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시행 예정인 ‘CCTV 설치 의무화법’ 도마 위
의료계 “우려했던 일…필요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복지부 “관리·처벌 규정 강화중…업계 논의도 진행할 것”

지난 2021년 8월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수술실에서 병원관계자들이 CCTV를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21년 8월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수술실에서 병원관계자들이 CCTV를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최근 서울소재 모 성형외과 진료실을 촬영한 영상이 유출된 가운데 오는 9월부터 시행 예정인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2대는 지난 6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성형외과에서 여성 환자들이 진료를 받은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유포돼 현장조사에 나섰다.

유출된 영상은 1.5GB 분량으로, 유명 연예인을 포함한 환자 10여명이 진료 상담을 하거나 시술을 받는 모습이 기록됐다.

이번 영상은 지난달 24일부터 5일 동안 진료실 내부 천장에 달린 인터넷 프로토콜(IP) 카메라로 촬영된 것으로 조사됐다. IP카메라는 유·무선 인터넷에 연결돼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내거나 원격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카메라로, 인터넷만 연결되면 물리적 거리에 제약을 받지 않아 보안에 취약하다고 평가받는다. 

현재 경찰은 병원 외부와 연결된 전산망을 통해 유출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상태다. 더불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해당 영상이 게시됨에 따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여성가족부 등과 함께 차단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앞으로 경찰은 해킹으로 영상이 유출됐을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운영 시스템, 로그기록 등 범죄 경위를 수사할 계획이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이 지난 2021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저지를 위한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석해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이 지난 2021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저지를 위한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석해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법안 재검토 해야”…의료계 반대 여전

이 같은 유출 사건이 발생하자, 의료계에서는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며 해당 법안의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CCTV 설치 의무화를 반대해온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그동안 대한의사협회는 환자의 영상정보를 만드는 순간부터 유출의 위험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력 반대해 왔다”며 “수술 장면의 불법유출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의료계의 지속적인 지적이 현실화되고 있음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와 정부는 이번 유출 사고를 계기로 촬영영상의 불법유출에 따른 국민의 피해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수술실 CCTV 설치 강제화의 필요성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P카메라가 아닌 CCTV를 설치하더라도 영상의 도난·분실·유출 등의 위험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 의협의 입장이다. 의협은 “수술실에서는 진료실에서 다루는 민감 정보보다 더 내밀한 민감 정보가 촬영되며, 저장되는 순간부터 유출의 위험에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법적 영상 유출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취지로 환자의 민감한 신체부위가 노출되는 수술의 경우 CCTV 촬영의 예외사유로 규정하는 등 예방적 조치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의료계는 수술실 내 CCTV 의무설치가 의료진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위축 진료로 인한 의료 질 저하 등을 일으킬 수 있다며 법안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시행 코앞에 둔 ‘의료법 개정안’

앞서 지난 2021년 9월 정부는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의료기관의 개설자는 수술실 내부에 CCTV의 설치·운영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개정된 의료법은 공포일로부터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023년 9월 24일부터 시행될 방침이다.

이에 의료기관은 환자의 요청을 받을 시 수술의 전 과정을 촬영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다만 △응급 수술 △고위험도 높은 수술 △전공의 수련 등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서는 의료진 측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또한 CCTV 설치비용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 의료기관장은 30일 이상 CCTV 영상정보를 보관해야 한다.

영상정보는 수사·재판 등을 위한 관계기간이 요청하는 등 공적기관이 요청하는 경우에 한해 환자와 의료진 양측이 모두 동의할 시에만 열람 및 제공이 가능하다.

해당 법안은 지난 2015년부터 여러번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대에 부딪히며 번번이 무산됐다. 이후 지난 2016년 9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도중 과다출혈로 사망한 고(故) 권대희씨 사건으로 인해 입법이 촉발됐다.

유족이 확인한 수술실 CCTV 영상에는 수술을 집도한 의사 A씨 없이 약 30여분동안 간호조무사 홀로 권씨를 지혈하는 모습이 담겨 논란을 빚었다.

이에 당시 진행한 국민권익위원회 설문조사에서는 참여한 시민 97.9%가 CCTV 설치 의무화에 의료사고 등에 대한 증빙자료 수집, 의료인의 경각심 필요 등을 이유로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후 시민들의 여론에 여당까지 힘을 더해 입법을 이뤄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를 통해 “해당 법안에 대해서는 시행 규칙을 준비하고 있으며 곧 입법 예고할 계획”이라며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지원하기 위해 현재 예산 확보가 된 상황이며, 예산 집행을 위해 각 지자체에게 안내를 했다”고 설명했다.

논란에 대해서 복지부는 “문제가 된 건은 CCTV가 아닌 IP카메라며, 법안에서는 수술실 내부에 인터넷 네트워크 카메라가 아닌 폐쇄회로 카메라만 가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며 “이에 더해 수술실 CCTV 영상이 유출·변조·훼손 우려가 없도록 의료기관이 기술적·관리적·물리적 조치를 해야 하는 의무와 이를 반할 시 처해지는 엄격한 처벌 규정 등도 담겨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이번 강남 성형외과 유출건과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현재 시행 규칙 및 지침과 세부적인 기준 등을 강화하고 있으며, 필요시 의료계와 논의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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