깔 있으리 

<「혼자 아닌 사람은 없다」 중>

평생을 대리 인생 영화 속 주인공은

죽었다 살아나고 희비극 다 겪더니

영원히 무대 떠나면 어떤 나를 만날까

<「혼자 아닌 사람은 없다」 중>

두 번째는 고 강수연 배우의 부음을 접하고 쓴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첫 번째 작품에도 짧은 글 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색깔 이야기에 잘 녹여냈다. 표현도 참 좋지만 이런 글은 남을 남으로 관조하는데 그치지 않았기에 쓸 수 있지 않았는가 한다. “그래, 당신 마음 다 알아”고 다독거리는 것 같다.

이 책에 수록된 385수의 시조는 모두 이처럼 남의 삶과 마음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해 이뤄져 있다. 이런 어른의 따뜻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면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은이 소개

박성규

1947년 경남 고성(固城) 출생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문학사

동 대학원 문학석사·문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장

(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명예교수·(사)고전문화연구회 이사장

저서·역서 : <고려후기사대부문학연구>, <삼국유사>, <징비록>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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