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7~28일 양일간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 열려
가습기살균제 관련 기업·공정거래위원회·환경부 등 전방위 조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기업분야 증인들 ⓒ투데이신문
가습기살균제 참사 기업분야 증인들. 왼쪽부터 최상락 전 유공 연구원, 이영순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양정일 SK케미칼 법무실장(전무), 김철 SK케미칼 대표이사, 최창원 SK케미칼 전 대표이사,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 부회장,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이사, 박찬영 AK홀딩스 상무, 송기복 애경산업 경영지원부문장 상무, 최찬묵 김앤장 변호사(애경 자문).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 참석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현직 관계자가 피해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는 가해기업으로 지목된 기업의 첫 공식 사과지만 배상 책임에는 모르쇠로 일관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개최했다. 총 3부로 이뤄진 이날 청문회는 기업분야, 정부분야, 피해지원 분야로 나눠 유공·SK케미칼과 애경 등 기업과 공정거래위원회, 환경부 등을 대상으로 질의했다.

SK·애경, 사과하면서도 ‘아직은 재판 중’이라며 보상대책 유보
상호합의·전방위로비·증거인멸·수사계획 사찰추궁엔 ‘모르쇠’

먼저 오전에 진행된 1부 기업 분야 세션에서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두 회사 간의 협의체 운영과 대관 및 언론 로비, 증거인멸 의혹 등을 집중 조명했다. 이에 참석한 전·현직 관계자 등 증인들은 이같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그러나 특조위의 조사에 따르면 두 기업은 2017년 8월부터 협의체를 운영했으며 1·2차 협의 내용에는 공정위 내부 문건, 환경부 실험 자료, 공정위와 검찰 등 당국의 수사계획의 공유 등의 정보가 포함됐다. 

이로써 SK케미칼은 애경산업과 함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팔았고, 그 위해성이 드러난 뒤에도 사과는커녕 검찰과 환경부 등의 동향 파악과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또 SK와 애경은 가습기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야당 측 의원에게 올해 안에 법률이 통과되지 않도록 지연시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고, 일부 매체를 선정해 개정안에 대한 비판 기사를 보도할 수 있게 조치하라”고 협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SK케미칼은 그동안 1994년에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보다 앞선 1992년에서 1993년, 최종현 전 유공 회장의 지시로 제품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가 피해자들에게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가 피해자들에게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최 전 회장은 당시 ‘세계 최초 개발’이라는 자부심에 간부들에게 제품 사용을 추천하기도 했다고 비공개 출석한 SK케미칼 전 부장이 증언했다. 그는 “당시 부장급 직원들이 ‘화학물질에는 독성이 없을 수가 없는데 이런 제품을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SK케미칼 측은 이영순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에 의뢰했던 흡입독성 여부 실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인 1994년 11월에 미리 제품을 출시했고, 이듬해 7월에 나온 보고서도 무시했다.

애경 또한 만만치 않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각종 증상을  호소한 클레임이 980건이 넘었지만 안전성 검토에 나서기는 커녕 치약 등으로 교환해주며 피해를 더욱 키웠다.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와 채동석 애경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날 피해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보상 책임에 대한 대답은 명확히 선을 그었다.

최 전 대표이사는 “저희가 지금 재판 중이다”라며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을 알고 피하려 하지도 않겠지만 재판 종료 후 판결이 나온 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채 대표이사 또한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고 애경의 직원들이 지금 구속된 상태다”라며 “강도 높게 조사를 받는 중이고 곧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이에 맞는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가해기업의 이같은 발언에 방청석에서는 “살인 기업”, “가습기살균제를 먹고 같이 죽자”고 외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를 대신해 진술하는 남편 김태종씨 ⓒ투데이신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를 대신해 진술하는 남편 김태종씨 ⓒ투데이신문

이날 발언한 김정백 경남 가습기 피해자모임 대표는 “기업들 사이의 관계는 모르겠고 애경만 믿고 제품을 샀다가 16살 막내가 고통스럽게 죽었다”며 “그러나 정작 애경은 로비하고 증거인멸하며 진정한 사과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면피할 궁리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1년째 아내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진술한 김태종씨는 “아내는 인공호흡기 없이는 1분도 숨을 쉴 수가 없다”며 “아내의 폐가 13%만 남았다. 이렇게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고 호소했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은 “이렇게 가습기살균제가 판매되는 동안 기업이나 정부에서 안전성을 한 번이라도 확인했다면 이런 참사가 생기지 않거나 크게 줄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황전원 특조위 상임위원도 “옥시를 편드는 것은 아니지만 배·보상 문제에 있어선 보상했다”라며 “대한민국 기업인 SK와 애경은 한국 사람을 상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인색하게 해 사건을 키웠지만 이제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에 상응하는 배상을 진행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공정위, ‘이미 결론 낸 심사’ 의혹에 “재조사 길 열어둔 것”
기업과의 유착관계 문제엔 “만난 건 사실이지만 공식 절차”

