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에 책임 전가…필수의료 붕괴될 것”
당국에 ‘응급의료체계 개선 대책’ 마련 촉구
‘국가책임 강화’ 특례법 발의…의사단체 환영
환자단체 “법적 처벌받는 경우 드물어” 반발

서울 송파구 소재 모 병원의 응급의료센터가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송파구 소재 모 병원의 응급의료센터가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의사단체들이 반발에 나선 가운데,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논의에 속도가 붙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응급의학회·대한응급의학의사회·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전공의의 피의자 조사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더불어 정부와 국회가 응급의료체계 개선 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앞서 지난 3월 대구에서는 17세 환자가 4층 건물에서 떨어져 여러 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됐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구 북부경찰서는 지난달 22일 해당 환자가 최초 이송된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에게 응급의료법(정당한 사유 없는 수용거부) 위반 혐의를 적용한 뒤,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해당 사고에 대해 “환자가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때 외상에 따른 중증도가 높지 않은 상태였고 자살 시도가 의심됐다”며 “이에 폐쇄병동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갖춘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구체적인 대책으로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응급의료 인프라 구축과 충분한 보상 △경증환자 응급실 이용 자제 △의료 현장 의견 반영 등을 제시했다.

의사단체 ‘반발’

전공의가 경찰 수사를 받게 되자, 의사단체는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책임만 종용하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필수의료 붕괴가 가속화된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대구와 같은 응급의료 문제가 발생한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응급실 과밀화’ 때문”이라며 “현재 중증환자를 담당하고 치료해야 할 권역응급의료센터에는 응급실에 걸어 들어오는 경증환자로 넘쳐나고 있어, 정작 당장 응급의료나 처치가 필요한 중증환자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해당 전문과목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의 이송이 중요하다”며 “하지만 현재 이러한 적정 이송시스템이 원활하지 않고,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는 현실적 여건 상 응급환자에게 배후진료나 최종치료가 어려운 경우도 많아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게다가 생명이 위태로운 중증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응급의료를 제공하더라도 의료인이 민·형사상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조치는 의료진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응급의료를 위축시키게 되며 더 나아가 응급의료 등 필수의료의 붕괴속도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것이 의협의 입장이다.

이외에도 이들은 과중한 업무, 낮은 보상 등의 문제로 인해 많은 의료인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함에 따라 필수의료체계가 무너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이 근무하는 의료현장 분위기에 대해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도 “전공의들의 필수의료 전반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전공의에 대한 직접 조사와 처벌까지 이어진다면 필수의료 행위를 했을 때 보호받을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필수의료 특례법’ 제정될까

의료계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의사단체가 요구하는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이하 특례법) 제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지난달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필수의료 분야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이며, 필수의료를 제공받은 환자가 사망 및 상해 시 종사자에게 공소권을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는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고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진료과에 종사하는 의료인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이 법안의 목적이다.

이외에도 3년마다 필수 의료 실태조사 실시, 종사자 양성 및 전공의 수련비용 행정적·재정적 지원 등 개선안과 국가가 피해자 보상 비용을 지원해 의료진 부담을 줄이는 내용 등이 담겼다.

지난달 15일에는 정부와 의료계가 제11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어 의료사고 부담 경감을 위한 관련 법·제도·보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기도 했다.

특례법에 대해 의료계는 환영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상태다. 의료계는 필수 의료 분야에서 고위험·고난도 수술을 진행함에 있어 법적 부담이 없는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의협이 회원 11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국가가 필수의료를 지원하기 위해 가장 우선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의료수가 정상화’가 41.2%로 가장 많았으며, 뒤이어 ‘필수의료사고로 발생하는 민·형사적 처벌 부담 완화’가 28.8%를 차지했다.

“피해자·유족의 울분을 풀어줘야”…반대 의견도

하지만 환자단체 등은 특례법에 대해 이미 의료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워 실제로 의료인 및 의료기관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드문데, 책임 회피까지 하려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8개 단체가 소속된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연합)는 지난 2월 보건복지부가 필수의료 지원대책의 예시로 ‘의료인 의료사고 형사 처벌 면제 특례법’ 제정이 언급된 것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의료인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제정 논의를 추진하려는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은 의학적 전문성과 정보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료과실과 의료사고와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고, 소송을 위해서는 고액의 비용과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의료분쟁에 있어서 환자는 절대적 약자”라고 짚었다.

정부와 국회는 의료인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제정 논의가 아닌 의료인 의료사고 설명의무법,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법 등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의 울분을 풀어주고, 입증 부담을 완화하는 입법적 조치부터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환자연합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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