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전세사기특별법 시행 100일 기자회견
[일문일답] 신탁주택 전세사기 피해자 정태운씨

피해자 인정 기준 완화·실효적 대책 마련 등 촉구
당사자도 나서…“오피스텔 등 사각지대 해소해야”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보증금 先구제 등 제안도

ⓒ투데이신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세사기특별법 시행 100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된 지 100일을 맞은 가운데, 피해자들은 구제 문턱이 높아 아직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법 개정을 통한 추가 지원을 촉구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8일 오전 서울 중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앞서 국회는 지난 5월 25일 최우선변제금 최장 10년간 무이자 대출, 피해액 인정 보증금 범위 확대, 피해자 대상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된 전세사기 특별법을 의결한 바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법안에 ‘선(先) 구제 후(後) 회수’, 보증금 채권 매입 등이 담기지 않았다며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날 대책위는 ‘특별하지 않은 특별법, 실효적 대책 마련하라’, ‘피해자 적용범위 확대하라’, ‘피해자 중심으로 개정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정부에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을 요구했다.

먼저 발언에 나선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이철빈 위원장은 “제정 당시에도 피해자의 현실과 동떨어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 우려는 현실이 됐다”며 “피해자들은 피해자로 인정받는 것조차 어렵고, 인정을 받더라도 실질적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게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요건은 여전히 문턱이 높은데, 3호 다수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와 4호 임대인의 기망 의도를 입증하는 것은 피해자 개인이 입증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또한 아무런 법적 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사망한 전세 사기꾼 김대성의 피해자들은 1년째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국토교통부, 허그(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 기관에서 나서 보험 미가입자 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특별법이 현정에서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면밀히 점검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세사기특별법 시행 100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8일 오전 서울 중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진행된 전세사기특별법 시행 100일 기자회견에서 실제 전세사기 피해자 박씨와 권씨가 참석해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실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강서구 화곡동 전세사기 피해자라고 밝힌 박모씨는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기 힘든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어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박씨는 “피해자로 인정받았음에도 디딤돌 대출, 특례보금자리론도 받을 수 없는데 이는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전세사기 피해자 중 가장 많은 집 유형 중 하나가 바로 오피스텔이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선구제 후회수는 안된다고 하며 전세계약은 개인 간의 거래고, 모든 범죄 피해자를 구제할 수 없다고 한다”며 “떼인 보증금을 다 돌려달라고 하는 것도, 대출금을 탕감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사기당한 집 떠안고 갈 테니 감당할 수 있게,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자로 인정받아도 사각지대에 있는 불법건축물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권모씨도 발언에 나섰다.

권씨는 “지난 2020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지금의 집을 계약했는데, 계약 만료 3개월 전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제 갓 30살이 넘은 젊다면 젊은 나이에 2억7000원이 넘는 돈은 결코 적지 않다”고 했다.

이어 “회사 생활에 지장도 크고, 삶에 대한 희망과 앞으로 미래에 대한 의욕도 없어 최근 1년 동안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며 “혼자만의 싸움을 했지만 그럴수록 법은 임대인이 말한 상황대로만 이뤄지고 있고, 집주인은 지난해부터 잠적해 연락도 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정부에 구제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들을 위한 금융대출지원, 주거지로서의 용도 변경, 강제이행금 문제 해결 등에 나서줄 것을 부탁했다.

8일 오전 서울 중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진행된 전세사기특별법 시행 100일 기자회견에서 실제 전세사기 피해자인 정태운씨가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자신을 신탁사기 피해자라고 소개한 정태운씨는 허술한 신탁 제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신탁이란 믿고 맡기는 제도인데도 이를 악용해 전세사기를 치는 임대인들이 있다”며 “신탁제도를 알기 위해서는 등기부상 신탁 원부라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데, 이는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도 없고 등기소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탁원부에 신탁회사의 동의를 받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도록 기재돼 있는데, 임대인이 이 같은 사실을 감추고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체결한다”며 “그럴 경우 저와 같은 세입자들은 꼼짝없이 어떠한 법률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대책위는 정부에 △까다로운 전세사기 피해 구제 요건 완화 △피해자 등 요건에 깡통 전세·신탁 사기 피해자 포함 △보증금 선구제 프로그램 제공 △경매·공매 등 유예 정지 지원 범위 확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최우선 변제금도 못 받은 피해자 대상 주거비 지원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회의록 작성과 공개에 대한 근거 규정 마련 등을 요청했다.

대구 전세사기(신탁) 피해자 정태운씨와의 일문일답

Q. 자신이 전세 사기 피해자라는 사실은 언제 깨달았나.

올해 3월 말에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통해서 알게 됐다. 하지만 캠코도 신탁 사기인지 모르고 있다가, 일이 다 벌어진 이후에나 통보한 것이다.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기관임에도 신탁에 대해 전혀 모를뿐더러 대출이 있는지, 채권 최고액이 얼마나 잡혀있는지 등 파악하지도 못한 채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공인중개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Q. 전세사기 특별법이 어떻게 개정되길 바라나.

신탁도 실제 피해자로 인정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회가 피해자 범위를 넓혀야 한다. 저와 같은 이들이 피해자 등에 속하게 된 이유는 대항력이 없기 때문인데, 그 부분만이라도 해결되면 우선매수권이 부여가 되고 보증금이 인정된다. 

Q. 오피스텔이나 불법 건축물 피해자들도 신탁 사기처럼 인정이 안되고 있다. 

우선 제 유형뿐만이 아니라 피해자를 광범위하게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 이와 함께 대출 절차 자체가 너무 어려운데 이도 보완돼야 한다. 구제를 위해 관련 기관에 문의를 하거나 찾아갔을 때 안 된다고 잘라내는 경우도 빈번하고, 관련 소득 요건 등 조건도 너무 까다롭다. 오피스텔은 공부상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된다 하고, 불법 건축물은 또 불법 건축물이라서 안 된다고 한다. 다들 너무 답답해 한다. 이들은 피해자 아닌가. 또, 긴급 주거 지원도 해준다고 하는데 그 규모나 시설도 좋지 않다. 

Q.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등 관련 정부 및 기관과 소통한 적 있나. 

아예 없었다. 다만 처음 캠코 측에서 집집마다 방문해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지만, ‘수렴’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됐다. 서로 힘을 모아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Q.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세사기 사태가 사회에서 잊힐 우려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나.

전세 사기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퍼져있는 범죄임을 알아줬으면 한다. 우리 피해자들은 계속 연대하고 함께 위로하며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더 이상은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피해자가 없도록 차후에도 전세 사기를 당하거나 임대인이 보증금을 안 돌려주는 일이 생긴다면, 그 당사자는 언제든 우리를 찾아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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