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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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정부의 농축산물 수급대책의 흐름을 보면 ‘알묘조장’(揠苗助長)이란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곡식의 싹을 뽑아 올려 성장을 돕는다’는 의미로 당장의 결과에 매몰돼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일컫는다.

매년 설과 추석은 한우농가에게 대목이나 다름없는 시기다. 그런데 올해 설 명절 성수기 때는 한우 도매가격이 하락하며 이상조짐을 보였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2주차(8일~14일) 한우 도매가격은 ㎏당 1만6689원(거세우 1등급)이었으며 3주차는 ㎏당 1만4715원, 4주차는 ㎏당 1만4519원으로 추락했다.

이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하 농경연)이 지난해 12월 예측한 성수기 가격을 크게 빗나간 수치다. 농경연은 설 성수기(1월 12일~2월 8일) 수급 전망에서 한우 도매가격(거세우)이 ㎏당 1만7000원~1만8000원을 형성할거라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설 성수기와 비교해 3~8% 오른 가격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설 명절 맞이 한우 할인행사만 바라보는 모습이다. 29개 유통업체 전국 1885개 매장은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9일까지 한우를 최대 30~50% 할인해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농식품부 한훈 차관은 지난 5일 대구시 소재 한 축산물매장을 방문해 “한우 도매가격이 지난달 중순 이후 크게 하락하며 한우농가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라며 “정부의 한우 수급안정대책과 더불어 민간 유통채널의 실효적 가격인하 조치가 지속적으로 추진된다면 한우 소비가 확대돼 농가의 어려움은 일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우의 평균 사육기간은 30개월에 달한다. 1년에 2번 오는 성수기 때 출하한 소마저 기대에 못미치는 가격을 받았으니 농가들이 받은 타격은 상당할 것이다. 문제는 한우농가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농경연은 올해 한우 도매가격이 출하 물량 증가로 지난해 대비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 지난해 한우가격이라도 좋아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지난해 1~10월 한우 도매가격은 ㎏당 1만8709원인데 이는 2022년 동기간 대비 13.3% 하락한 수치다.

한우 도매가격 하락은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감소가 1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우농가들은 여기에 정부정책도 소값 하락을 부추겼다고 보고 있다. 

전국한우협회는 지난달 23일 성명에서 “소값 폭락이 시작된 2022년 정부는 소고기 등 축산물 무관세 수입으로 한우산업 위기에 불을 지폈다”라며 “위기가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올해 (한우 수급안정)예산지원은 줄고 농가 경영안정제도 개선은 깜깜 무소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태가 명절 이후까지 지속되면 한우산업의 80%에 달하는 중소규모 농가 줄도산이 우려된다. 벌써 단 1년새 한우 농가수는 4.5%(4216호)가 줄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 2022년 7월 고물가 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수입 소고기에 할당관세를 적용했다. 그해에만 무관세로 들여온 수입소고기는 10만톤에 달했다. 정부는 고급육인 한우는 수입소고기와 직접 경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으나 늘어나는 수입과 비례해 위축되는 소고기 자급률은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소고기 자급률은 2013년 50.1%에서 2022년 기준 37.7%까지 하락했다.

축산업에서 원종을 보유한 품목은 한우와 토종닭 뿐이다. 토종닭이 일반 육계에 밀려 소비시장에서 좀체 힘을 내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나마 소비자 접근성이 유지되는 품목은 한우 뿐이다.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위해 수입을 늘린 품목은 한우 외에도 많다. 농경연이 최근에 내놓은 FTA 체결국 농축산물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닭고기 수입량은 할당관세 적용 등의 영향으로 2022년 대비 29.3% 증가한 23만5000톤을 기록했다. 지난해 양파 수입량은 할당관세 물량과 하반기 WTO TRQ(저율할당관세) 도입으로 2022년 대비 50.8% 증가한 13만8000톤에 달했다. 

정부는 지난달 4일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과일가격 안정을 위해 역대 최고 수준인 21종 관세 면제 및 인하로 상반기 중 30만톤을 신속히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채소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대파 할당관세(3000톤), 건고추(2000톤), 양파(2만톤) TRQ를 적기에 도입하고 축산물은 닭고기(3만톤), 계란가공품(5000톤), 계란(수입전량) 할당관세 물량을 신속히 들여오기로 했다.

현재의 과일가격 상승은 지난해 기후변화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가 겹치며 수확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1년 농사를 망쳤는데 가격마저 수입농산물을 대폭 들여왔으니 농민들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당장의 물가관리를 위해 할당관세와 TRQ 적용을 남발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그 역효과가 농업, 농촌, 농민에게 미치게 된다. 명절 차례상은 이 땅에서 생산한 농축산물을 올려 풍년을 기원하는데서 유래했는데 그 차례상 물가를 잡겠다고 수입 농축산물을 더 늘린다니 앞뒤가 맞지 않다. 벼가 더 빨리 자라라고 그 싹을 뽑는 ‘알묘조장’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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