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도적 농약 혼입에 인증 취소되는 농가 속출
인증제 시행 30년 됐는데 친환경 비중 고작 ‘5%’
“농약 검출에 25년 친환경농사 다 무너지는 느낌”
생산물에 대한 공정한 인증 체계도 ‘농민의 권리’

친환경인증제도를혁신하는사람들 김하동 대표가 경북 상주시에 위치한 자신의 유기농 포도밭에서 친환경농산물인증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친환경인증제도를혁신하는사람들 김하동 대표가 경북 상주시에 위치한 자신의 유기농 포도밭에서 친환경농산물인증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구는 만성화되는 기후변화와 식량위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사회분야별 논의는 무르익지 않고 있다. 여러 분야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농업이 그러하다.

유엔은 지난 2018년 12월 17일 총회에서 농민권리선언을 채택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채택한 지 5년여가 지났지만 그 내용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월 19일 이른바 ‘농민기본법’이라 불리는 농민·농업·농촌정책 기본법이 국민동의청원을 거쳐 국회에 회부됐으나 21대 국회 내 통과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도시에서 살다 보면 농업에 대해서는 시장 장바구니 물가 걱정할 때나 각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시 우리나라가 양보하는 항목 정도로 이해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대중들의 농민권리와 농민기본법에 대한 관심도 역시 낮은 모습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농민권리선언에 담긴 오늘날 농촌의 현실을 밝히고 농민들 스스로는 자신의 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장취재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한번 훼손된 환경을 다시 되살리기 어렵듯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문제를 직시할 때가 됐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친환경’은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하는 개념 중 하나가 됐다.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가 심각해질수록 그 중요성도 더해지고 있다. 세계가 ‘보다 친환경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농업 역시 어떻게 하면 농약과 비료 등 화학자재 사용을 줄이면서 친환경적인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여러 방안이 시도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즈음부터 ‘오리농법’, ‘왕우렁이농법’ 등이 소개돼 이를 실천하는 농가들이 확대됐다. 

정부는 지난 1993년 농산물품질인증제 중 하나로 유기 및 무농약재배 농산물에 대한 품질인증제를 도입했다. 1997년에는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됐으며 2001년에는 기존 환경농산물표시신고제 대신 친환경농산물 의무 인증제를 도입해 오늘날의 친환경농축산물인증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친환경농축산물인증은 전환기 인증과 저농약 인증이 폐지되고 농산물에 대한 유기인증(organic)과 무농약인증(non pesticide), 그리고 축산물에 대한 유기인증과 무항생제인증(non antibiotic)이 운영되고 있다. 유기농인증은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3년 이상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연비료만 사용해야 받을 수 있다. 무농약인증은 합성농약은 일체 사용할 수 없으나 화학비료는 권장량의 3분의 1 수준으로 사용해야 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올해로 친환경농축산물인증을 30년째 운영하고 있다.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친환경농어업법) 제3조를 보면 ‘국가는 친환경농업에 관한 기본계획과 정책을 세우고 친환경농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종합적인 수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5년마다 친환경농업 육성계획을 세우고 시‧도지사는 친환경농업 실천계획을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친환경인증 시행 30년이 된 오늘날 친환경농업은 되레 뒤로 역주행하는 모습이다. 연도별 친환경인증 현황을 보면 유기 및 무농약인증을 받은 농가수는 2020년 5만9249호(유기농 2만3750호)를 정점으로 2021년 5만5354호(유기농 2만5362호), 지난해에는 5만722호(유기농 2만4906호)로 감소하고 있다. 인증면적도 2020년 8만1827㏊(유기농 3만8540㏊)에서 2021년 7만5435㏊(유기농 4만663㏊), 2022년은 7만127㏊(유기농 3만9634㏊)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전체 농가가 102만2797호인 점을 감안하면 친환경 농가 비율은 전체농가 대비 고작 4.96%에 불과하다. 경지면적으로 보면 전체 경지면적(2022년 152만8237㏊) 대비 친환경 인증면적 비율은 4.59% 수준이다. 국가적으로 친환경농업을 진흥한 결과가 맞는지 의문시되는 지표다.

