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국내 최대 아연제련소로 명성이 자자한 영풍석포제련소(이하 석포제련소). 제련소가 자리한 경북 봉화군은 영풍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석포제련소로부터 받는 영향이 크다. 지역 경제 및 인근 주민들의 생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봉화군의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영풍이 제련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떤 불법 행위를 자행하더라도 이를 입 밖에 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지역의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석포제련소가 지역의 환경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주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수년째 제련소 가동 중단 및 폐쇄를 위해 영풍과 맞서 싸우고 있다. 허나 공화국이라는 수식어답게 영풍의 만행이 수면 위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석포제련소는 버젓이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총 6편에 걸쳐 석포제련소의 어두운 민낯을 파헤치고자 한다.

<연재 순서>

① 봉화군은 어쩌다 중금속에 점령됐나
② 영남인의 물그릇 ‘안동댐’도 중금속 비상
③ 하늘·땅·물 어느 하나 성한 게 없다
④ ‘환경이냐, 생계냐’…깊어만 가는 주민 갈등의 골
⑤ 허술한 관리·감독 솜방망이 처벌까지…영풍 ‘환피아’ 논란
⑥ “카드뮴 공장 폐쇄” 영풍에 부정 여론 여전…해답은 ‘장항제련소’

경북 봉화군 영풍석포제련소 현자 취재 사진 편집 ⓒ투데이신문
경북 봉화군 영풍석포제련소 현장 취재 사진 편집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서울에서 약 3시간 버스를 타고 달리면 도착하는 경상북도 봉화군. 예부터 봉화는 산세가 수려하고 평화로운 선비의 고장으로 전원생활이 적합한 녹색도시로 알려져 있다.

전체 면적의 83%가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림으로 이뤄져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특산물이 많다고 한다.

봉화군을 따라 펼쳐진 태백산 자락에는 산송이가 자라는데, 봉화 송이는 다른 지역 송이보다 수분 함량이 적어 쫄깃하며 장기간 보관이 가능해 세계적으로도 우수하다고 알려진 특산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봉화의 울창한 산림도, 명품 송이도 더는 볼 수 없을지 모를 위기에 놓였다. 비극은 1970년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에 들어선 국내 최대 아연제련소 ‘영풍석포제련소’(이하 석포제련소)에서 시작됐다.

석포제련소가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뿜어대는 아황산가스에 인근의 산림의 나무들은 새하얗게 말라 고사했고, 바위와 토양은 붉게 부식됐다. 또 폐수처리시설에서 흘러나오는 비소, 카드뮴 등 중금속은 그대로 방류돼 안동댐(안동호)를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낙동강을 따라 흐르는 중금속들은 식수로, 농업용수를 통해 고스란히 인근 주민들의 몸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봉화군은 하루하루 병들며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투데이신문>은 3월 봉화군을 직접 찾았다. 영풍제련소반대봉화군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신기선 위원장의 도움을 받아 병들어가는 봉화군과 살인의 주범 석포제련소의 실상을 눈에 담았다.

영풍제련소에서 내뿜는 아황산가스 ⓒ투데이신문
석포제련소에서 내뿜는 아황산가스 ⓒ투데이신문

영풍공화국의 실체

오전 10시 30분 무렵 봉화공용버스터미널에서 신 위원장을 만나 석포제련소가 위치한 석포면으로 향했다. 석포면까지는 차로 달려서 1시간 정도 걸릴 만큼 도심에서 꽤 먼 거리에 위치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봉화의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강물도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았다.

한참 차를 타고 달리던 중 신 위원장은 낡은 아파트처럼 보이는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과거 연화광산 광부들이 생활하던 공간으로 석포제련소의 전신인 연화광업소의 잔재라고 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아연광으로 꼽힌 봉화 연화산에 일본 기업인 미쓰비시는 칠성광업소를 세워 아연을 채굴했다고 한다. 일제가 패망하며 철수한 이후 1961년 영풍광업주식회사가 이를 인수해 연화광업소로 이름을 바꿔 대규모 개발에 나섰다. 그리고 1970년 제련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석포제련소다.

국내 최대 아연제련소인 석포제련소는 고순도의 아연과 황산카드뮴, 황산동, 황산망간 등을 생산한다. 2012년 기준 아연괴 35만t, 황산 60만t 인듐 30t 등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2007년 기준 국내 아연 수요 총 43만5776t 가운데 80%를 영풍에서 공급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석포제련소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으로까지 들어왔다. 신 위원장은 차를 세우고 자신을 뒤를 따라오라고 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산길을 20여분 가까이 오르자 석포제련소 제1공장부터 제3공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흐리긴 했지만 가히 영풍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그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제1공장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황산가스였다. 아연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약 1만1000t의 물이 사용되는데, 이중 80~90%가 수증기 형태로 변해 대기로 퍼지게 된다. 이 수증기가 바로 아황산가스다.

영풍제련소의 영향으로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투데이신문
석포제련소의 영향으로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투데이신문

아황산가스의 영향을 받은 공장 인근의 식생 상태는 최악이다. 신 위원장과 기자가 서 있던 주변만 돌아보더라도 성한 나무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곧게 뻗은 가지는 온데간데없이 나무 몸통만 남아있거나, 그마저도 하얗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영향을 받는 제1공장 인근 산의 식생 상태는 더 비참하다고 한다. 신 위원장은 봉화의 특산물인 자연산 송이 생산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이유도 다 이 때문이라고 했다.

