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태영건설이 우여곡절 끝에 워크아웃 수순으로 가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태영건설 협력업체들에겐 시한폭탄 같은 사안이 남아있다.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이하 외담대) 문제다.

태영건설은 지난해 12월 28일 금융채권자협의회에 의한 공동관리절차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9일 만기가 도래한 1485억원 규모의 채권 중 외담대 451억원을 상환하지 않았다. 외담대는 상거래채권이 아닌 금융채권이란 이유에서다.

금융감독원 이복현 원장의 표현을 따르면 워크아웃은 채권단이 금융채권 상환을 유예해 유동성에 여유를 주고 채무자는 상거래채무 등 비금융채무 상환에 필요한 운영자금을 부담하는 구조다. 상거래는 정상적으로 운영해 연관된 피해가 확산되지 않게끔 하려는 의도다.

그렇다면 태영건설이 갚지 않은 외담대 451억원은 어떤 성격의 채권일까. 태영건설은 상당수의 협력업체에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대금을 치렀다. 그런데 어음 만기까지 기다릴 여건이 안 되는 협력업체는 손해를 무릅쓰고 금융권을 찾아 어음 할인을 한다. 은행에 어음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이다.

이를 금융채권이라며 갚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협력업체에게 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에 이복현 원장이 4일 외담대는 금융채권이라는 태영건설의 주장에 대해 “신용공여라는 측면에서 금융채권은 맞지만 외담대가 운영이 안 되면 원활한 사업 진행이 어렵다. 핑계에 불과하다”라고 일축한 적도 있다.

태영건설은 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기존 자구안을 이행하는 한편, 채권단이 요구한 자구책도 적극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태영그룹 윤세영 회장은 “채권단의 지원만 바라지 않고 자구노력을 더욱 충실히 수행하겠다”라며 “그래도 부족하면 TY홀딩스와 SBS 주식을 담보로 해서 태영건설을 살리겠다”고 말했다. 

이로서 채권단이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하지만 워크아웃 여부를 결정할 오는 11일 채권단협의회가 열리기 전에 외담대 문제 역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태영건설 공사현장에서 노동자 임금 체불 문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태영건설 최금락 부회장은 같은날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확정되는 4월까지는 유동성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면 TY홀딩스와 SBS 지분을 담보로 내놓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담대 결제 과정에서 노임 지급 문제가 발생했는데 상거래채권은 반드시 변제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라며 “노임은 외주비와 노무비로 나뉘는데 노무비는 최우선으로 해결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태영건설 관계자는 본보와 통화에서 “협력업체에 대부분 어음으로 대금을 지급하고 있다. 본래 계약 사항이 외담대로 돼 있다”라며 “관급공사 등 우수협력 업체 포상 차원에서는 일부 현금으로 지급했으나 대부분 어음으로 지급한다”고 해명했다. 또, 외담대의 성격에 대해서는 “협력사들이 어음 할인을 받으면 금융채권이 된다. 워크아웃으로 상환이 유예되면 지급할래도 할 수가 없게 된다”고 부연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태영건설 협력업체는 581개사이며 1096건의 하도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중 96%(1057건)은 건설공제조합의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가입 또는 발주자 직불합의가 돼 협력업체가 대금을 못 받으면 보증기관 등을 통해 대신 지급받을 수 있다. 또, 태영건설에 대한 매출액 의존도가 30% 이상인 협력업체는 금융기관 채무 일정기간(1년) 상환유예 또는 금리감면 등이 이뤄지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에 체불 문제가 불거진 임금은 지난해 11월분이다. 과연 이들 협력업체에게 앞으로 노무비를 계속 지급할 여력이 있는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부분 영세한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노동자 임금체불 문제는 이제 시작된 단계일 수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김영현 건설정책본부장은 “태영건설 협력업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당장 가시적으로 데이터 수집인 안 됐다”면서 “협력업체들이 태영건설과 거래한 업체로 노출되면 수주나 거래관계에서 어려운 상황이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외담대 문제는 금융사에서 확실히 채권이 회수 안되면 원도급사가 아닌 협력사에 상환 요구를 해 합력사가 대금도 못 받은데다 상환 부담까지 지는 이중 부담을 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금융사가 협력업체에 외담대 상환을 요구하지 못하게 관리하고 기본적으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금융당국이 보다 세밀하게 협력업체 하도급대금 보장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외담대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면 협력업체의 부실화가 확산되고 결국 노동자 임금 체불로 이어져 억울한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정책적 보완에 나서는 한편, 태영건설과 채권단이 워크아웃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명확한 해결책이 나오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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