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주 52시간제서 주 단위 범위, 월·분기·반기·연으로 개편
노동계 중심으로 반대 의견 잇따라…MZ세대 노조도 합세해
“장시간 노동·과로 탈피제도 효과 미비…도입은 시기상조”
경영계·경제계 “업무량 맞게 유연한 대응 가능해질 것” 환영
노동부 “근로시간 낮추면서 생산성 높이는 방안 마련할 방침”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앞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앞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정부가 ‘주 최대 52시간제’ 등 대대적인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와 경제계 중심으로 찬반 논란이 뜨겁다.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지난 6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에는 현행 ‘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최대 연장 12시간)을 유지하되, ‘주’ 단위의 연장근로 단위를 노사 합의를 통해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운영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단위로 전체 근로시간을 관리하게 될 경우 일이 몰리는 주에는 근로시간이 늘고 일이 적은 주에는 감소하는 식으로 근로시간이 매주 달라질 수 있는데, 한주에 최대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정부는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는 저축한 연장근로를 휴가로 적립한 뒤 기존 연차휴가에 더해 장기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개편 이유에 대해 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지난 2018년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주 52시간제를 도입했으나 획일적·경직적인 주 단위 상한 규제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며 “산업 현장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3년 만에 급격히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결과, 많은 기업들이 위법과 적법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서 소위 포괄임금이라는 임금약정 방식을 오남용해 장시간 근로 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선택권과 건강권이 조화되는 글로벌 스탠다드와도 맞지 않는다”며 “이번 제도 개편의 지향점은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의 보편적 보장 세 가지”라고 덧붙였다.

제도 개편에 따른 기업의 휴가 제한 등 악용 가능성에 대해 이 장관은 “요새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들은 ‘성과급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됐냐’고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고 하는 등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다”며 “과거의 나이 많은 기성세대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노동시간 개악 저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과로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민주노총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노동시간 개악 저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과로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MZ를 위한 법?…입을 모아 ‘반대’ 외치는 2030

하지만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을 두고 노동계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근로시간 개편에 최대 수혜자로 꼽혔던 MZ세대조차 정부와 상반된 입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제도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될 경우, 근로시간이 무분별하게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소속 청년노동자들은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에 청년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러다가 6개월 안에 죽겠다’, ‘비혼 장려 정책이냐’, ‘대한민국은 다시 야근 공화국으로’라는 말이 회자가 되고 있을 정도”라며 “이번 개정은 사용자가 5일 연속 아침 9시에 출근해 자정까지 일을 시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자 연차소진율은 76.1%인데, 있는 연차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휴가는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단 말이냐”며 “더 이상 MZ세대 운운하며 청년을 위한 정책인 것처럼 호도하지 말고, 과로사로 내모는 현 개편안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MZ세대를 주축으로 한 신생 노동조합 협의체인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이하 새로고침)도 정부의 근로시간제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새로고침은 “우리나라에 상대적으로 많은 공휴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들과 비해 평균 근로시간이 더 많은 이유는 우선 연장근로 상한이 높고, 더불어 우리나라 산업 현장에서 연장근로가 빈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주 52시간 등 근로시간 제한은 당초 기대했던 법제 취지의 안착마저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장시간 노동과 과로 탈피를 위한 국가의 제도적인 기반 마련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돼, 개편안을 도입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놨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노동개혁의 출발점”…환영의 목소리도

노동계와 다르게 경영계와 경제계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해 환영 의사를 드러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지난 6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근로시간 개정안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 온 낡은 법제도를 개선하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정안을 계기로 그동안 산업현장에서 주단위 연장근로 제한 등 획일적·경직적인 현행 근로시간제도로 인해 업무량 증가에 대한 유연한 대응 및 워라밸 요구확대에 따른 다양한 시간선택권이 제한돼 온 어려움이 해소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경총은 향후 정부와 정치권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정책과 입법에 반영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 기반을 확대할 것을 요청했다.

경제계도 환영 의사를 내비쳤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일 502개사를 대상으로 ‘정부 노동시장 개혁 기업의견’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기업 79.5%는 근로시간 유연화·임금체계 개편 중심의 노동개혁이 완수되면 기업의 경영활동과 기업경쟁력 제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더불어 기업 80.7%는 신규채용 및 고용안정 등 채용시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방안 중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한 개선사항으로 기업들은 ‘연장근로 운용주기 확대’가 45.0%으로 가장 많았으며 ‘선택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가 32.9%로 뒤를 이었다.

다만 경제계는 연장근로 운용주기 확대와 함께 추진 중인 11시간 연속 휴식제, 주 64시간 상한 등 건강권 보호조치에 대해 보다 탄력성을 둬야 제도 개혁의 실효성이 높을 것이라고 짚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근로시간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연장근로 운용단위를 개편하는 것에 동의한다”면서도 “연속휴식시간제는 노사가 합의한다면 연속휴식시간제 대신 기업의 상황에 맞는 다른 건강권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적용 예외규정을 두는 조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노동부 “주 4일제 도입의 기반될 것”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해 여러 노동단체가 반대하는 등 부정적 여론이 지속되자, 정부가 사태 진화에 나섰다.

노동부 권기섭 차관은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연일 논란을 이어가고 있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권 차관은 “근로시간 유연화는 주 4일제의 보편적 도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며 “주 52시간제로 가면 주 4일제를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개편이 논의를 촉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여러 우려에 대해 그는 “주 52시간제의 지향점을 깨는 것이 아니라 실근로시간 단축이 목표다”며 “주 평균 근로시간을 잘 관리하고 장기휴가를 활성화할 시 과로가 많이 줄어들고 생산성 또한 굉장히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제도 개편 후 일이 많을 때 집중 근로를 할 시 근로시간이 80.5시간(11.5시간×7일)에 달할 수 있다는 일각 우려에 대해서는 “해당 가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주 52시간제에서도 5일간 8시간 일한 뒤 주말 이틀간 12시간 일하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렇게 일하는 곳은 없다”고 반박했다.

일명 ‘공짜 야근’이 당연해질 수 있다는 주장과 보장된 연차 휴가도 다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해 장기휴가로 활용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 그는 정부를 믿고 지켜봐 달라고 답변했다.

그는 “포괄임금 오남용을 막으려는 정부의 의지는 강하다”며 “휴가 문제는 연차에 대한 금전 보상 문제와 연결돼 있고, 임금체계 구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임금체계 개편 및 이중구조 개선 등과 연계해서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근로시간을 자연스럽게 낮추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이날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친 뒤 오는 6∼7월경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노조들을 주축으로 한 반대 여론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이번 정부 개편안에 반발하고 있어 국회 통과에 다소 난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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