농약 성분 검출만 따지는 인증제에 친환경농민 ‘울상’

친환경농업이 뒷걸음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사시사철이 뚜렷하다 보니 병충해에 취약한 불리함, 그리고 농산물 유통 체계상 친환경농산물의 판로가 좁다는 점 등도 문제다. 이런 문제점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친환경인증제의 모순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대로 친환경인증은 농사를 짓는 과정과 방식을 통해 발급된다.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유기인증을, 합성농약은 안 쓰고 화학비료는 권장량의 3분의 1만 사용하면 무농약인증을 받는다. 

그런데 인증심사는 과정이 아닌 인증을 신청한 농가의 농산물 및 토양 등에 대한 검사에서 나온 농약검출량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 다른 곳에서 살포된 농약이 바람을 타고 유입되면 꼼짝없이 인증취소되기 십상이다.

경북 상주시의 한 유기농 포도밭 전경. ⓒ투데이신문
경북 상주시의 한 유기농 포도밭 전경. ⓒ투데이신문

이같은 인증제의 문제로 억울하게 친환경농산물인증을 취소당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지난해에는 친환경농민들이 모여 ‘친환경인증제도를혁신하는사람들’(이하 인혁사)이란 단체를 만들었다. 농민 자신이 뿌리지 않은 농약으로 인증이 취소될 수 있는 위험을 해소하지 않고는 친환경농사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인혁사 김하동 대표도 잔류농약이 검출돼 친환경인증이 취소될 뻔했으나 이의제기를 통해 인증을 유지한 경험이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유기농 토마토포도 농사를 짓는 김 대표는 지난해 6월 유기농인증 갱신을 위해 채취한 토마토 시료에서 잔류농약 성분이 0.018㎎/㎏이 검출됐다는 결과를 받았다. 그러나 인증기관이 시료 채취시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인정돼 재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재검 결과 농약성분이 나오지 않아 인증 취소를 면하게 됐다.

친환경인증은 농민이 신청을 하면 인증기관에서 서류심사와 현장심사를 거쳐 교부된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으로부터 인증기관으로 지정 받으면 인증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김 대표는 “토마토 하우스는 비닐로 둘러 쌓여있고 토양도 개토하고 물은 지하수만 쓴다. 주변도 유기농논과 유기농포도를 재배해 오염원이 없는데도 농약성분이 미량이나마 검출됐다”라며 “원래 시료를 채취할 때에는 비닐장갑을 착용해야 하고 취채한 시료를 밀폐해서 농가가 확인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 이를 문제제기해서 재검사가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심사는 농민이 충분히 소명하지 못하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개인이 해당 농약성분이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김 대표는 “상주지역으로 귀농한 뒤 첫해만 농약을 치고 그 뒤로는 농약에 손 댄 적도 없다”면서 “친환경약재도 가능한 치지 않고 25년 동안 농사지었는데 갑작스레 인증이 취소되면 친환경농산물은 팔 곳도 찾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친환경농산물은 일반농산물과 비교해 크기도 작고 모양도 일정치 않아 인증이 취소되면 판로를 찾기도 어렵기에 1년 농사가 헛될 수 있다. 

인증취소는 지역에서 해당 농민의 신망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 대표는 “25년간 농사지으면서 내가 갖고 있던 철학과 관계가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라며 “직거래 루트나 소비자와의 신뢰관계도 깨질 수 있기에 이 문제는 친환경농민의 인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유기농은 해당하는 농민이 농약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뜻인데 농약성분이 검출되면 무조건 인증을 취소한다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라며 “비산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최근 드론방제도 늘고 있고 야산 인근은 소나무제선충 방제를 위해 항공방제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래서야 누가 친환경농사를 하고 싶겠나. 판로도 가격도 좋지 않으니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아쉬워 했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김광천 사무총장은 “친환경농업을 확대하고자 소비자들에게 의견을 들어보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하고 품목이 다양했으면 한다고 하더라”라며 “소비자들의 친환경농산물 선호는 높아지고 있지만 현실적 여건 때문에 되레 친환경인증농가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판로나 가격도 문제지만 농약 비산에 따른 오염으로 인증이 취소되는 문제도 친환경농민의 묵은 숙제라고 강조했다.

