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공사, 고덕강일 3단지 사업에 혁신 정책 결집
3개 시공사가 ‘노무비 30%’ 3개 공정 직접시공
공공성과 사업성 균형 이룰 수 있어야 지속가능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지난 5월 31일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 3단지 시공 현장에서 고덕강일 공공주택지구 3단지 착공식을 열었다. [사진제공=서울주택도시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지난 5월 31일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 3단지 시공 현장에서 고덕강일 공공주택지구 3단지 착공식을 열었다. [사진제공=서울주택도시공사]

종합건설·전문건설 간 상호시장 진출 허용은 노사정이 합의한 건설산업 혁신방안의 핵심사안 중 하나다. 실제 시공능력을 갖춘 건설사가 상호시장에 진출해 업역 간의 갈등과 비효율을 해소하자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다. 로드맵대로라면 내년부터는 종합과 전문간 자유로운 상호시장 진출이 전면적으로 보장된다. 

2018년 노사정 합의의 주체들은 종합과 전문건설업 간 업역 규제가 폐지되면 생산성 향상, 공정경쟁 촉진, 상생협력 활성화 등 건설산업 선진화에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합의 5년이 지난 현재, 합의 당시 내걸었던 목표들은 여전히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5월에는 불공정 경쟁만 가중되고 직접시공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점을 들어 다시 종합과 전문 간 사업영역을 구분하자는 법 개정안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국토교통부는 업역 규제 폐지로 인한 상호시장 진출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는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중간점검은 불가피한 형국이다.

새로운 변화는 기존방식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정만 추구해서는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건설산업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국민들의 주문에 부응해야 한다. 건설산업에 종사하는 당사자 모두에게 두 발은 굳건하게 땅에 내딛고 시야는 멀리 바라보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건설현장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서울의 한 공공아파트 현장에서 혁신적인 시도들이 구현될 예정이다. 원청 직접시공, 적정임금제, 사전예약 이후 후분양, 토지임대부 건물분양 등이 도입된 ‘고덕강일 3단지’는 여러모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고덕강일 3단지는 우리나라 건설현장이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최근 건설업계에 불고 있는 ‘부실공사 태풍’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 영향권이 넓어지는 분위기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건설 전 과정에서 불법과 부정이 드러나며 국민적 불안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5년 전 건설업계 노사정이 함께 다짐한 건설산업 선진화 구호가 무색한 모습이다.

지금 드러난 문제들은 5년 전과 그 내용이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한 다단계하도급 구조, 수주 목적으로 난립한 수많은 페이퍼컴퍼니, 안전과 품질은 뒷전인 건설현장. 문제와 해답을 몰라서 고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40여년 동안 고착화된 건설산업 생산구조에 맞춰 수익구조가 만들어 졌기에 변화가 힘겹다.

이는 현재의 건설업계 관행에서 벗어나도 충분히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례가 나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공사)는 서울시 강동구 고덕강일3단지 시공현장이 그 답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SH공사, ‘백년주택 짓겠다’ 혁신 기염

SH공사는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등으로 드러난 ‘철근 누락’ 사태를 계기로 김헌동 사장 취임 이후 지속해온 각종 혁신 정책에 더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SH공사는 지난 8일 “건설산업 선진화와 토건 기득권 카르텔 타파, 부실공사 방지 등을 위해 실천해온 ‘분양원가 공개’ 등 각종 혁신 정책을 지속 추진한다”고 밝혔다.

SH공사 김헌동 사장은 이날 위례신도시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위례신도시 A1-5BL 분양원가와 준공내역서 등을 공개했다. SH공사의 분양원가 공개는 이번이 8번째다.

또, SH공사는 ‘서울형 건축비’ 등을 도입해 100년 이상 구조적으로 안전하고 오래가는 백년주택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형 건축비는 고품질 자재를 도입해 실질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분석한 건축비로 재건축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 절감이 기대되고 있다. 이어 감리자의 관리 감독 권한을 강화하는 등 기존 감리제도를 개선한 ‘서울형 감리’ 도입도 고려 중이다.