“봉화군이 원래 자연산 송이가 굉장히 유명한 지역이에요. 예전에는 송이 생산량이 연간 1만t에 달했는데 지금은 10t도 안 돼요. 왜 송이가 안 나겠어요. 송이는 습도, 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식생 상태가 이 모양인데 송이가 자랄 수 있겠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양정화와 공장 이전법 등이 대책방안으로 제시됐지만 신 위원장은 공장 가동 중단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단언했다.

“몇만평 대상으로 토양정화명령을 이행한다고 칩시다, 계속해서 오염물질이 발생하는데 온전하겠습니까. 특히 수증기는 공장 가동을 막는 거 아니고서는 무슨 수로 개선을 할 수 있겠어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폐수 무방류 시스템을 이야기했어요. 근데 80%가 수증기 상태잖아요. 그러더니 공장을 이전하는 법률을 만들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전하라고 하는데 영풍에서 안 한다고 버티면 국가에서 해주겠다는 거예요. 석포제련소도 버티고 버티다 강제로 국가에서 이전해주면 옮기겠다는 그런 속셈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내 신 위원장이 가리킨 방향을 보니 까만 무언가가 둑 형태로 쌓여있었다. 폐미(제련하고 남은 찌꺼기)와 침전 저류조 등 아연을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들인데 그 규모가 약 2만8000m², 축구장 면적의 약 4배에 달한다. 과거에는 폐기물에 불과했지만 제3공장이 생기며 이를 재가공해 고가의 인듐이나 금, 은, 동 등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쌓아놓고 있다고 했다.

석포제련소 측은 이에 대해 수차례 지적을 받았지만 ‘걷어내고 있다’, ‘재가공한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란다.

“원료든 폐기물이든 저렇게 쌓아둔 중금속이 무너져서 낙동강으로 유입되면 어떻게 할 거에요. 아주 미세한 분말 형태이기 때문에 부산 바다까지 떠내려갈 수 있어 이대로 방치해선 안 돼요. 진짜로 터졌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저렇게 방치할 수가 없죠.”

황산을 보관하는 탱크 ⓒ투데이신문
황산을 보관하는 탱크 ⓒ투데이신문

감출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

석포제련소를 조금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제1공장이 위치한 석포역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석포역에 가까워지자 기다란 컨테이너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아연 정광(원재료)이 보관돼 있다.

그 옆으로는 얼룩무늬의 원기둥 형태의 거대한 통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황산을 보관하는 탱크라고 한다. 그 양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약 7000t 정도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 앞으로는 황산을 제련소 안으로 싣고 나르는 컨베이어벨트가 이어져 있었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가다 보면 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대는 굴뚝을 볼 수 있다. 오전에 산속에서 목격했던 아황산가스다. 정말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뿜어대는 듯했다. 온 마을이 아황산가스로 뒤덮일 것만 같았다.

영풍제련소에서 발생하는 중금속으로 망가진 주변 강물 ⓒ투데이신문
석포제련소에서 발생하는 중금속으로 하얗게 얼룩진 주변 바위와 붉게 변한 강물 속 토양 ⓒ투데이신문

제1공장의 정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석포제련소에 따르면 제1, 2, 3 공장의 모든 오염수는 제1공장의 정수장에서 정수 과정을 거쳐서 배출되고 그 물은 낙동강을 타고 흐르게 된다.

그러나 정수장 부근에 흐르는 강 주변 바위나 돌은 중금속으로 인해 하얀 얼룩이 지거나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낙석을 방지하기 위해 고정시켜 놓은 철조망도 붉게 삭은 지 오래였다. 물속 돌 틈에 서식하던 다슬기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황산가스 영향권에 있는 정수장 부근의 나무나 식물들도 망가진 지 오래였다. 죽어가는 나무와, 이미 죽어서 여기저기 널브러진 나무가 대부분이었다. 토양도 빨갛게 부식돼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전에 올랐던 산속보다도 상황은 더욱 나빴다.

​처리수가 나오는 방류구 ⓒ투데이신문​
​처리수가 나오는 방류구 ⓒ투데이신문​

정수의 처리수가 나오는 방류구는 돌로 막혀있는 상태였다. 그 틈으로 뿌연 물이 뿜는듯하다 이내 사라졌다. 신 위원장은 기자가 온 걸 알고 잠가버린 거 같다고 한다. 그는 방류구에서 흘러나오는 처리수와 일부 열려 있는 보 사이에서 흐르는 물을 섞이도록 해 오염 사실을 감추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낙동강 물을 식수로 이용하는 주민들은 건강을 우려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정수장에 인접해 있어 아황산가스를 직격으로 맞는 나무들은 이상하리만치 건강했다. 신 위원장은 ‘제련소 주변에도 식생이 잘 보존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석포제련소 측이 초생식물을 심고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려주고 있다고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웃지 못할 상황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땅, 물속, 대기 어느 하나도 중금속의 그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봉화군은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있다. 범인은 밝혀질 대로 밝혀졌다. 그러나 범인이 손에 쥔 수많은 석포면 주민들의 생계와 유착관계로 얽힌 관피아 등 문제가 진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렇게 5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석포제련소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평화롭게 굴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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