김 사무총장은 “인증기관마다 업무기준이 다른 점이 있었는데 최근 표준업무 매뉴얼을 보급했다. 예전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는 연 1회 일률적으로 농약검사를 하는데 행정력과 비용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우수농가는 우대해서 분야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라며 “재심사는 제3의 인증기관이 심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개선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지난 8월 30일 열린 2023 대한민국 유기농 스타상품 경진대회에 출품된 과일과 채소류들이 심사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지난 8월 30일 열린 2023 대한민국 유기농 스타상품 경진대회에 출품된 과일과 채소류들이 심사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내년도 친환경농업 예산, 올해 대비 14% 감소 ‘역주행’

정부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안을 내놓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월 비의도적 농약 오염에 대한 인증 재심사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개정된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은 ▲농가가 비의도적 농약 오염을 증명하는 자료를 제출하거나 ▲인증기관이 심사에 대한 오류를 인정 또는 ▲농관원이 심사에 대한 오류를 확인한 경우에는 반드시 농가의 재심사 요구를 인증기관이 수용하도록 했다.

또, 농식품부는 지난달 친환경농산물인증의 농약 불검출 기준을 일반농산물 MRL(잔류허용기준) 대비 20분의 1 이하로 개선하는 내용의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다. 단, 잔류허용기준을 정하지 않은 품목은 0.01㎎/㎏ 이하가 기준이다. 

정부안에 대해 친환경농업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정부안에 따르면 농약 비산 문제는 일정 수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과정 중심의 인증제로 가기에는 미진한 점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내년도 농식품부 예산안에서 친환경농업 관련 예산이 올해보다 14%가량 삭감되면서 친환경농업 증진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내년도 친환경농업 예산은 705억7700만원으로 2023년도 예산 821억200만원보다 115억2500만원이나 줄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친환경농업과 관계자는 “연내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인증제를 개선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내년 예산은 시설건설사업이 올해 완공돼 예산이 빠지고 그 외 여러 사업이 통합되면서 감소한 걸로 보인다”라며 “내년에라도 예산이 늘어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충북 제천시 의림지뜰 육모장 일원에서 지난 6월 29일 어린이들이 친환경 벼 재배를 위해 우렁이 등을 방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충북 제천시 의림지뜰 육모장 일원에서 지난 6월 29일 어린이들이 친환경 벼 재배를 위해 우렁이 등을 방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친환경농업 확대되려면 ‘과정 중심’ 인증제 필요

친환경농업의 비중은 전체 농업에서 채 5%에도 미치지 못한다.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한 농업으로 생산한 농산물이 95%에 달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국민 전체의 식생활 건강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다시 말해 친환경농업과 소비자 건강의 상관관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이른바 ‘관행농사’로 생산한 농산물도 충분히 소비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친환경농업을 확대해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친환경농어업법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법의 제2조는 ‘친환경농업이란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에서의 생물적 순환과 활동을 촉진하며, 농어업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사용을 최소화한 건강한 환경에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많은 농민들이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환경보호라는 가치가 빛을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려면 농민들도 적극적인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인증제가 되레 발목을 잡는다면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친환경농업계는 ‘실험실에서의 검사 결과 중심’ 인증이 아닌 ‘환경가치 중심’ 인증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농민이 가져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유엔농민권리선언 제11조는 생산, 판매, 유통에 관한 정보에 대한 권리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해당조항은 “농민은 상품의 생산, 가공, 판매 그리고 유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에 대한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찾고, 받고, 발전시키고, 알려주는 권리를 가진다”라며 “국가는 농민이 자신들의 생산물 품질에 대한 공정하고 공평하며 적절한 평가 및 인증 체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체계를 만드는 과정에 참가를 촉진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이 더 확대되려면 지금보다 더욱 과정 중심의 인증 체계 수립이 필수라 하겠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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