SH공사는 이외에도 자산공개, 사업결과 공개, 준공도면 공개, 후분양제, 직접시공제, 적정임금제 등의 혁신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후분양제는 건축공정률 90% 시점에서 입주자 모지공고를 시행하는 제도다. 직접시공제는 원도급자가 공사의 일정부분 이상을 직접 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리고 적정임금제는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적정한 대우를 받아 우수한 인력이 유입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이다.

SH공사가 추진하는 혁신 정책이 종합적으로 적용되는 건설현장이 강동구 고덕강일 공동주택지구 3단지 공사다. 고덕강일 3단지는 연면적 17만6900㎡에 지하 2층에서 지상 5층~29층 아파트 17개동 규모로 오는 2026년까지 준공해 2027년 3월 입주할 예정이다.

고덕강일 3단지는 전용면적 49㎡ 530세대, 59㎡ 715세대 등 분양주택 총 1305세대로 구성됐다. 지난 2월 진행한 특별공급 사전예약에서는 전체 400세대 모집에 1만3262명이 신청해 33.2대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청년특별공급은 75세대 모집에 8871명이 모여 118.3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전용면적 59㎡ 500세대는 지난 3월 사전예약에서 40: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전용면적 49㎡ 590세대는 지난 6월 사전예약에서 평균 경쟁률 18:1을 나타냈다. 비록 본청약은 아니지만 부동산경기 침체 시기에 괜찮은 성적을 거둔 셈이다.

고덕강일 3단지 위치도 및 조감도 [이미지제공=서울주택도시공사]
고덕강일 3단지 위치도 및 조감도 [이미지제공=서울주택도시공사]

SH공사는 흥행 원인으로 청년유형이 반영된 서울지역 첫 공급이었다는 점과 합리적인 분양가를 꼽았다. 고덕강일 3단지의 추정분양가는 3억5500만원 정도(추정 토지임대료 월 40만원)로 인근 전세보증금 수준이다.

이와 같이 추정분양가가 책정된 이유는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지상 건축물은 수분양자가 소유하는 방식인 토지임대부 분양을 했기 때문이다. SH공사는 토지임대부 건물분양주택 방식이 주택 구입 초기자금이 부족한 무주택 시민에게 ‘주거사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SH공사는 고덕강일 3단지를 ‘백년주택’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아파트로 지을 수 있도록 구조부에 일반 콘크리트보다 최대 25% 이상 강한 고강도 콘크리트를 적용할 계획이다. 또한, 우수한 단열·디자인의 시스템창호, 세련되고 안정감을 주는 롱브릭 벽돌 등을 외부 마감자재로 쓰고 내부 역시 민간 분양 아파트와 견줘 손색이 없는 친환경 고품질 자재를 반영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개방형 발코니, 옥상 정원 등 다양한 입면과 조경특화를 적용해 창의적인 디자인을 단지 곳곳에서 선보이겠다는 포부다. 지하에는 피트니스센터를 품은 선큰(지하부에 자연광을 유도하기 위해 조성하는 공간)을 조성해 입주민들의 편의를 높인다.

직접시공 지속하려면 발주자 역할 중요

고덕강일 3단지가 건설현장에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공동주택 건설공사에 직접시공제가 처음 도입된다는 점이다. SH공사는 원도급사에 철근콘크리트공사, 흙막이공사, 전열교환기설치공사 등 3개 공정에 대해 직접 시공을 의무화해 안전 및 품질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고덕강일 3단지는 분양원가 공개, 후분양제, 직접시공제, 적정임금제 등 SH공사가 추진하는 모든 혁신이 적용되는 공사다. 그만큼 기대도 모으고 있으나 건설업계 내부에서는 쉽지 않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직접시공제가 도입되면서 원도급사가 전체 직접노무비의 30% 이상을 담당하게 돼 시공사들의 부담이 만만찮은 수준이 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따르면 직접시공 의무대상 공사의 상한 공사비는 70억원이며 도급금액별 직접시공 의무비율은 30억원에서 70억원 미만이 10% 수준이다.

고덕강일 3단지 시공사는 화성산업, 서해종합건설, 홍문종합건설이다. 총 공사비 2611억원 중 화성산업 50%, 서해종합건설 40%, 홍문종합건설 10%로 지분이 구성됐다.

