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단순 기록 넘어 ‘자기 표현’ 수단으로 변모
한정 굿즈, 모으는 재미 ‘쏠쏠’…“고객‧브랜드 매개체”
‘취향은 곧 개성’…나만의 다이어리 속 나만의 이야기
떠오르는 ‘갓생’ 트렌드…충실한 삶으로 자아 실현해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조유빈 기자】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되는 프란츠 카프카 작가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말처럼 일상이 겹겹이 쌓여 인생이 되듯,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의 완성도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일상의 기록에서 꼭 빠짐없이 등장하는 상품이 있다. 연말연시만 되면 주목 받는 ‘다이어리’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이어리에 대해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날짜별로 간단한 메모를 할 수 있도록 종이를 묶어 놓은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대명사로 주목받고 있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다이어리가 단순히 일상의 기록에만 쓰이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징이 다이어리에서도 적용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남과 차별화를 주는 한정판 다이어리의 경우 매년 ‘오픈런’ 대란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 스티커‧스크랩‧마스킹 테이프 등을 이용해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다이어리를 만드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이밖에도 아이패드나 갤럭시 탭 등과 같은 태블릿 PC를 통해 다이어리 앱을 이용하거나 인스타‧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 하루일과를 인증하는 방식도 살펴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공시생이 자기의 하루 공부량을 인증하는 ‘공스타그램’, 운동매니아가 그날 한 운동을 인증하는 ‘오운완 챌린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각자의 개성이 녹아들게 된 다이어리는 이제는 기록이라는 개념을 넘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양식으로 변모하고 있다.

스타벅스 2023 다이어리 [사진제공=뉴시스]
스타벅스 2023 다이어리 [사진제공=뉴시스]

커피전문점 한정판 다이어리, 내 ‘컬렉션’으로

연말이 다가오면 매번 스타벅스‧투썸플레이스‧할리스‧커피빈‧이디야 등 커피전문점들 사이에서는 ‘한정판 다이어리 전쟁’이 시작된다. 일정 수량 이상의 음료를 마시면 다이어리를 증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다이어리 이벤트는 늘 품귀현상이 일어나며, 웃돈까지 붙여 인터넷 매매도 활발히 이뤄질 정도로 인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정판 다이어리의 흥행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전문점의 한정판 다이어리 시작은 스타벅스부터였다. 스타벅스는 e프리퀀시(11월‧12월 스타벅스 시즌 음료를 구매하면 받을 수 있는 쿠폰) 총 17개를 모은 손님에게 특별 제작한 한정판 다이어리를 증정한다.

이 같은 스타벅스의 한정판 다이어리 이벤트는 지난 2004년부터 19년째인 지금까지도 쭉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인기의 배경으로는 브랜드 이미지, 한정판에 대한 희소성, 컬렉션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져 있다. 실제로 매번 스타벅스 굿즈를 모으고 있는 전모(30‧여성)씨는 “처음에는 스타벅스만의 세련되고 고급적인 고유 이미지가 좋아서 구매하게 됐다. 또 SNS에서의 스타벅스 다이어리 열풍에 동참했던 면도 있다”며 “한정판인 만큼 모으는 재미와 뿌듯함이 있다. 이게 쌓이면 나만의 컬렉션이 된다”고 설명했다.

관련 업계에서도 이 같은 행사가 충성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이라며, 앞으로도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커피전문점 업계 관계자는 “다이어리 이벤트는 단순한 행사가 아닌 고객의 꾸준한 방문을 유도하고 그로 인해 고객과 브랜드 간에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며 “앞으로도 업계 전반적으로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다이어리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모션 이벤트 및 굿즈 출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텐바이텐 오프라인 매장 [사진제공=텐바이텐]
텐바이텐 오프라인 매장 [사진제공=텐바이텐]

내 취향으로 꾸민 ‘개성 만점’ 다이어리

MZ세대들에게 있어 취향은 곧 개성을 나타낸다. 커스터마이징(자체 제작)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별다줄(별걸 다 줄인다)’이라는 말에 이어 ‘별다꾸(별걸 다 꾸민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같은 MZ세대들의 커스터마이징이 다이어리에까지 손을 뻗쳤다.

