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8개월 뒤 이태원 찾은 인파 속 대화
“여긴가?”·“안됐다”·“이제는 용기 내기로”
참사 직전 대비 유동인구·매출 76% 회복
“아픔 나누기 위해서라도 와주길 바란다”

지난 22일 오후 참사 골목 추모의 벽에 붙은 메모와 바닥에 줄이은 꽃다발 ⓒ투데이신문
지난 22일 오후 참사 골목 추모의 벽에 붙은 메모와 바닥에 줄이은 꽃다발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지난 22일 오후 4시께 이태원역을 나오는 길이었다. 참사 이후부터는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었다.

그렇게 열차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데 계단 세 칸 위에서 아이돌 이야기를 하는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지하에 웅웅 울렸다. 

땋은 양갈래 머리로 선글라스를 낀 그들은 1번 출구 지도 앞에서 달뜬 걸음을 멈췄다. 일행을 기다리는 듯했다.

기자도 기다리는 이 없건만 출구 앞에 덩그러니 서 있어 봤다. 이내 그들의 일행이 도착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정수리부터 눈썹, 턱, 어깨 순으로 새싹 자라듯 올라온 얼굴 속에 반가움과 웃음기가 가득했다. 

삼삼오오 모여 1번 출구를 나서는 모습이었다. 계단을 따라 오르자 출구에서 머지않은 걸음으로 당시 참사가 있었던 골목에 닿을 수 있었다. 부러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대로(大路) 한복판이었다. 

지난 22일 오후 참사가 있었던 골목은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사진 촬영을 하는 등의 목적으로 인파가 끊이지 않았다. ⓒ투데이신문
지난 22일 오후 참사가 있었던 골목은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사진 촬영을 하는 등의 목적으로 인파가 끊이지 않았다. ⓒ투데이신문

“···This way···” “맞네 맞아···”

참사가 발생한 장소는 이태원동 중심에 있는 해밀톤호텔 뒤편인 세계음식거리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대로로 내려오는 좁은 골목 내리막길이다. 길이는 45m, 폭은 4m 내외로 성인 5~6명이 횡열(橫列)로 이동할 수 있는 정도다. 

해밀톤호텔 외벽이 현재 추모의 벽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책상 위 3단 서랍에는 펜과 메모지, 테이프가 준비돼 있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물품은 넉넉했고, 일회용컵에 담긴 보라색 난꽃 한 대도 더위에 풀죽긴 했지만 관리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골목에서 발걸음을 멈춘 것은 기자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당시 참사 현장에 있었다는 A(23)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골목 위에 있는 가게 야자수 조형물에 매달려 있었다”고 했다.

이어 “친구가 이태원에서 놀자고 하길래 ‘좀 그렇지 않나?’했는데 이제는 시간이 흘러 방문할 용기를 내봤다”고 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여긴가?” “맞네 맞아” “안됐다”며 쳐다보고 혀를 끌끌 찼다. “···This way···”라며 골목으로 들어온 밝은 갈색 눈동자는 기도를 위해 이내 감겼다. 서로에게 참사의 배경과 역사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태국에서 왔다는 시목(33)씨는 “한국인 친구들과 이태원을 자주 찾는데 참사 이후로는 방문을 망설였다”면서 “그래도 마주하고 명복을 비니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랜만에 자주 찾던 가게를 방문해 추억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날 이태원 거리는 해가 지면 질수록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 22일 오후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테라스에서 식사하고 조명 아래서 사진찍는 시민들 이모저모 ⓒ투데이신문
지난 22일 오후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테라스에서 식사하고 조명 아래서 사진찍는 시민들 이모저모 ⓒ투데이신문

그 모든 일이 있었지만...“그래도 와주길”

실제로 이태원의 유동인구와 상권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태원1동의 지난달 유동인구(KT 기준)는 이태원 참사 전인 지난해 10월 4주차 대비 75.6% 수준으로 회복했다. 

같은 장소의 신한카드와 상품권을 합한 업소 매출액은 10월 4주차 대비 76.3%로 회복했다. 지난 2월 매출액이 같은 기간 대비 52.0%였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수치다.

용산구가 이태원 지역의 매출 회복과 상권 활성화를 위해 20%의 할인율을 내세워 올해 1월과 3월 두 차례 발행한 이태원상권회복상품권(이태원 상품권)은 총 326억원 어치가 판매되기도 했다. 사용기간은 발행일로부터 1년이다. 

반면 상인들은 “회복은 아직”이라고 입을 모았다. 참사 골목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 B씨는 “체감하기로는 참사 이전의 절반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태원 상품권을 지금도 많이 사용하냐고 질문하자, “쓸 사람들은 거의 다 썼는지 요새는 안 보인다”고 답했다.

구두 수선점을 운영하는 박모(57)씨는 “전보다 다니는 사람이 는 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우리라고 찾는 손님들에게 마냥 편히 웃을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를 모르고 방문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아픔을 나누기 위해서라도, 그래도 와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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