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템프’로 승객 좌석·식판 등 닦아
대한항공서 1년간 암 발병해 5명 퇴사
아시아나 청소노동자도 건강이상 호소
안전보건공단, 논란 일자 재조사 착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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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기내 청소약품으로 1급 발암물질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일부 청소노동자는 원인불명의 질병을 앓고 있다고 호소하고 나서 관련 조사가 시급한 상황이다. 또한 이번 사태는 여객기 탑승객이 직접 접촉하는 좌석, 식판 등과 관련된 만큼 탑승객 안전에도 우려 섞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10년 넘게 발암물질로 청소한 대한항공

대한항공 청소 하청업체에서 근무해 온 김태일 한국공항공사 비정규직 지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한항공이 기내를 관리하는 청소노동자에게 발암물질이 들어간 ‘템프(TEMP)’와 ‘CH2200’ 등의 청소약품을 쓰게 했다”고 밝혔다.

김 지부장에 따르면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0년 여간 밀폐된 기내에서 좌석 식탁 등을 닦으면서 템프를 천에 묻혀 사용했고 CH2200는 분무기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썼다. 

템프는 제조사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쿼츠(Quartz)라는 물질이 50~60%를 차지하는 것으로 표기돼 있다. 쿼츠는 국제 암연구소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유해성이 인정돼 유럽연합에서는 사용이 금지됐다. 

또한 템프에는 에틸렌글리콜(Ethylene glycol)이 1~3% 함유돼 있다. 해당 물질에 장시간 노출되면 신장 및 간에 손상을 입고, 여성의 경우 불임을 유발할 수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썼다는 또 다른 약품인 CH2200은 장시간 노출 시 장기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태아 및 생식 능력에 손상을 준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쿼츠 등이 함유된 물질을 사용할 때 안전고글과 방독마스크 등의 개인용 보호구를 착용하도록 권장한다.

그런데도 대한항공은 장갑 등의 최소한의 보호구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김 지부장의 설명이다. 

김 지부장은 “(해당 약품에 대한) 국제 기준이 명백히 제시돼 있는데도 노동자들에게 교육하기는커녕 비밀리에 감췄다”면서 “하루 13시간 이상 유해물질에 둘러싸여 일했다니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1년간 암이 발병해 퇴사한 사람이 5명이나 된다”며 “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진 바가 없지만 청소약품과의 연관성을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에 대해 대한항공 측의 입장을 듣고자 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대한항공과 함께 한진그룹에 소속돼 관련이 깊은 진에어도 문제의 약품에 대한 본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대한항공은 2017년 6월 이후 현재까지 문제의 세정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뉴시스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뉴시스

아시아나도 다르지 않아…건강 이상 호소

이번 문제는 대한항공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나항공에서도 템프를 사용했으며, 이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고 호소하고 있다.  

김정남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지부장은 본지에 “템프를 사용해 기내 청소를 했던 노동자 2~3명이 피부 두드러기, 혀에 50원짜리 크기의 반점이 생기는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오는 아시아나 자회사인 아시아나에어포트와 기내 청소 및 수화물 운반업무에 관한 용역 계약을 체결한 2차 하청업체다.

김 지부장에 따르면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기내 청소에 템프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7년여 전 이 물질을 사용해 작업했으며 현재까지 근무 중인 청소노동자 2~3명이 원인 모를 질병을 앓고 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케이오는 “우리 회사는 2015년에 설립돼 이전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서 “회사 소속 청소노동자가 유해물질로 인한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며 관련 건의가 들어온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측은 “케이오는 아시아나에어포트가 계약한 하청업체일 뿐 아시아나항공과 직접적인 계약관계는 없기 때문에 본사 차원의 지시는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안전 규정에 대해 의견 전달만 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기내 관리를 하청업체에 맡기며 문제에 대한 책임도 떠넘기는 모양새다. 항공 서비스를 판매하는 항공사가 유해물질 문제를 비롯한 기내 관리에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여객기를 이용해 본 적이 있는 한 소비자는 “비행기에 탈 때마다 발암물질에 노출됐다고 생각하니 무섭다”며 “항공사들이 승객과 노동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자면 소비자로서 불매운동을 고려해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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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공단, 문제 없다더니 돌연 재조사

그렇다면 어떻게 발암물질 논란이 있는 약품이 버젓이 유통될 수 있었을까. 

국내 기업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 여부는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에서 조사·관리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은 5년마다 전국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작업환경실태조사를 실시해 화학물질 취급현황, 위험기계·기구 및 설비 보유현황, 유해 작업 환경요인 등을 점검한다. 

하지만 해당 청소약품들에 대해서는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문제가 지적되지 않았다. 대한항공 청소노동자들이 안전보건공단에 조사를 의뢰한 뒤 비로소 유해성 판단이 이뤄진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은 분석 결과 ‘측정 및 특검대상 유해인자 없음’이라며 해당 물질에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으나 조사의 신빙성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다.

1급 발암물질인 쿼츠에 대한 분석이 빠졌고 에틸렌글리콜의 함량도 제조사가 밝힌 자료보다 적게 측정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전보건공단은 템프 제조사에서 쿼츠에 대한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아 조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영업비밀로 지정하면 안 되는 물질이 명시돼 있다”며 “현행법상 쿼츠는 유해물질임에도 영업비밀로 부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해물질인 에틸렌글리콜에 대해서는 “템프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에 수출되는 제품과 캐나다에 수출되는 제품에 들어가는 물질 함량이 다르다”며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못해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내에 수입되는 템프는 에틸렌글리콜 함량이 1%보다 낮아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설명에도 분석 결과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자 안전보건공단은 재조사에 착수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을 재현한 뒤 유해성을 측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재조사 결과가 대외에 공개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며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검사인만큼 발표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조사가 이뤄지더라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미 승객들은 오랜 기간 발암물질에 노출된 객실을 이용했고 정확한 피해 범위조차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항공사들이 기내 관리를 하청업체에게 맡기고 있어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나 뒤늦게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메탄올 실명 사건 등에서 보았듯, 유해 화학물질 문제는 광범위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우려는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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