고덕강일 3단지 공사에서 가장 지분이 많은 화성산업의 수주액이 약 1306억원 규모다. 직접노무비의 30% 이상을 직접 시공한다면 아파트단지 공사에서 최대 규모의 원도급사 직접시공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화성산업은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시공능력평가 43위의 중견건설사다. 고덕강일 3단지를 수주하며 6년여 만에 서울지역에 진출했다. 화성산업 관계자는 “대구지역 부동산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수도권시장을 공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다”라며 “전국구로 도약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수도권시장에 집중하고 있다”고 고덕강일 3단지를 수주한 배경을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입찰 공고문에 의거해 직접시공계획서를 작성해 발주처인 SH공사와 협의 중에 있다”라며 “시공 계획에 따라 성실하게 공사에 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물가변동이 예상치를 벗어난다면 지방자치단체와의 계약과 관련한 법률에 근거해 계약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직접시공 비중이 대폭 확대되는 등 혁신 정책들이 적용되고 준공까지의 변수 등을 감안하면 공사비가 더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사비가 증액되면 추정분양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실제 분양이 이뤄져 사전예약한 예비입주자들이 난감해질 수 있다.

SH공사 관계자는 “실무협의회에서 공사품질과 안전상 필요하다고 판단된 공종들을 직접시공하기로 결정했다”라며 “직접시공 공종은 원도급사가 바로 노무비를 지급한다. 또, 적정임금제도 적용돼 다단계하도급 구조처럼 노무비가 단계별로 계속 깎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접시공제와 적정임금제가 적용되면서)안전사고 예방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현장 여건이 어렵다보니 넉넉한 공기를 산정하느라 고심했다”라며 “더 고품질로 가기 위한 공사비 증액도 있었다. (현재 책정된 공사비는)앞으로 3년 동안의 물가연동까지 고려해 추정한 수치”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사비는 최종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덕강일 3단지처럼 시범적인 사업을 통해 나타나는 문제를 찾아 이를 해소할 방법을 도출하는 것도 방법이다”라며 “직접시공과 적정임금제 등은 고용관계의 유동성과 관리감독의 문제 등 간접적인 부담이 클 것이라 발주자가 이를 적극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건설산업이 더 발전할수록 발주자의 역할과 책임도 그만큼 늘어나리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 김헌동 사장이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위례포레샤인 23단지 인근 근린공원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서울형 감리’ 도입 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주택도시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 김헌동 사장이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위례포레샤인 23단지 인근 근린공원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서울형 감리’ 도입 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주택도시공사]

김헌동 이후에도 혁신 정책 이어질까

한편, ‘반값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 건물분양주택은 이명박정부 시절 비슷한 제도가 도입됐으나 중단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SH공사 관계자는 “사업성 부분에서 토지를 팔 수 없다보니 재무적인 부담이 있다. 토지임대료는 조성원가와 감정가 사이에 책정되도록 하려 한다”라며 “수요자 측면에서는 개인거래가 가능해지면 원활한 공급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SH공사는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거래가 가능해져도 건물은 감가상각에 따라 가치가 내려갈 수밖에 없고 재건축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건물 소유권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더 논의가 있어야할 대목이다.

또 다른 SH공사 관계자는 “서민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양질의 주거를 제공하려는 혁신적인 사업인데 토지에서 사실상 수익을 낼 수 없다”라며 “재정적 부담을 고려해서 추진하고 있는데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지속적인 사업이 가능하다”고 짚었다. 공공성과 사업성의 균형을 맞출 수 없다면 추진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SH공사의 혁신 시도는 김헌동 사장의 개인 의지가 주된 동력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김 사장은 종합건설사에서 20년 남짓 근무한 경험을 갖췄으며 그 뒤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여러 혁신 사업도 건설사와 시민단체 활동을 거치며 가다듬은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김 사장은 2021년 11월 15일 SH공사 사장에 취임해 내년 11월에 3년 임기를 마치게 된다. 김 사장이 퇴임한 이후에도 SH공사의 혁신 정책이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고덕강일 3단지가 건설산업 선진화의 상징이 될지 아니면 용두사미로 전락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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