최근 MZ세대들 중심으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나만의 개성 있는 다이어리를 만드는 문화가 유행이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다꾸’를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만 무려 366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 카페에도 26만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해 다꾸 노하우‧솜씨 인증 등을 공유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다꾸의 인기는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나만의 다이어리’를 만드는 즐거움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작년부터 다꾸를 즐겨하고 있다는 이모(27‧여)씨는 “일기를 쓰는 것 자체가 일상을 기록하는 데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단순히 기록만 하기에는 쉽게 질리게 되다 보니, 스티커나 마스킹 테이프를 사용해 내 마음대로 꾸미게 됐다. 특히 ‘나만의 다이어리’ 만드는 것이 즐겁다”고 설명했다.

SNS에서 다꾸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이꾸소’는 “아이돌을 좋아해서 ‘폴꾸’(폴라로이드 꾸미기)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다꾸로 넘어갔다. 어렸을 때부터 스티커를 좋아했던 것도 한몫했다”며 “이제 다꾸는 퇴근 후 집에서 하는 ‘힐링’ 시간으로 자리 잡았고, 이러한 결과물을 인스타그램 및 유튜브 등과 같은 SNS에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브랜드를 조화롭게 표하는 것이 제 개성이다. 앞으로는 스티커보다는 기록에 집중하는 불렛저널 기록형식이 트렌드가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또다른 다꾸 인플루언서 ‘_som da’는 “친구들과의 추억을 정리할 때 사진만으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일기를 썼고, 그러다 글만으로는 흥미가 떨어져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다꾸하는 순간만큼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며 “더 예쁘게 붙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것도 나름의 재미이다. 제 다꾸는 남들의 기록을 응용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패션 유행이 돌고 돈다는 말처럼 다꾸의 트렌드도 돌고 돌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은 디지털로도 다꾸를 많이하는 추세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갓생’ 실천할래요, 자기계발 나선 MZ세대

이처럼 손으로 직접 다이어리를 쓰고 꾸미는 아날로그 방식이 있는가 하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태블릿 PC 등을 이용한 ‘디지털 다이어리’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기기 발달과 온라인 활성화 등으로 인해 일정관리가 용이해짐에 따라 공부‧운동 등과 같은 자기관리 기록들을 SNS에 공유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삶을 추구하는 MZ세대들도 늘어난 추세다.

실제로 지난해 1월부터 11월 21일까지 텐바이텐 디지털 문구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텐바이텐에서 자체 제작해 무료 배포한 템플릿의 누적 다운로드 수가 5만7850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온라인 앱을 통해 작성하는 다이어리의 관심도는 아이패드‧갤럭시탭 등과 같은 태블릿 PC 사용의 보편화에서 비롯됐으며, 또 수정이 간단하고 종이나 펜 등을 아낄 수 있다는 친환경적인 요소가 엿보이기도 했다.

태블릿을 사용해 다이어리를 작성한다는 김모(26‧남)씨는 “노트나 펜 등을 아끼기 위해 태블릿으로 다이어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블로그에 다이어리를 갱신한다는 최모(28‧여)씨의 경우 “아무래도 기록이 중요해진 만큼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며 “온라인으로 기록하는 이유는 빠르게 타자를 칠 수 있고, 수정도 간단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특히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루틴 인증 챌린지 등이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지난달 13일 인스타그램이 발표한 ‘2022 트렌드 연말결산’을 살펴보면 공스타그램을 필두로 공스타, 스터디플래너, 공부인증, 공부자극글귀, 노트필기 등 공부와 관련된 해시태그 상위권을 차지했다. 가장 큰 성장세를 보인 해시태그로는 오운완과 만보걷기 등 운동과 관련된 키워드였다.

이처럼 재작년까지 유행했던 ‘욜로’(You Only Live Once·한번 사는 인생 제대로 즐기자), ‘플렉스’(flex·돈 자랑) 등의 열풍이 차츰 사그라들고, 최근에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생산적인 생활방식에 대해 ‘갓생’(신을 뜻하는 영어 ‘갓(God)’‘인생’을 합친 말)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게 됐다.

이와 관련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최근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좌절을 경험한 MZ세대들이 한 번 뿐인 인생을 마음대로 즐기자는 욜로 문화를 뒤로 하고 자기관리에 열정을 쏟는 갓생살기에 나서고 있다”며 “자기관리에 대한 기록을 SNS에 축적하며 교류하는 과정에서 자기 효능감과 자존감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도 “주간일기 챌린지 등이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다이어리가 하나의 유행이 됐다”며 “실제로 관련 제품들의 매출이 상승함에 따라 계획적으로 보내려는 이용자들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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