오후에 진행된 2부 정부분야 세션에서는 김성하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과 윤성규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SK케미칼 등의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줬을 뿐만 아니라 기업과 유착한 정황이 포착됐다. 

공정위는 2012년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 메이트 등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에 대해 2012년과 2016년 각각 심사관 전결 무혐의 처분, 심의절차 종료 판단을 내려 이에 기업들은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시효가 지나 면죄부를 받았다.

이와 관련 2016년 심의절차 종료 판단을 주도했던 김성하 전 공정위 상임위원은 “2016년 심의 당시엔 이미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고 2012년에 무혐의 결정 내린 것을 뒤집을 만한 실증이 없었다”며 “길을 닫은 것이 아니라 재조사를 위해 열어둔 것이다”고 밝혔다.

기업과 유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대등한 조사를 위해 공개적으로 만났으며 이는 공식절차’라고 해명했지만, 참고인으로 출석한 유선주 전 공정위 심판관리관은 “비공식적이고 불법인 관행이며 내부에서도 쉬쉬했다”고 반박했다.

특조위는 또 환경부 관계자들이 CMIT·MIT 등을 유독물로 지정·관리할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도 비판했다.

안종주 비상임위원은 “1991년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이 제정되면서 CMIT·MIT는 정부가 유해성을 확인하고 관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윤성규 전 환경부 장관은 “법 시행 당시 유통된 화학물질이 1만 6천종이 넘어서 정부 예산 문제로 모든 물질의 유해성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며 “CMIT·MIT는 유통량이나 당시까지 인지되던 문제점이 다른 물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아 조사되지 못했던 거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옥시와 애경, SK케미칼 등 각종 브랜드의 가습기살균제 ⓒ투데이신문
옥시와 애경, SK케미칼 등 각종 브랜드의 가습기살균제 ⓒ투데이신문

환경부 ‘특별법 개정안’ 예정, 법적 책임 없어 ‘속 빈 강정’
피해자 지원 과정의 소극적 행정과 각종 현실적 문제 지적

3부 피해지원분야 세션에서는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박천규 환경부 차관,남광희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등이 참석했다. 

특조위는 환경부의 인정질환확대 및 판정 기준 개선의 적정성, 그리고 피해지원과정의 소극성 등을 지적하며 강도 높게 질의를 이어 갔다. 

피해구제 특별법의 ‘상당한 개연성’이라는 문구의 정의가 시행령에서 축소 적용된 문제를 시작으로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행정 절차와 피해자 민원 상담, 긴급지원, 요양급여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현행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등에 따르면 폐질환과 천식, 그리고 태아피해 등 일부만 피해 질환으로 인정하는데, 그 범위가 너무 협소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가습기살균제 노출이 확인되고, 다른 원인이 없이 건강이 악화됐다면 무조건 피해를 인정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을 다음달 제출할 계획이다”라며 “현재 특별법에 있는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것으로 볼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을 때 건강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조항에서 ‘상당한 개연성’ 문구를 삭제하는 것도 검토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황필규 비상임위원은 해당 개정안이 법적으로 책임이 인정되는 범위를 규정하는 것인지 물으며 “특별법에 의한 지원은 그 기준에 의해서 하되, (과실이 있는)기업이나 국가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으려면 각자 알아서 입증하라는 취지인가?”라고 추궁했다.

박 차관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방청석에서는 비난과 야유의 목소리가 쏟아지기도 했다.

황 위원은 이어 “환경부는 항의가 들어오니 넓게 인정하는 구제법 만들어 놓고 결국 법적인 책임이 아닌 ‘지원’이니 국가 예산이나 기업이 분담금을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라며 “환경오염 특별 피해구제법만 봐도 구제특별법이 법적인 책임과 무관하다는 발언은 잘못된 표현이다”라고 비판했다.

특조위가 주최하는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는 28일에도 이어 진행되며 청문회 둘째날에는 옥시레킷벤키저와 LG생활건강 측 증인들에 대한 질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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