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노사정 모여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합의
종합·전문 간 상호시장 수주 실적 격차 문제 드러나
전면 시행 앞두고 의견 분분…연구용역 결과에 눈길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2014년 4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건설업 업역구분 규제 철폐와 직접시공제 전면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2014년 4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건설업 업역구분 규제 철폐와 직접시공제 전면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종합건설·전문건설 간 상호시장 진출 허용은 노사정이 합의한 건설산업 혁신방안의 핵심사안 중 하나다. 실제 시공능력을 갖춘 건설사가 상호시장에 진출해 업역 간의 갈등과 비효율을 해소하자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다. 로드맵대로라면 내년부터는 종합과 전문간 자유로운 상호시장 진출이 전면적으로 보장된다. 

2018년 노사정 합의의 주체들은 종합과 전문건설업 간 업역 규제가 폐지되면 생산성 향상, 공정경쟁 촉진, 상생협력 활성화 등 건설산업 선진화에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합의 5년이 지난 현재, 합의 당시 내걸었던 목표들은 여전히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5월에는 불공정 경쟁만 가중되고 직접시공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점을 들어 다시 종합과 전문 간 사업영역을 구분하자는 법 개정안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국토교통부는 업역 규제 폐지로 인한 상호시장 진출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는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중간점검은 불가피한 형국이다.

새로운 변화는 기존방식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정만 추구해서는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건설산업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국민들의 주문에 부응해야 한다. 건설산업에 종사하는 당사자 모두에게 두 발은 굳건하게 땅에 내딛고 시야는 멀리 바라보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우리나라 건설 생산구조는 1976년 이래, 40여년간 복합공사(원도급)는 종합건설업, 단일공사(하도급)는 전문건설업만 도급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업역을 규제했다. 이같은 칸막이 업역규제는 지난 2018년 노사정이 극적으로 합의에 이르며 단계적으로 폐지가 진행되고 있다.

당시 국토부와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한국노총 건설산업노동조합, 민주노총 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업역 규제 폐지에 합의하게 된 배경은 선진국 대비 노동 생산성이 50% 수준에 그쳤던 국내 건설산업의 낡은 생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업역규제로 인한 페이퍼컴퍼니 증가, 수직적 원·하도급 관계 고착화, 기업성장 저해 등의 문제에 다들 공감하면서 근본적인 산업구조 혁신을 논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업역규제는 종합건설사는 하도급 관리나 입찰 영업에 치중하고 실제 시공은 하도급업체에 의존하게 만들어 페이퍼컴퍼니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문건설사는 사업물량 대부분을 종합업체의 하도급에 의존하게 돼 저가하도급 등 불공정 관행이 확산되는 경향도 보였다. 

지난 2018년 11월 7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노사정 선언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18년 11월 7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노사정 선언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에 건설업계 노사정 주체들은 같은해 11월 7일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선언식을 갖고 건설산업 생산구조혁신 로드맵에 합의했다. 정부는 1990년대 말부터 제기된 개선 논의가 지지부진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자 이해관계자의 합의를 이끄는데 집중했다.

노사정이 합의한 로드맵은 크게 3가지 방향에서 개선이 이뤄지도록 구성됐다. 우선 업역규제는 폐지돼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가 상호 시장에서 자유롭게 진행하도록 했다. 또, 업종은 통합하고 실적은 세분화해 관리하며 자본금 요건은 낮추는 대신 기술능력 요건은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업역규제 폐지는 공공공사는 2021년부터, 민간공사는 올해부터 시행됐으며 상대 공사를 도급할 경우 직접시공을 원칙으로 정했다. 다만, 시공현실을 감안해 제한적인 예외를 두기로 했다.

업역규제 폐지로 해당 공사의 전문업종을 모두 등록한 전문업체나 전문 간 컨소시엄이 종합공사를 수주할 수 있게 됐다. 이 중에서 전문 간 컨소시엄은 단일업체의 종합공사 경험 축적을 유도하고자 내년부터 허용된다.

종합업체는 세부 전문공사 원·하도급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되 영세 전문업체 보호를 위해 총 공사금액 10억원 미만 공사의 종합간 하도급과 물량 하도급은 금지했다. 아울러 전문공사 원도급만 수주하는 영세업체 보호를 위해 2억원 미만 전문공사의 종합 수주는 내년부터 허용하기로 했다.

업종체계는 업역규제 폐지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대업종 중심으로 업종체계 전반을 개편하면서 시공실적과 역량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올해부터 28개 전문업종이 14개 대업종으로 통합됐으며 주력분야 공시제가 도입돼 종합은 구조물별, 전문은 세부공종별로 공사실적, 전문인력, 처분이력 등을 검증 후 공시하게 됐다.

등록기준도 조정돼 자본금 기준은 70%에서 50%로 경감하되 부실업체 남설과 임금체불을 막고자 현금 예치의무가 있는 보증가능금액은 자본금의 20~50% 수준에서 최대 50~80% 수준으로 상향했다. 기술자 기준은 경력요건을 추가했으며 기능인등급제 도입에 따라 보다 기준이 강화될 여지가 남게 됐다.

합의도 어려웠지만 제도 시행도 만만찮네

업역규제 폐지는 2018년 합의 이후,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우선 2021년 공공공사부터 시행됐다. 단, 원도급 10억원 미만 공사는 종합건설업의 하도급을 금지했으며 공사예정금액 기준 2억원 미만 전문공사는 종합건설업이 진출할 수 없도록 했다. 이후 종합건설업 진출 제한범위는 공사예정금액 2억원 이상 3억5000만원 미만인 전문공사까지 확대됐다. 

영세한 전문건설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이같은 단서조항은 올해까지만 유효하며 내년부터는 상호진출이 전면 허용된다. 또, 내년부터는 전문건설사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해 종합공사 도급이 가능하게 된다.

전문건설사 간 컨소시엄에 대해서는 건설업계 선진화의 일환으로 기대를 거는 시각도 있으나 동시에 종합에서 수행해온 기획·관리·조정 업무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의문을 표하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단일업종으로 나가는 중간과정에서 14개로 통합된 대업종의 효과도 살펴봐야 한다. 문턱이 낮아진만큼 무자격 시공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종합-전문업계 간 가장 ‘뜨거운 감자’는 상호시장 진출로 인한 수주 실적 격차다. 상호시장 허용공사 낙찰현황을 분석해보니 종합건설과 전문건설 사이의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5월까지 종합건설과 전문건설에 교차발주를 허용한 총 8612건(종합 3658건, 전문 4954건)의 발주건수 중 종합업종의 전문수주는 1348건(27.2%)로 타났다. 반면, 전문업종의 종합수주는 222건(6.1%)에 그쳤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2021년 상호시장 진출 허용공사 수주결과를 분석한 결과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상호진출이 허용된 공공공사 중 1만8663건(종합 8660건, 전문 10003건)이 낙찰자 선정을 완료했다. 이 중에서 전문업종의 종합수주는 646건(7.5%)에 불과했으나 종합업종의 전문수주는 3031건(30.8%)에 달했다.

당초 공사예정금액 2억원 미만 공사는 종합건설사가 참여하지 못하는데 이들 수의계약공사는 관급지 혹은 관급액 등이 추가되며 예정금액이 올라 결국 종합건설사가 수주한다는 것이다. 같은기간 수의계약 전문공사의 종합수주 건수는 811건으로 전체 종합업종의 전문수주건수 4건 중 1건에 해당됐다.

건설정책연구원은 “전문공사의 종합수주 비율이 낮은 지역 또는 종합공사의 전문수주 비율이 높은 지역에 대한 발주특성을 분석해 전문수주가 낮거나 종합수주가 높은지역에 대한 대응전략이 마련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추정가격이 2억원 미만, 예상금액이 2억원 이상인 수의계약 전문공사의 상호시장 개방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내다봤다.

대한전문건설협회와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가 지난 2022년 4월 12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전문건설 생존권 방치 국토부 규탄대회를 열고 업역개방 폐지와 생산체계 원상복원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대한전문건설협회와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가 지난 2022년 4월 12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전문건설 생존권 방치 국토부 규탄대회를 열고 업역개방 폐지와 생산체계 원상복원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급기야 지난해에는 전문건설업계가 업역개방 폐지를 요구하는 장외집회에 나서며 반발하고 나섰다. 일방적으로 전문건설사에게만 불리한 제도개선으로 줄도산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같은 불균형은 자본금, 기술자, 경영상태, 관리 역량 등에서 종합건설사가 전문건설사보다 비교적 우위에 있기에 나온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제도적으로 입찰 기회를 보장했으면 그 다음 경쟁력 확보는 시장과 기업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업역규제 폐지와 맞물려 추진 중인 공공계약제도 혁신도 쟁점 중 하나다. 공공공사에서 활용하는 공동도급 방식인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는 전문건설사가 ‘부계약자’로 참여해 불공정하도급으로부터 전문건설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상호시장 개방에 따른 산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재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종합·전문건설 간 합의점 찾아야”

업역규제가 폐지됐다고 불공정 하도급이 당장 사라지진 않는다. 국토부는 지난 1월 지난해 하반기 상대시장 진출 건설공사에 대한 불법 하도급 실태점검을 실시해 173건을 적발하기도 했다. 

상대시장에 진출한 건설사업자는 발주자의 서면 승낙을 받고 도급금액의 20% 내에서만 하도급을 할 수 있다. 또, 도급금액 10억원 미만의 공사를 도급받은 건설사는 전문건설사에만 하도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점검에서 이를 위반한 사례가 무더기로 드러난 것이다. 꾸준한 점검과 단속 역시 숙제인 셈이다.

국토부는 현재 업역규제 폐지를 중심으로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이 건설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연구용역은 국토연구원이 맡아 지난 3월부터 내년 1월까지 진행된다.

이에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내년 전면적인 업역규제 폐지 시행 전에 개선점을 논의하려면 연구용역 결과가 서둘러 나와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만큼 앞으로의 논의가 쉽지않을 전망이다.

국토부 건설정책과 관계자는 “이번 연구는 상호시장 진출 현황을 분석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사항이 있는지를 찾고자 진행하고 있다”라며 “내년 1월 전에라도 필요한 결과가 나오면 제도개선 논의를 진행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종합·전문 양 업계 간 이견이 있어 업계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부 공정건설지원팀 관계자는 “(업역규제 폐지는)전면시행 시기가 내년으로 돼있다. 법에 따라서 진행될 것이다”라면서도 “필요하다면 법 개정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검토를 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 관계자는 “다양한 의견들에 대해 확인하고 객관적으로 보려면 현재 건설정책과에서 하는 연구용역 결과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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